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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내를 걷고 걸어서, 환대받는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2

전시작품 ‘관람’이 ‘경험’으로 이어지는, 일상속 실천에 기반한 워크숍들

by 큐레로그 curalogue

카셀도큐멘타, 베니스 비엔날레, 뮌스터 조각축제 등 대규모 예술 축제를 방문하며 도시를 걸어다닐 때, 보고 듣고 먹고 소화하는 일상 속 실천은 종종 그 자체로 예술의 경험이 되곤 했다.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에서는 이러한 ‘일상 속 실천’과 사물, 움직임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던 감각과 행위들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아래 전시작품 ‘관람’이 ‘경험’으로 이어지는 세 가지 워크숍을 소개한다.

스크린샷 2025-04-16 오후 1.29.57.png 〈사물들(Les choses)〉워크숍 전경. 출처: 파마리서치재단 인스타그램

키와림, <사물들>

컴퓨터 비전(Computer vision)이 인물을 인식하기 위해 축적한 데이터는 방대해졌고, 결과는 점점 더 정교하고 정확해지고 있다. 머리와 피부의 색, 얼굴 생김새에 따라 인종을 판별하고, 표정에 따라 감정도 인식하는 단계의 인공지능을 보며, 뚜렷하게 설명하지 못할 어떤 기운, 사람의 느낌과 인상과 같은 비가시적 요소들은 어떻게 번역될 수 있을까 궁금하다. 박소희 디렉터가 키와림(김기훈, 김들림) 듀오를 소개할 때 이야기한 그들의 ‘인상’은 워크숍 <사물들>과 밀접하게 닿아있었고, 이는 직접적인 수치나 특정한 요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형의 요소들이었다. (물론 현재의 인공지능은 이러한 요소들도 나름의 리스트로 구성하고 체계를 쌓을수도 있지만, 사람의 말과 기계의 말이 주는 신뢰와 ‘느낌’은 별개의 문제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250313_GIAF25_254-scaled.jpg 〈사물들(Les choses)〉, 2025, 11개의 사물, 11개의 빈 책, 필기구, 커피, 차, 컵, 주전자. 출처: GIAF 웹사이트

적산가옥인 옛함외과의원 내부에 놓인 여러 ‘사물들’ - 시계, 컵, 모카포트, 카메라, 커피 그라인더 등 -은 키와림 듀오가 이곳저곳에서 수집한 것으로, 작가의 삶과 더불어 사물들의 이야기도 궁금해지는, 손 때와 정이 물든 물건들이다. 각 사물에는 노트가 하나씩 배정되어 있고, 워크숍에 참여한 이들은 다함께 하나의 사물을 고른다. 우리는 시계로 정했고, 마당에 둘러앉아 커피와 차를 마시며 작가가 낭독하는 시계의 ‘이야기’를 들었다. 빈티지 시장에서 구해온, 시침과 분침이 멈춘 채 초침만 빠르게 움직이는 시계. 이 시계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는 다시 쓰이기 시작한다. 워크숍 참여자들은 각자 돌아가며 그다음 이어질 내용을 한 문장씩 이어 썼다.

스크린샷 2025-04-16 오후 1.29.40.png 〈사물들(Les choses)〉워크숍 전경. 출처: 파마리서치재단 인스타그램

워크숍 형식 자체는 특별히 새롭거나 획기적이진 않았다. 선택된 사물의 미리 쓰여진 이야기를 듣고 이후 이어질 내용을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작성하는 것. 워크숍의 묘미는 사물과 사물의 이야기 뿐 아니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끌어나가는지, 우리네 삶에 너무도 익숙하고 평범한 사물에 어떤 캐릭터와 가치, 이야기를 부여받는지, 그리고 각자 고심한 한 문장으로 맺어진 챕터가 어찌 이어질지 다음 사람들에게 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단순한 워크숍의 형식은 오히려 그 순간을 더 기억하게 한다. 햇살이 따사롭던 옛함외과의원 앞마당, 작은 컵에 담겼던 커피, 들림 작가가 차분하게 읽던 시계의 이야기, 너무나 유려하게 쓰여짐에 놀라웠던 순간, 한켠에서 자고 있던 강아지 장군이까지. 순간 순간으로 기억되는 워크숍 <사물들>은 나아가 옛함외과의원 곳곳에 전시된 비디오, 사진 오브제, 사물들을 어떻게 감상할 수 있을지, 그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또 쓰일 수 있을지 사물들을 감상하는 또 다른 감각의 문을 열어주었다.


이양희작가님_영상스틸_37_1-scaled.jpg 〈이양희 입춤〉, 2025,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3분. 출처: GIAF 웹사이트

이양희, <Mass>

옛 교회를 탈바꿈한 작은공연장 단에 잠시 머물렀을 때, 전시되었던 <이양희 입춤>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년기의 무용수가 한치의 오차 없이 코레오 루틴을 이어간다. 그 루틴은 선생님으로 추정되는 성인 여성의 목소리에 정확하게 맞물린다.(스포일러 주의! 유년기의 이양희 영상에 성인의 이양희의 목소리가 더빙된 영상이다.) 무용수의 춤은 지시 언어에 따라, 음악 없이도 리드미컬하게 이어진다. 정확한 한 걸음 한 걸음, 손끝과 발끝, 몸짓만으로 리듬을 완성하는 춤과 확신에 찬 목소리에 밴 노련함은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양희 예술가의 워크숍 <Mass>를 더욱 기대하게 했던 영상 작업이었다.

스크린샷 2025-04-16 오후 1.35.12.png 〈Mass〉, 워크숍 전경. 출처: 파마리서치재단 인스타그램

<Mass>는 이양희 예술가가 ‘춤의 원천’으로 삼는 한국 전통 및 신무용과 클럽댄스를 접목한 워크숍이다. 둥그렇게 돌아앉아 각자 요즈음 사유하고 있는 무언가를 한 단어로 이야기한다. 작가는 그 한 단어에서 연결고리를 지어보기도 하고, 각 참여자를 기억하기도 한다. 그렇게 각자의 ‘소개’ 후 원형으로 서서 클럽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흔들흔들, 작가가 지시한 몸의 움직임을 따라했다가, 옆사람의 춤을 보기도 했다가, 그렇게 몸을 푼다. 이후 조를 이루어 각자 무대에서 걷기, 정체하기, 흔들기 등의 움직임을 새로이 익히고 선보인다. 작가는 지도자로서 지시를 주기도 하고, 진행자로서 흐름을 이끌고, 일상에서의 ‘춤’이 낯선 이들의 안내자가 되기도 한다. 함께 같은 움직임을 각자 다른 위치에서 다른 곳을 향해 선보이며 그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흔드는 경험은 작가가 앞서 이야기 한 인류의 원초적인 움직임, 구조화되고 체계화 되기 전의 ‘흥’ 과 흔들리는 질량(mass) 그 자체의 몸을 돌아보게 한다.

이양희작가님_영상스틸_01_1-scaled.jpg 〈이양희 산조〉, 2025, 퍼포먼스, 21분. 출처: GIAF 웹사이트

워크숍은 또한 공연 <이양희 산조>의 관람을 새로운 경험으로 인도한다. 같은 공간, 같은 작가, 그러나 완전히 다른 맥락. 영상작업과 워크숍이 이루어지던 바로 그 공간에서 홀로 현대음악에 맞추어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작가를 보며 그녀가 워크숍에서 했던 디렉션들이, 나눔이, 의도적으로 벗어났던(unlearn) 몸짓이 재체득(relearn)되는 것이 무언지 어렴풋이 느껴지는 그런 경험이랄까. <이양희 산조>는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적 극장 공연을 위해 정형화된 신무용에서 파생한 산조와 입춤을 모티브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유산’이라는 구조 아래 ‘고착화된 불가피한 관습과 위계’를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한 것은 내 배움이 모자라서였겠지만, 그런 비전공자에게도 뚜렷했던 것이 있다. 셀 수 없을 만큼 다듬었을 테크닉의 향연, 완전한 해체를 위한 완벽한 체화, 전통과 고전을 향한 애정과 그 애정에서 비롯된 실험적인 실천. 영상작업과 워크숍, 공연을 함께 한 관객만이 느낄 수 있는 선물이기도 했다.

250315_GIAF25_57-scaled.jpg 〈있는 없는〉, 워크숍 전경. 출처: GIAF 웹사이트


서다솜, <있는 없는>

<있는 없는(Things Non-negligible)>은 작가가 “본인과 주변의 삶을 관찰하며 얻은 주제를 다양한 사람들과 긴밀히 나누기 위해 직접 만든 요리를 매개로 한” 워크숍 형식의 작업이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작가는 ‘도깨비’에 포착해 연구를 진행했고, ‘도깨비 같은 존재’들을 초대하여 모임을 진행했다. 1박 2일간의 ‘도깨비 모임’은 영상으로 선보이며 페스티벌 기간동안에는 약 6명의 참여자들과 저녁 만찬 형태의 워크숍으로 이어졌다. 초동 워크숍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작가는 도깨비라는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였는지, 그리고 작가가 재해석한 ‘도깨비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나눌 수 있는 프라이빗한 시간. ‘왜 도깨비여야 했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일곱칸짜리 여관을 찾았다.

250313_GIAF25_075-scaled.jpg 일곱칸짜리 여관 전경. 출처:GIAF 웹사이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 일곱칸짜리 여관에서는 도깨비가 좋아할 법한 음식들이 준비되고 있었다. 도깨비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사운드가 적막을 깨고 공간을 채운다. 마치 저녁식사에 초대가 된 듯한 참여자들은 조용히 앞에 놓인 도자 오브제와 낙서처럼 보이는 드로잉이 가득한 테이블 매트를 응시하기도 하고 멀뚱멀뚱 서로 바라보기도 한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낯선 식기와 분위기 -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인 도깨비를 경험한다면 이런걸까. 마치 리추얼과도 같았던 첫 10분은 차분히 그 묘함에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이었다.

250315_GIAF25_62-scaled.jpg 〈있는 없는〉, 워크숍 전경. 출처: GIAF 웹사이트


작가가 강릉의 전통시장에서 직접 장을 보아 만든 요리들은 고기와 술을 좋아하는 도깨비의 습성에 꼭 맞기도, 한편으로는 투정부릴만한 것들도 있었다. 김이 올라간 도토리묵, 무와 나물이 들어간 된장국, 시트러스한 과일이 올라간 싱싱한 미나리 샐러드,생강, 배추를 넣은 돼지고기 찜, 찰밥, 그리고 막걸리까지. 작가가 세심하게 큐레이션하고 요리한 음식들은 ‘환대’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나눠주는 서다솜 작가를 보며 양육자 도깨비가 있다면 - 엄마든, 아빠든 - 이런 모습일까 싶기도 했달까.


“귀신도, 사람도, 짐승도 아닌 환상의 존재로 인간이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곳에서 자신만의 습성과 행태를 지키며 살아가다 불현듯 나타나 교훈을 주거나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는 존재”


욕심 부리는 사람에게 혹을 붙여주기도 하고, 방망이로 금은보화를 선사하기도 하는 전래동화 속 도깨비. 초현실적 존재로 인식되어 온 그 도깨비는, 그날 저녁 우리 모두가 도깨비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과 함께, 내 주변 사람들을 새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기제가 되었다. 어떤 운명의 작용으로 모였는지 모를 여섯 사람은, 도깨비와 강릉, 서다솜 작가의 도자 작업과 초동 워크숍에 대해 프라이빗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막걸리를 마시고, 빠르게 테이블을 치운 뒤, 달빛을 맞으며 해산했다.


강릉에서 2박 3일을 머문다고 했을 때 놀라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대형 규모의 행사 참석을 위해 일주일씩도 감행했던 나로서는, 시간상 렉처나 다른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아쉬웠다. 며칠간 강릉 시내를 돌아다니며 워크숍에서 봤던 얼굴들을 다시 마주칠 때면 괜히 반가웠고, 다음을 또 기약하고 싶어졌다. 모 행사는 매해 관련 업계 관계자들의 ‘명절’과도 같은 연례행사로, 커뮤니티 빌딩과 네트워크의 장으로 기능한다고 들었다.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도 다양한 존재들과의 관계 형성, 지역의 미시사, 우리 삶의 순환과 재생 같은 보편적 가치를 지닌 일상 속 예술실천을 공유하는 장으로서,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난 새로운 이들과 다음을 기약하게 만드는 플랫폼으로서 자리 잡아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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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및 이미지 출처: http://giartfestiv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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