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부디 미미한 시작이 창대한 끝으로 이어지길....
나에게 뭔가 시작하는 일은 항상 어렵다. 계획은 쉽다. 그래서 쉽게 시작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계획은 단지 시작을 위해 스스로에게 가하는 압박일 뿐이다. 내가 나를 알기에 계획을 세우고 사전준비를 하면서 주변에 알리기에 열심이다. 그렇게 시작이 창대하고 그 끝이 미미했던 나의 도전들이 많다. 큰방 구석에 세워진 기타, 온갖 악기와 동물들 소리까지 내는 전자피아노, 책상 밑에 놓인 원터치형 텐트, 요금만 지불하고 몇 달째 이용하지 않는 영어앱, 멋져 보이거나 당시 트렌드를 반영한 선택들이었다.
언젠가 에든버러에 갔다가 입장 줄이 긴 '엘리펀트 하우스'를 먼발치에서 본 적 있다. 그 후 어느 한 해엔가 나도 엘리펀트 하우스에서 해리포터를 집필했던 JK롤링처럼 카페에서 글을 써 보겠노라 다짐한 적이 있었다. 계획은 항상 구체적이어야 실행가능하다. 우선 추진에 필요한 굿즈들을 사 모았다. 집에 있는 노트북은 좀 무거워 보여 태블릿을 검색해 구입했다. 사고 보니 고려에 놓친 것이 있었다. 키보드 없이 태블릿에 글을 쓴다는 건 좀 상그러운 일이 아니었다. 페어링 할 키보드를 검색했다. 작고 예쁜 놈으로 찾고 커버는 타고난 색감을 동원해 컬러풀한 감성을 입혔다.
그렇게 세트로 마련하고 보니 두 가지의 무게를 더하면 어느 노트북 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현존하는 가장 가벼운 노트북을 샀더라면 굳이 여러 가지 비교와 검토의 어려운 과정에 내 침침해지는 눈을 헌사하지 않았으리라. 후회를 하며 1년여를 보냈다. 그 후로 몇 년간은 아예 이놈의 태블릿으로 내가 뭘 하려 했던지도 잊고 한 번씩 방전된 그놈에게 전기를 연결해 기기가 살아있음만 확인하곤 했다.
기특한 것은 그렇게 수년째 방치하던 '글쓰기 키트'를 들고 드디어 오늘 동네 어느 카페에 자리를 잡고 글을 쓰는 중이라는 사실이다. 쉽지는 않았다. 핸드폰 데이터를 연결해서 쓰려니까 뭐 기기가 바뀌었다며 까탈스럽게 군다. 무한 반복 도전과 구슬리고 달래기를 더해 드디어 방금 연결이 됐다. 인간승리. 조앤롤링 기다려라.
요약하면 나는 뭔가 선언하고 계획 세우기를 즐긴다. 며칠 전 글을 쓸 타이밍 어쩌고 하면서 황폐하기 그지없는 내 브런치에 잡풀이라도 뽑는 심정으로 들어가 또 선언 아닌 선언을 해 버렸다. 브런치의 그 쟁쟁한 작가님들 사이에서 나 자신 실망하고 진심 위축되고 하는 일을 반복하다가 폐업 직전이었다. 글 감이 떨어졌다는 말도 더 이상 안 먹히게 생겼다. 궁하면 통하겠지? 밑천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글감들을 찾다 보니 나를 키운 나의 사람들, 내 인생 방향을 0.000001%라도 바꾸게 한 사람들의 얘기를 해 보기로 했다.
그러기로 하고도 며칠째 머리를 감으면서도, 멍 때리며 TV를 보면서도, 후회했다. 매주 어떻게..... 쓴단 말인가. 사건의 발단은 브런치북이란 건 어떻게 시작하는지 궁금해하며 따라가다가 다음 단계로 안 넘어갔어야 했는데 당분간 저장함에 넣어놓고 관망만 해 보고 싶었던 심정도 모르고 그냥 시작하기가 되어버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디서 본 광고 카피를 슬쩍해서, 2026년은 나의 글쓰기가 드디어 땅을 박차고 이륙(26)하는 한 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