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전환점, 니스

새로운 여행을 맞이하는 여행자의 마음

by nomadhaus

"왜 그렇게 살아야 하지?"

끊임없이 물어왔다.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왜 다들 주어진 틀 안에서 어른들이 닦아 놓은 길을 밟아야만 하는지.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땐 "대학교 가서 놀아라" 대학교 가면 놀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취업은 전쟁이다" 운 좋게 직장을 들어가도 "결혼은 빨리 할수록 좋다" 매번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늘 돌아오는 대답은, "남들 다 하는 거라 그래"

평범하게 살기 정말 어렵다. 대출을 짊어지고 터를 잡아 결혼을 하기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 남들 다 하는 거 적당히 해보며 직접 겪어본 끝에 어렴풋이 스스로 내린 대답은 '지금껏 걸어온 길은 사회에 구성원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구나'정도로 결론냈다. 다른 질문은 생각 못하게 덮어버리고 살아왔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지금의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 치다 보면 때로는 원하지 않는 상황으로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허무함을 경험한다. 다시 스멀스멀 질문이 올라와 괴롭힌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이유를 찾아 과거를 뒤적거려봤다. '나는 운 좋게도 엉겁결에 이만큼 살아왔구나'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서른여섯, 인생의 약 절반을 향하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들을 보면서 꼭 어른들이 닦아놓은 정해진 길을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과거에는 부모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으니 주어진 틀 안에서 사고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하나의 독립된 가족으로서 자유의지를 가지고 틀을 벗어날 때가 왔다.

질문을 '왜'에서 '어떻게'로 바꿔본다.

"삶을 어떻게 가꿔나가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살아왔고 내게 남은 게 무엇인지 세 보았다. '가치지향적 선택', '공감하는 마음', '순환과 균형의 생태적 사고', '적당한 사회화', '약간의 사진술과 심미적 시야' 등등... 생각보다 가진 게 많다.

우리만의 삶의 태도로 여행을 하고 있다. 나 자신을 알아가고 어떻게 살아갈지 삶의 방향을 정하는 여정을 떠나 여기까지 왔다. 온전히 우리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선물하는 중이다.


길었던 기차여행이 드디어 끝났다. 베를린에서부터 프라하, 빈을 지나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을 끝으로 니스에 도착했다. 누가 먼저 할 것도 없이 자연스레 끌어안고 서로를 다독였다.

아직 바람이 세차고 공기는 서늘하지만 내리쬐는 따뜻한 햇살이 정말 반갑다. 토스카나의 자유분방한 느낌에 지쳐서 그랬을까. 잘 정돈된 도시의 편안함이 좋았다.

예전부터 프랑스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자국 언어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프랑스인', '유럽의 중국(?)'이라는 뜬소문에 방어적 태도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남부 프랑스를 여행하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엄청 나이스했다. 상냥한 말투와 친절한 태도, 몸짓은 손끝까지 우아하다. 단, 운전대를 잡은 프랑스인을 제외하면...


역에서 가까운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가벼운 복장으로 나와 천천히 도시를 알아갔다. 빨간 반바지에 파란색과 흰색으로 위아래를 나눈 외투를 입고 보니 의도치 않게 영락없는 프랑스 국기다. 프랑스의 가호를 입었으니 소매치기당할 일은 없겠지... 약간에 쇼핑을 즐기고 해변 산책로를 걸었다. 넓고 긴 자갈해변과 푸른색 줄무니 파라솔이 제일 먼저 보였다. 해변을 따라 이어진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넉넉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움직였다. 조깅하는 사람, 반려동물과 산책하는 사람, 앞바퀴를 들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 벤치에 앉은 사람 등. 어느 누구의 시선도 상관 않고 자유롭다.

투명하게 빛이 부서지는 바다에 발을 담가봤다.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웃옷을 벗고 누워도 괜찮을까? 누가 신경 쓰겠어? 그러려고 여행 왔는데. 소심한 마음의 경계선을 넘었다. 한 걸음이면 충분했고 해방감은 도약했다. 내 마음, 내 삶은 그대로 내 거다.

플라쥬 파라솔 아래에서 로제 와인과 상시르를 마시며 바다를 바라봤다. 이래서 다들 니스를 외치는구나. 긴 여정에 굳었던 긴장이 스륵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