꽃할배의 24시

궁금하면 500원

by 오이향

"500원요?" 오랜만에 시골에 갔다가 아버지와 대화 중에 귀를 의심해 뱉은 말이다.

"어, 500원." 아버지는 너무 태연하시다.

"500원짜리 그 동그란 동전요?" 의심의 마음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실물에 까지 옮겨간다.

"그래 그 500원." 들은 말이 맞다.


구순의 아버지는 꽃을 키운다. 60대 초반부터 영상동호회나 산악회 활동들을 취미로 즐겨하시더니 두루 기간을 거친 후 언젠가부터 꽃을 피워 내는 일을 취미로 하고 계신다.

꽃 키우기보다는 꽃 피우기에 진심이시다. 그것도 특별히 꽃을 보기 어려운 꽃들을 좋아하신다. 인터넷 카페 두 곳에서 회원으로 활동하시는데 꽃의 생장과정을 사진과 함께 올리면 반응은 꽤 뜨겁다. 그 어려운 일(꽃을 피우는 일)을 어떻게 해 내셨냐는 반응들이 많다. 아버지는 은근 즐기시며 모종이나 씨를 받아 무료 나눔으로 칭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돌려주신다. 노년의 성취감은 매우 긍정적인 신호다. 게다가 오만가지(나의 느낌적인 수치다) 꽃이름을 척척 대시고 꽃마다 다른 관리법을 술술 말씀하신다. 무한반복하여 들어도 나는 도무지 외워지지 않는 각종 외래종의 꽃이름을 어떻게 기억하시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꽃할배로 불린다. 꽃할배란 인터넷카페에서 알게 되거나, 지나가다 들러 모종을 얻어가면서 인연이 되거나, 동네 노래교실에서 만나고, 읍내 미용실에서 소문 듣고 찾아오는 분들이 이름 붙인 자연발생적인 닉네임이다. 아버지가 이름을 전국구로 날린 것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다. 무료 나눔이 인연이 되어 서울에서 보낸 된장이며 제주에서 보낸 밀감이며, 전국 각처에서 감사의 선물이 도착하곤 한다. 물론 직접 찾아올 기회를 엿보거나 인근에서는 작은 답례품을 들고 꽃이 피는 봄이면 부부가 함께 오기도 하고 60대 새댁(아버지의 표현이다)들이 삼삼오오 어울려 오기도 한다. 그렇게 아버지는 꽃할배가 되기를 스스로 원한 바 없으나 근동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꽃할배가 되었다.


아버지는 워낙 스스로 관리가 확실하신 분이라 자녀들을 잘 찾지 않으신다. 안 하던 전화라도 좀 자주 하면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마라." 하신다. 변명이지만 그래서 더 무심한 딸들이 된다. 집에서 1시간 정도 거리의 고향으로 다시 들어가신 지는 이제 30년이 되셨다. 스스로 은퇴의 시기를 정하시고 하던 일을 마무리하시면서 생업은 그만두셨다. 너무 독립적인 분이시라 한 번씩 시골에 가면 변화무쌍한 아버지의 근황이 항상 궁금하다. 그날도 아버지의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 된 친구들 얘기며, 꽃을 보러 찾아오는 60대 새댁들 얘기로 꽃을 피우던 중이었다.

아버지는 꽃씨나 모종을 본인도 무료 나눔을 하시지만 인터넷 카페에서 다른 사람들도 무료 나눔 공지를 올린다고 하셨다. 본인도 댓글로 신청하고 우편요금 500원을 무통장입금으로 보내신다며....

읍내 농협에 가서 직접 입금하신다고.... 귀를 의심했다.


"아버지, 500원짜리를 직접 들고 읍내까지 차를 몰고 나가신다고요?"

배를 잡고 웃었다. 500원 동전을 무통장 입금증과 함께 창구 직원에게 건네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웃겨서 눈물이 나올 지경인데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한마디 더 보태신다.


"벌써 여러 번 그렇게 보냈는데?"

"어떤 때는 읍내 나간 김에 보내려고 농협에 들어갔는데 마침 잔돈이 없더라고, 난감해하니까 이제 창구 직원이 내 얼굴을 알아서 자기 돈으로 500원 보낼 테니까 다음에 갖다 주세요. 하던데?"


시골이니까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얼굴까지 알아볼 정도니 '500원 보내는 할아버지'로 이미 정평이 났던 게 아닐까? 그날은 너무 웃어서 아마도 1년 치 웃음을 거기 다 뱉고 온 듯하다.


아버지는 일찍이부터 얼리어답터셨다. TV든 컴퓨터든 핸드폰이든 새 기계가 항상 궁금하신 분인데 우리의 무심함의 결과였다. 당장 아버지께 손안에 핸드폰으로 '방안'에서 송금할 수 있는 인터넷뱅킹의 신세계를 설명했다. 아버지의 눈빛이 빛났다. 물론 숙달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 핸드폰으로 송금은 물론이고 인터넷 쇼핑까지 일사천리다.

한 번씩 안 보이던 신발이 보이고 못 보던 살림이 보여서 물으면, "인터넷에 들어가면 살 게 천지로 널렸더라. 요새 참 세상 좋아졌어"라며 회한에 젖으신다.


꽃할배는 이제 택배사까지 탐을 낸다. 가벼운 꽃씨나 모종 보내기를 한 번에 20-30여 개씩 보내다 보니 택배회사에서 아예 택배소장을 다발로 두고 가거나 경쟁업체에서 택배사를 바꾸지 않겠냐는 섭외가 들어오기도 한다. 오고 가는 이웃들이 택배 보낼 일이 있으면 아버지의 대량 택배 사이에 좀 끼워 보내기를 부탁하거나 수령지를 아버지집으로 해서 받기도 하신다니 거의 사통발달의 요충지다. 이제 유통망까지....


나에게 퇴직 후 롤모델은 단연코 아버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3년, 지금까지 혼자 독립생활을 즐기시는 꽃할배 아버지에게는 몇 가지 생활원칙이 있다.


1일 2만 보, 은퇴 후 30년 넘게 지켜온 하루 만보 걷기가 얼마 전부터 배가 나온다며 자유롭게 간식을 먹기 위해 2만보로 진화했다. 걷기 전도사다.

1식 5찬, 혼자 사는 사람은 영양이 문제라며 반찬의 개수가 안 채워지면 뭐라도 만들어서 드신다. 참치액젓 신봉자다.

노래교실, 주 1회 수업이지만 유튜브로 악보가 있는 영상을 찾아보시고 사전에 매일 예습을 하고 가시니 우수할 수밖에 없다. 동네 노래교실 가수다.

TV로 세계여행, 잘 찍은 영상으로 직접 가서 보는 사람들 보다 더 자세히 보고 온다며 항상 여행 중이시다.

무료나눔, '꽃은 팔지 않는다'는 원칙에 어쩐지 사람들이 더 모인다. 커피를 들고, 과일을 들고, 좋은 계절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지면서 아버지는 집 앞마당 일부를 막아 휴게 공간을 만드시더니 이젠 커피나 차를 끓이고 찻잔을 씻을 개수대까지 넣으셨다. 그 공간은 아버지가 만드셨지만 열린 공간이다. 마을 사람들이 택시에서 내려 중간에 쉬어 가는 공간이고, 주일이면 교회 예배 후에 점심을 함께 먹는 공간이기도 하다. 잠시 집을 비워도 누가 갔다 놓았는지 모르는 다양한 물건들이 놓여 있고, 아버지는 누가 두고 갔건 크게 개의치 않으신다. 자신들이 두고 끓여 먹겠다고 믹스커피를 박스로 갖다 두거나 말린 꽃차를 두고 가는 새댁도 있고 꽃 보러 왔다가 참기름을 두고 가는 식집사들,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이 흘러가는 공간이 되었다. 빈 공간에도 누군가 끊임없이 다녀가는 생각 할수록 신묘한 공간이다.

건강이든 취미든 아버지의 이 신묘한 삶을 관통하는 대원칙은 뭘까 생각해본다.

"무엇이든 먼저 내어놓고 나누는 일"로 시작된 게 아닐까?

그래서 아버지의 노년은 꽃보다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