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와 현지인들의 경계선
따뜻한 봄을 상상하며 오스트리아에서 알프스를 곧장 넘어 이탈리아에 들어왔다. 시작은 베네치아,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서 혹시 물가가 비싸진 않을까 사람들이 너무 많아 감염위험이 있진 않을까 걱정이 앞서 숙소도 산타루치아 본섬이 아닌 시내 한 구석으로 선택했다. 오래된 관광호텔의 낡고 고풍스러운 1980년대 분위기와 친절한 프런트가 맘에 든다.
알프스 산 하나 넘었을 뿐인데 동유럽의 화려한 건축물에 길들여진 내 눈은 흙빛에 단출한 집들이 모여있는 투박한 도시 풍경을 마주하자 시각적 이질감을 느꼈다.
이탈리아의 저녁식사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늦다. 대부분에 음식점들이 저녁 7시에서 8시 사이에 가게문을 연다. 저녁 5시가 되자 배가 고파졌지만 열려있는 음식점을 찾기 힘들었다. 거리를 샅샅이 찾아 다행히 딱 한 곳 일찍 문을 연 가게를 찾았다. 가게 주인은 아직 저녁식사 시간이 아니라 조금 당황한 것 같다. 하지만 친절한 매너로 우리를 맞이했고 메뉴를 하나하나 설명해주면서 주문에 도움을 줬다.
전채요리로 병아리콩을 곁들인 문어다리 요리를 선택했다. 전혀 다른 식감의 두 식재료가 올리브유와 결합해 씹는 즐거움을 주었고 조화로운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식사는 오리라구뇨끼와 현지 전통 소스를 비벼낸 비골리를 산뜻한 산미가 느껴지는 화이트 와인과 함께 했다. 지중해와 맞닿은 도시답게 바칼라, 엔쵸비 등 소금에 절여 삭힌 젓갈류의 음식을 접하니 그동안 동유럽의 투박했던 음식들이 잊힌다. 그저 감격스러웠다. 지역 전통음식을 너무 잘 먹는 우리들이 신기하고 기분이 좋았는지 가게 주인은 노래를 흥얼거렸고 "이것도 먹어봐" 라며 양파와 소스로 마리네이드한 새우와 야채요리를 서비스로 줬다. 잘 숙성된 음식이 주는 부드러운 풍미와 구조적 질감이 인상적이었고 우리는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가게 주인의 노래는 우리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이어졌다. 베네치아 첫인상이 강하다.
전 날에 가게 주인도 그랬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텐션이 높다. 그리고 볕쬐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아직 바람이 쌀쌀한데도 날씨가 화창해 모두들 야외로 나온다. 지인들과 와인을 즐기거나 부둣가에 걸터앉아 풍부한 손짓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모습, 낮잠 자는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투박한 건물들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이야기가 채워지니 화려한 베네치아의 인상이 나타났다.
수많은 관광객들로 가득 찬 혼잡한 인파 속에서도 책을 읽는 사람, 신문을 보는 사람, 수로와 맞닿은 막다른 골목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느린 속도와 순간이 강하게 남았다.
좁고 높다란 골목길과 수로가 교차하는 미로 사이사이를 보물찾기 하듯 뒤적거렸다. 곳곳에 숨어있는 소중한 장면들을 기록하고 그들 중 일부가 되어 완연한 시간을 보냈다.
물의 도시라는 명성답게 수로와 골목이 긴 세월 동안 거미줄처럼 얽혀 독특한 도시의 정체성으로 자리했다. 이질적인 도시의 풍경을 즐기기 위해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베네치아를 찾는다. 나 또한 그들처럼 홀린 듯 셔터를 누르며 관광객의 역할에 충실했다.
문득 프레임 안에 빨래가 들어왔다. 오랜 세월 어업과 각 자의 생업에 종사하며 이 도시를 가꿔온 시민들이 여전히 이곳에 살고 있고 우리는 그 공간에 잠시 머물다 간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일상과 여행의 길목 경계에서 빨래가 마르고 있다.
현지인과 관광객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 대해 생각했다. 관광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베네치아는 모든 것이 이질적이고 자극적인 시각요소로 가득하다. 현지인의 일상마저도 특별해 보인다. 관광객의 행태는 그들 삶의 기본권을 침해할 정도로 소음이 크거나 물리적 영역을 침범할 때도 많을텐데 현지인이 창 밖으로 빨래를 널며 바라보는 관광객들의 모습은 어떨까. 그들은 자신의 삶을 보호하는 방식을 터득했을까. 아니면 어느 정도 영역을 내어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마음의 여유를 가졌을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메멘토>작품이 떠올랐다. 사람의 본성과 관계에 대해 냉철하게 풀어낸 이 영화의 메시지는 송곳처럼 강하게 찌르듯 들어온다. 복수만을 위해 사는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레니. 절대적이라 믿는 사실들을 몸에 새기고 그 단서를 쫒으며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주변인들은 레니에게 도움을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 미친개의 복수를 교묘히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는 자들 뿐이다.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 믿었던 레니의 문신에는 타인의 얼룩만 남았다. 현실로 확장했을 때 과연 내가 절대적이라 믿는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절대적일 수 있을까. 보통의 사람들도 레니와 다를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마음이 후련해졌다. 되려 상대의 이기심을 존중할 수 있게 됐고 이해관계를 아프지 않게 받아들였다. 심지어 나의 영역을 침범하는 무례하고 몰지성적 인간들 마저 자기 자신 또는 그들이 꾸려가는 가족,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예의와 품위는 다음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나는 그런 존재들을 불쌍하고 아픈 사람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 뒤로 스스로를 염세주의자라고 생각했다. 허무하게 작동하는 사회구조를 냉소적으로 본다. 본질적 가치추구와 맥락적 대화가 결여된 채 오로지 단기적 이익과 목적 달성에 집착하는 장면을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목격해 왔다. 한 가지 재밌는 건 염세적인 만큼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에 여유공간도 커졌다. '그럴수도 있지,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건 그럴 만도 해'
당연한 사실이지만 여행을 하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세상은 무지무지하게 넓다. 상상이상으로 평균 이하의 사람들이 도처에 널렸고 그만큼 상상도 못 한 일을 벌이고 건강한 관계를 맺는 멋진 사람들도 많다.
베네치아 시민들도 전 세계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인격체들을 만나오며 그들과 관계 맺는 법을 터득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색깔별로 빨래를 널 줄 아는 센스와 사생활에 경계를 둘 줄 아는 지혜를 가졌다. 관광객들이 정신없이 길을 오갈 때도 다리 위에서 책을 읽는 여유를 안다. 햇빛이 좋으면 볕을 쬐러 나와 기분 푸는 법을 안다. 대화가 하고 싶을 땐 싸구려 와인 하나를 두고 부둣가에 걸터앉아 일상의 감정을 나눈다. 빨래는 현지인과 나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체이기도 했고 영역을 구분 짓는 경계선이기도 했다. 어쩌면 공간, 물질,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는 허물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전이대로써 보다 더 명확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야만 서로 간에 영역을 존중하는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