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의 마지막 4년, 타오르는 아를

이제는 그가 말하고 싶었던 하늘을 알 것 같다.

by nomadhaus

아를로 떠나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나 공항행 트램을 탔다. 모든 역마다 다른 음악이 나온다. 안내음성도 남성, 여성, 어린아이 세 가지 목소리로 다양하다. 성별, 연령을 고려한 세심함이 인상적이었다.

렌터카 회사에서 체크인을 도와주던 젊은 직원이 나를 살살 꼬셨다. 남부 프랑스 여행을 제대로 즐기려면 오픈카를 타야 한다고. 볼보 소형차에서 미니 쿠퍼 컨버터블이라니. 산들거리는 바람,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지중해 연안을 달리는 우리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떠오른다. 지수가 이 상황에 개입하기 전에 빠른 판단을 했다. 순식간에 예약 변경을 진행했고 내친김에 호기롭게 풀커버 보험까지 가입했다.

타지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로 고생할 바에는 고민거리를 하나라도 덜어내는 게 최선의 선택이다. 덕분에 백만원 초반의 예산에서 배가 넘는 비용이 발생했다. 여행은 원래 그런 것이고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도 옳은 선택이었다. 실제로 후드를 열고 운전을 한건 단 두 번, 도합 한 시간이 채 안 됐다. 여행 내내 비가 오거나, 바람이 너무 세거나, 구름이 개인 날에도 햇빛이 너무 따가워 도저히 열고 달릴 수 없었다. 그럼에도 프로방스 지역을 달릴 때 잠깐에 개방감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주행 시작, 프랑스는 좌핸들 주행이라 큰 어려움이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원형교차로가 굉장히 많다는 것 정도- 심지어 분노에 찬 고속도로의 살벌함마저 우리나라의 그것과 닮았다. 익숙한 느낌을 따라 열심히 방어운전을 했다. 2차선 주행도로 위 속도는 100km/h 정속 주행 중, 룸미러 넘어 맹렬히 질주하는 레이서가 보인다. 예상대로 우리 차를 앞지르더니 위협적인 칼치기를 한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무언가 대단히 급한 일이 있나 보다'라고 생각할 찰나, 급격히 속도를 줄이더니 금세 차선을 바꾸고 50m 앞 출구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황당했다. 차가 밀리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럴 거면 3차선으로 달리지. 굳이 내 차를 추월했던 그 운전자의 저의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지수는 여독이 한꺼번에 밀려왔는지 차에 타자마자 깊은 잠에 들었다. 잠이 든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지금도 모른다. 산악 풍경을 보기 위해 도로를 나와 북서쪽으로 향했다. 굽이치는 좁은 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려 베흐동 자연공원에 들어왔다. 작은 마을들이 사이사이에 숨어있고 그 사이엔 맑다 못해 에메랄드빛 계곡물이 넘쳐흐른다.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 시선을 옮기면 화강암이 우뚝 솟은 아득한 크기의 산세가 압도한다.

산을 등지고 분지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을 찾아 점심을 먹었다. 주문한 메뉴는 수제 햄버거와 꿀에 절인 소스를 곁들인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 햄버거는 육즙 가득한 패티와 신선한 야채, 풍미가 넘치는 홈메이드 치즈를 직접 구운 빵 사이에 끼워 조화를 이뤘다. 오리 가슴살은 먹음직스러운 크기로 잘 손질돼 완벽한 굽기로 구워냈다. 먹기 좋게 썰어 꿀절임 소스를 찍고 입 안에 넣었을 때 한가득 차오르던 풍요로움은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런 경험을 하려고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나 보다. 괜히 가슴이 뭉클하다.


다시 오른 여행길에 지수는 금세 잠이 들었다. 사진에서만 보던 끝없이 펼쳐진 라벤더 초원길을 달렸다. 아쉽게도 개화기와 맞지 않아 어둑한 갈색빛 초지였지만 중간중간 야생 초원과 어우러진 목가적 풍경의 마을은 충분히 아름답ㄷ....다고 느끼던 순간 저 멀리 흙먼지를 휘날리며 8톤 트럭이 미친 듯이 달려온다.

도로는 차선이 없는 폭 4m 미만에 일방향 다진 자갈길. 평속 80km/h 이상에 결코 느리지 않은 속도로 달렸지만 트럭은 멀어질 생각을 안 한다. 아니 오히려 가까워지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뒤꽁무니까지 따라 잡혔다. 피할 곳도 양보할 곳도 없는 지독한 추격전이 강제로 시작됐다.

매드맥스 찍는 줄 알았다. 코너를 돌면 멀어졌다가도 금세 뒤를 바짝 쫓아 압박한다. 혹 해코지당하진 않을까 두려움이 엄습했다. 끝 모를 초원을 가로지르는 미친 레이싱은 30분이 넘도록 멈출 줄 몰랐다. 거친 도로 위 핸들의 떨림은 그치지 않았고 손이 저려왔다. 모든 걸 놓고 발할라를 찾고 싶을 때 드디어 우회차선이 나타났다. 간신히 옆으로 바짝 비켜 길을 내어줬고 트럭은 순식간에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도그레이싱은 우리의 패배로 끝났다. 이 순간을 영상으로 기록하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식은땀을 닦아내고 아를을 향해 계속 달렸다. 운전대 잡은 프랑스인들 독해...


해가 지기 전에 드디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를에 도착했다. 숙소는 아를에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넓은 초원 한가운데 한 두 개의 집들이 듬성듬성 모여있는 작은 촌락. 호스트는 짧은 영어와 알아들을 수 없는 프랑스어를 섞어 말하며 친절히 맞이해 줬다. 집 밖에 거위 두 마리도 맹렬히 달려와 울어대며 반겨줬다. -얘네는 눈만 마주치면 달려와 하악 거리며 위협한다. 거위는 공격성이 매우 짙다. 맹렬히 달려오는 것들은 다 무서워...- 숙소는 와이파이가 없는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구비된 시골 전원주택이다. 식재료, 술 등 필요한 것들을 사러 장을 보고 돌아와 저녁을 지어먹었다.

저녁 8시, 해가 저문다. 반 고흐는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왜 여기에 머물렀을까. 여기서 무엇을 봤던 걸까. 호기심으로 시작된 여정을 따라 드디어 아를에 한 발짝 다가섰다.


달궈진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빵을 구웠다. 후추를 갈아 흩뿌린 잠봉뵈르를 빵 사이에 끼워 넣어 도시락을 챙겨 나왔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프로방스 바람에 길들여진 넓은 들판은 노란 꽃을 틔워 흔들거린다. 초원 사이를 가로질러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4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론 강이 흐르는 별이 빛나는 도시, 그의 흔적 찾아 아를에 왔다.


아를역 뒤 론 강과 맞닿은 무료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볍게 역 주변 마을을 스케치했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노란집이 보이는 거리의 풍경. 비록 그림 속 집은 세계대전 이후 불타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다른 집이 올라섰지만 건물 앞 '노란집(거리)' 이정표가 여기에 반 고흐가 있었다고 말한다.

깊고 푸른 하늘 아래 론 강을 따라 시선 끝에 붉은 지붕을 위에 얹은 잿빛의 집들이 보인다. 반 고흐도 이 길을 따라 걷다가 저 멀리 마을을 보고 멈춰 섰을 거다. 그는 여기서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론 강에 비치는 아를을 보고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다.

걸음을 옮겨 좁고 예쁜 골목길로 들어가 마을 곳곳을 다녔다. 분위기 좋은 카페들, 활짝 열린 창문 턱에 놓인 화분들, 골목 옆 작은 화단들을 찍으며 방향도 잊은 채 거리를 걸었다. 정신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포럼광장의 카페테라스>, <원형경기장>을 눈앞에 마주했다.

반 고흐 재단이 운영하는 전시관에서 그를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만의 일본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아를에 정착했다. '가쓰시마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큰 파도>를 비롯한 일본 화풍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림을 다시 한번 깊게 봤다. 사이프러스, 아몬드 나무, 구름, 별, 태양 등 그가 즐겨 그리던 대상들의 시절이 선연하다. 물결치듯 일렁이는 붓터치는 한 획 한 획이 신중하게 시작해서 부드럽고 섬세하게 끝을 맺는다. 막힘없는 거친 획을 상상했던 나로서는 충격적이었다. 이게 과연 생의 끝에 미쳤다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도대체 얼마만큼의 집중력과 세심함을 가져야만 이토록 강렬한 색채와 섬세한 표현이 가능한 것일까. 인쇄에서는 느낄 수 없던 그림이 가진 생명력을 아주 약간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아를을 찾았다. 때로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온전히 공간 속에 머물러 보기도 했다. 프로방스의 칼바람에 몸을 웅크리며 전전긍긍하다가 지쳐서 돌아가기도 했다.

도시를 등지고 해가 저문다. 짙푸른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전과 이후 그 어디에서도 아를과 같은 하늘은 볼 수 없었다. 깊은 하늘을 찌르듯 퍼져가는 석양은 노란 들판과 나무를 새빨갛게 비췄다. 마치 타들어가는 것만 같다. 아니 타오르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타오르는 아를의 하늘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어쩌면 노을에 비친 아몬드 나무, 사이프러스, 노란 들판에 그도 매료되어 이곳에 머무르지 않았을까. 이제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알 것 만 같다.


마침내 평온을 얻었다. 아침에는 부엌 창 밖으로 작은 새무리들이 넓은 들판 위를 먹이를 찾아 날아다닌다. 문을 열면 낮은 울타리로 둘러싸인 축사에 거위들이 어김없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온다. 날 보며 하악질 하는 거위를 향해 기지개를 켜고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을 지어먹고 밖을 나섰다. 들판을 가로질러 수로 옆 좁은 도로와 만난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주위에 노란 꽃이 핀 초원이 바람에 흔들리고 시선 끝에 흙집들이 듬성듬성 놓여있다. 이토록 조화로울 수 있을까. 어느 것 하나 시선에 거스름이 없다.

두 발로 딛고 서 있는 이 순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너무나 당연한 말 같지만 막상 꺼내긴 쉽지 않은 말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과거나 미래에 대한 숙제를 안고 살아 지금 여기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보낼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요즘 나의 생각, 관심 있는 것들을 말하길 좋아한다. 외부의 자극에 감각을 인지하고 느끼는 감정이나 정리된 생각을 말할 때(때로는 침묵으로 대신한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Live your own time child, Sing about your own time'

'너의 시대를 살고 너의 시대를 노래하라'

전설적인 포크 뮤지션 밥 딜런의 삶을 7명의 인물로 그린 영화 <I'm not there>에 나오는 이 대사는 나의 가치관을 완전하게 대변한다. 유년기 시절의 인물 우디거스리가 기타 한 자루를 매고 떠돌이 극단을 도망쳐 나와 달리는 기차에 무임승차를 하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 20년 전인 1939년 미국에 노조 결성 시절을 노래를 하곤 마치 그 시절을 산 사람 마냥 흉내를 낸다. 노인들은 포크의 신이 빙의된 것 같다고 놀라워 하지만 유일하게 이를 못마땅히 여기는 이름 모를 아주머니는 말한다. 지금은 인종차별, 실업에 대한 노래를 해야 한다고. 너의 시대를 살고 너의 시대를 노래하라고. 실화인지는 모르지만 살아있는 전설 밥 딜런은 시대를 노래하는 포크가수가 됐다.


일상을 살다 보면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현재의 선택을 지배할 때가 많다. 고(故) 김영갑 사진작가가 자신의 삶 자체를 제주도에 투영한 것처럼, 반 고흐가 자신만의 일본을 찾아 아를에 정착한 것처럼 나는 지금 무엇을 추구하고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자신 있게 말하고 싶지만 현재에 대해 말하는 건 언제나 두려웠다. 나는 과거로부터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 맞서 이겨내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마주 서서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 인생에 도표를 그린다면 반복적인 삶의 기복 중에서 긴 여행을 사이에 끼워 넣고 싶었다. 일생으로 보면 짧디 짧고 보잘것없는 요동에 불과하겠지만 혹시 모른다. 그것이 커다란 파동을 불러일으킬지. 사람 사는 일은 아무도 모른다.

이 여행은 무수한 갈림길 가운데 두려움을 마주하고 현재에 가치를 둔 선택이다. 용기 있는 선택은 이곳 아를로 우리를 이끌었고 그 보상으로 흔들리는 노란 들판과 타오르는 하늘을 보았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