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도시, 세 번의 인연에게 받은 매너
프로방스의 바람이 매섭다는 사실은 'Rachel cobb'작가의 <MISTRAL> 사진집을 통해 짐작은 했지만 직접 맞아보기 전까진 그 혹독함은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가 없다.
밀도 높은 칼바람이 쉴 새 없이 몰아쳐 발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큰 힘이 필요했다. 바람에 맞서 여행을 이어가려 했지만 결국은 항복을 선언, 대부분의 일정을 카메라도 내려놓고 차에 숨어 보냈다.
아를에서 북쪽으로 1시간 남짓 떨어진 알필레스자연공원 산자락에 위치한 빛의 채석장을 찾았다. 프랑스 남부 산악지대의 폐광산이 전시장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네모 반듯하게 잘린 채석장의 높은 천장고와 깊고 넓은 공간을 활용해 다양한 빛과 소리의 변주가 반사돼 울려 퍼진다. 거대한 공간을 웅장하게 채우는 빛과 소리에 압도되는 경험을 했다. 빛의 채석장 안과 밖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세찬 바람은 좀처럼 그칠 줄 몰랐다. 바람에 저항하는 것은 소용없었다.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결국 바람을 피해 차를 타고 산악마을 고흐드(Gordes)로 행선지를 옮겼다.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한 바람이 우릴 맞이했다. 높게 솟은 산악지대, 가파른 산등성이에 건조한 흙집들이 빼곡히 모여 독특한 풍경을 가진 고흐드는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시종일관 불어닥치는 칼바람에 맞서 마을을 향해 걸었지만 도저히 이 바람은 이겨낼 수 없었다. 여행 의지는 그대로 꺾여버렸다. 결국 진입부 뷰포인트에서 후다닥 사진을 찍고 도망쳐 나왔다. 처음으로 도장 찍기 하듯 겉만 훑고 지나가는 여행을 하니 왠지 모를 굴욕감마저 느꼈다.
정신이 혼미해지기 전에 재빨리 대안을 찾아 초록빛 계곡물이 흐르는 숲 속에 바우클러스 스프링 마을(Vaucluse spring)로 향했다. 이곳도 바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추위에 벌벌 떨며 몸을 웅크리고 마을을 감상했다. 맑고 투명한 물속에 수초들이 넘실댄다. 수초의 초록빛이 물길을 따라 퍼져나갔다.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마을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계곡 옆 카페에서 잠시 바람을 피해 크레페로 허기를 달래고 마을을 떠났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어느 이름 모를 시골 낡은 주유소에서 오래된 기계에 카드를 꽂고 20유로 주유를 했다. 기분이 찜찜해 정상적으로 결제가 됐나 확인해 봤다. 슬픈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 걸까, 과결제 이벤트가 발생했다. 주유금액에 7배를 넘어 150유로가 찍혀있다. 황당함에 사람을 찾아봤지만 상주 직원은 커녕 마을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다. 주말이라 전화도 받지 않았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당장 해결 가능한 일이 아니니 증거만 남겨놓고 자리를 떠났다. 이후에도 다른 주유소에서 같은 일을 한 번 더 겪었다. '프랑스오일포비아'가 생길 것 같다. 다행히도 문의메일 보낸 지 3주 만에 주유회사로부터 회신이 왔고 카드결제 시 보증금액을 포함해 최대 결제금액이 찍히는 자회사 카드결제시스템에 대해 안내받았다. 사실 지금도 무슨 말인진 이해가 안 된다. 마지막 문단에 출금일에 정상금액이 빠져나갈 거라는 문구를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할 수 있었다.
혹독한 바람을 피해 대부분의 식사를 집에서 요리해 먹었다. 여행 중 직접 요리를 해 먹는 커다란 기쁨을 발견했다. 니스의 아시아마트에서 사 온 김치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장을 볼 때 무엇을 만들어 먹을지 고민하는 것이 즐겁다. 오늘은 가지가 좋아 보였다. 집에 돌아와 가지 솥밥에 된장국을 끓였다. 마리네이드 대구살 스테이크는 여행 오기 전엔 생각도 못해본 요리다. 된장 버터에 재운 양고기 오븐요리는 풍미가 넘쳤다. 상상했던 음식을 직접 요리하고 함께 나누면서 여행의 새로운 즐거움을 찾았다. 커다란 행복은 일상 어디에나 있었다.
식사를 마친 다음에는 해지는 들판을 걸었다. 그동안에 여정들을 회상하고 느낀 점들, 좋았던 것, 힘들었던 일, 일상에 대한 그리움들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아를을 떠날 때가 왔다. 더없이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했다. 칼바람에 지쳐 한 곳에서 가만히 있지 못한 아쉬움도 남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여행자다. 모든 것을 바라는 대로 다 할 순 없다. 이것 또한 그동안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에게 잠시 쉬었다 가라는 선물로 받아들였다.
아를을 떠나 엑상프로방스로 가는 길, 'Aix-en-Provence'에 'Aix'가 교통의 중심을 상징하는 프로방스의 축을 뜻하는 게 아닐까 이야기를 나눴다. 실제로 지도를 보면 엑상프로방스를 중심으로 방사형의 도로가 프로방스 전 지역을 향해 뻗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떠나는 길에 론강의 끝, 바다와 만나는 하구역에 길이 약 7km의 해안사구와 해변이 펼쳐진 나폴레옹 플라쥬에 잠시 들렀다. 조밀한 모래가 단단히 쌓여있어서 해변을 차로도 운전이 가능하다. 지중해 바다를 옆에 두고 해변 위를 달렸다.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던 한적한 공간에 차를 세우고 조용한 바다를 보며 느린 시간을 보냈다.
다시 길을 떠나 다음 숙소로 향했다. 이름 모를 몇 개의 마을과 호수를 지나 엑상프로방스 중심지에서 30분 거리에 떨어진 작고 예쁜 마을 쌩까냣(Saint-cannat)에 도착했다.
흙빛에 단출하고 아담한 집들과 큼지막한 호박돌 돌담이 이어져 마을을 이룬다. 중심가에는 작은 마트 하나, 오래된 과일 야채가게 하나, 호탕한 아저씨가 운영하는 정육점 하나, 젠틀한 종업원과 바게트가 맛있던 제과점 둘, 세 개의 카페가 있다. 전체를 다 돌아도 30분이 채 안 걸리는 정겨운 마을이다.
숙소는 마을 외곽 페르시안 혼혈로 보이는 젊은 부부와 도도한 검은 고양이가 사는 아담한 집이다. 지역 양조장에서 생산한 로제 와인으로 우릴 반겨줬다. 깔끔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집에는 필요한 모든 것들이 잘 갖춰져 있다.
숙소 이용과 관련된 주의사항, 주변 볼거리, 여행 이야기 등 약간의 대화를 나누고 뒤돌아서는 그녀에게 어줍잖은 발음으로 "메흑시(Merci, 고마워)"라고 외쳤다. 순간 그녀는 우아한 턴과 함께 "어흐브와(Au revoir, 또 봐)"라고 환하게 응해줬다. 아주 잠깐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녀의 우아한 매너는 감히 따라 할 수 조차 없을 것만 같았다. 다들 왜 프랑스어를 배우려는지 알 것 같다. 긴 여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한동안 곱씹었다.
다음날 엑상프로방스에 도착했다. 이제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사실 이곳에 특별한 목적을 갖고 온 게 아니다. 그냥 어감이 좋고 지정학적 위치를 봤을 때 '뭐라도 있겠지'란 무지하고 근거 없는 확신을 갖고 왔다. 오랜만에 도시로 나오니 좁은 도로와 비싼 주차비, 밀집한 주차환경에 긴장된다. 주차할 곳 마저 찾기 힘들다. 결국 구글을 뒤적거려 시 외곽에 그나마 제일 저렴한 공영주차장을 찾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운 좋게도 바로 근처에 폴 세잔의 집 이정표를 발견했다. 고민 없이 언덕을 올라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작고 아담한 세잔의 집을 방문했다.
내부에는 그가 생전에 작업했던 화실을 볼 수 있었다. 화구들과 꽃, 각종 과일들, 특히 세 개의 해골 등 평소 그가 그리던 정물들이 함께 진열되어 있다. 엄숙한 분위기가 공간을 채운다. 미술 쪽으론 무지한 탓에 얕은 지식의 창으로 이 공간을 바라봤지만 전공자거나 세잔의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성지일 것 같다.
하나 인상적인 점은 화실을 제외한 집안 전체가 화려한 붉은색의 페인트를 칠했다. 되려 화실이 회색 빛으로 칠해져 죽어있는 공간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모순 같았다. 살아있는 듯한 색채로 빛을 발하는 명화들이 탄생한 공간이 죽어있는 느낌이라니.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세잔은 작업할 때 벽에 반사된 햇빛이 색채에 간섭하는 것을 극도로 견딜 수가 없어서 온 공간을 회색으로 채웠다고 한다. 흥미로웠다. 사진에 화이트 밸런스의 기준점이 회색인 것도 비슷한 이치에서 나온 게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세잔이 좋아했던 공간, 저 멀리 생트빅투아르 산이 보이는 '화가의 언덕'을 올랐다. 언덕을 향해 길을 오르던 중 어느 중년의 부부가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베를린에서 온 그 부부는 독일 사람 아니랄까 봐 제일 먼저 직업부터 묻는다. 그는 에너지 무역을 관리하는 꽤 고위직의 인사였다. 한때 나는 연구원이었지만 지금은 여행가다. 긴 여행을 떠나 여기에 오기까지 여행 이야기를 들려줬다. 길 위에서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먼저 화가의 언덕을 올랐다. 뒤늦게 화가의 언덕에 도착했을 때 내려오는 그들과 다시 마주쳤다. 나는 그들에게 마지막 인사말을 전했다. "당신이 만약 나에게 여행했던 곳 중 어디에 살고 싶냐고 물어보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베를린이라고 답할 거야, 그곳은 우리에게 너무 특별했어"
베를린은 지금도 아쉽고 그립다.
지수는 그동안 우리가 너무 시골 동네 위주로만 여행한 거 같다고 대도시를 보고 싶어 했다. 생까냣에서 남쪽으로 약 1시간 30분 거리에는 지단의 도시 마르세유가 있다. 달리는 도로 위, 지수는 마르세유에 뭐가 있는지 묻는다. 나는 주저 없이 답했다.
"마르세유 턴", "그게 뭐야?", "있어, 지단의 근본", "그게 뭐야..."
실없는 농담을 던지다 보니 금세 도착했다. 첫 관문부터 운전 난이도가 지옥이다. 그 어떤 도시들보다 압도적이다. 온 도시가 오르내리는 높고 가파른 언덕인 데다가 빼곡하게 집들이 모여있다. 도로는 전부 1차선 일방통행에 그마저도 양 옆에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점령했다. 깻잎 한 장 차이로 운전을 해야만 한다. 압박감에 스트레스가 밀려온다. 지단은 이런 곳에서 공놀이를 하면서 축구의 꿈을 키운 것인가. 풀커버 보험을 가입하길 잘했다. 마르세유가 한눈에 보이는 제일 높은 곳, 노트르담 성당에 올라 도시의 360도 파노라마를 둘러봤다. 멀지 않은 바다에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배경이 된 샤토 디프 섬이 보인다. 배를 타기 위해 항구로 내려왔지만 강풍으로 결항이다. 대신 오랜만에 대도시의 쇼핑거리를 걸었다.
어느 옷가게를 구경 중, 시야 가장자리에 우릴 보며 수군거리는 10대 소녀들이 보였다. 요즘 K-pop이 워낙 유명하니 한국인을 보고 반가워하나 보다 싶었다. 그들은 생각보다 꽤 한참을 따라왔다. 잠시 멈춰 섰을 때, 우리에게 스타일이 너무 좋다며 말을 걸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서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 했다. 이쁘고 잘생긴 거랑은 거리가 먼 사람들인데. 하물며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고 옷을 그렇게 잘 입는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아마도 프랑스인들과는 조금은 다른 옷차림과 K-pop효과를 본 게 아닐까. 고맙다는 짧은 소감과 약간에 대화를 나눴다. 한 소녀가 서투른 말투로 또박또박 "예쁘다"라고 한국말로 지수를 칭찬했다. 웃음이 터졌다. 여행지에서 우리나라 말로 칭찬받다니!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고마웠다. 답례로 "메흐시 부끄(Merci beaucoup,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쌩까냣에서 우리의 4번째 결혼기념일을 조촐하게 기념했다. 아침 일찍 정육점에 가서 오늘 결혼기념일이니까 안심을 큼지막하게 썰어달라고 부탁했다. 아저씨가 호탕하게 웃으신다. 고기를 투박한 종이에 싸주는 것도 정겹다. 아껴뒀던 로컬 로제와인과 함께 식사를 하고 짧게 기념사진을 찍었다. 밤거리를 걸으면서 그동안 만났던 인연들과 나눴던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회상했다. 호스트의 진한 여운을 남긴 '어흐브와', 엑상프로방스에서 만난 독일인 부부와의 여행 이야기, 마르세유 10대 소녀들의 '예쁘다'. 너무나 친절했던 그들의 매너에 우리가 충분히 교감을 나누지 못한 것 같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풍성하게 표현할걸. 못다 한 말들을 생각하며 후회와 기쁨을 함께 느꼈다.
하늘은 붉게 물들었고 느릿하게 저무는 노을빛이 마을의 밤거리로 진하게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