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이 과일을 진열하는 방법
베를린만의 과일 진열 방식은 재밌다. 여러 도시를 다녀봤지만 그 어떤 곳도 이들의 특별함은 넘을 수 없었다.
소비자가 모든 과일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과일상자를 눈높이에서부터 비스듬히 기울여 허리선으로 내려오면서 점차 완만하게 놓았다. 다양한 과일들이 가지런히 정렬된 모습을 보면 고르는 재미뿐만 아니라 보는 즐거움마저 느껴진다. 심지어 이런 진열 방식은 베를린 시내를 걷다 보면 어디에서나 쉽고 흔하게 볼 수 있다.
틈나는 대로 과일가게에 집중했다. 2년 만에 만지는 카메라는 낡았고 셔터를 누르는 건 어색하기만 하다. 낯선 환경에 움츠러든 마음을 풀기 위해 과일 진열대를 찍으며 차근차근 사진 찍는 재미를 찾았다. 잊고 있던 감각들이 서서히 일어나는 기분이 든다. 잘 정돈된 과일 진열장은 10년 전 그대로였다. 베를린 과일가게처럼 여전함, 한결같음을 유지하는 것만큼 멋진 일도 없는 것 같다.
왜 나는 사진이 좋을까.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가장 낮은 진입장벽을 가진 예술행위라 그럴까. 사실에 가까운 허구, 정지화상이 가지고 있는 순간을 담는 힘에 매료된 걸까. 시작은 조경을 공부하면서 꽃, 식물 등 자연환경을 찍으면서부터였다. 잘 정돈된 정형적 구조 안에 담긴 비정형적 대상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사진이 좋아 꾸준히 놓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진지하게 사진업에 뛰어들 자신은 없다. 좋아하는 것이 본업이 되면 싫어질 것 만 같다. 사실 실력이 받쳐주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정규 교육을 받을 노력은 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예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가능성에 중독된 상태일지도 모른다.
20년 전쯤 비보잉 댄스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비보이 댄서가 될 가능성이 무한한 친구 W를 조롱한 적이 있다.
매 년 열리는 학예회,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무대에 두 사람이 올랐다. 실력과 재능이 출중했던 L과 실력도 재능도 보이지 않던 W. W는 우스꽝스러운 춤 동작과 함께 호응을 유도하는 동작만 남발했다. 그 꼴이 보기 싫었던 나는 야유와 조롱을 섞어 날렸다. 그 당시 나는 무대 밖 군중 속 어린 소년이었고 무지성적으로 날린 비난은 W에게 닿지 않았다. 그날의 일은 내 머릿속에만 남은 채 잊혔다.
그 뒤로 10년이 지났고 어린 소년은 대학원생이 되어 연구실에 좀비 마냥 살았다. 그때부터 사진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중독된 삶을 살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연구실의 밤, TV에서 스쳐가듯 봤던 어느 건축가의 작품이 다시 보고 싶었다. 머릿속을 헤집으며 가장 근접한 키워드를 찾아 구글링 했다. 이미지 검색 결과, 나오라는 집은 나오지 않고 웬 인물 사진만 나온다.
[OOO발레리노, OOO극 주인공 발탁]... 어디서 봤더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중학교 때 동창 비보이를 꿈꾸던 W였다.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멍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뒤늦게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를 비롯한 전교생의 야유를 받던 W는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춤의 길을 조용히 걷고 있었다. 그동안 얼마만큼에 고민과 갈등이 있었을까, 내심 짐작해 봤다. L에 대한 열등감이 있진 않았을까.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의심이 있진 않았을까. 설령 그 어떤 좌절을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W는 가능성에 그치지 않았고 조용히 아주 오랫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아주 예상치 못한 순간, 불 꺼진 연구실에서 마우스를 클릭하던 가여운 대학원생의 모니터로 불현듯 찾아왔다.
무대 밖에서 조롱을 퍼붓던 중학생은 연구실 구석 대학원생이 되었고 구령대 무대 위 자신감만 충만했던 댄서는 연극무대 위 발레리노가 됐다. 그날 나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을 배웠다. 이것이 W가 내게 준 커다란 가르침이고 복수였다. 심지어 그는 이제 나란 존재는 알지도 못한다. 지금 생각해도 이보다 통쾌하게 아팠던 적이 없다.
여전히 나는 가능성에 머물러있는 우물 안 여행사진가로 과일가게 앞에 서있다. 다만 이제는 좋아하는 것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용기와 거절당하더라도 꿋꿋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게으름이 이 여행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