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기 쉬운 소중한 우리의 삶을 가꿔가는 여행
코네마라를 떠나 사실상 마지막 여행지 미나더프로 향했다. 이번에는 북서쪽 끝, 차로 4시간 30분을 달려 보다 더 자연과 가까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장거리 운전의 피로를 풀기 위해 휴식 겸 중간지점인 페어리 브릿지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먼 길을 재촉했다. 골짜기를 넘어 깊은 산속 작은 마을, 아니 마을이라기보단 산 언저리에 듬성듬성 집들이 빼꼼히 자리 잡은 촌락에 가까운 작은 동네 미나더프에 도착했다.
완만한 U자형 계곡 복부에는 사람 수 보다 많은 양 떼들이 너른 초원 위에 풀을 뜯고 있다. 어쩌면 이 동네의 실질적 지배종은 양이고 인간은 그저 생의 유지를 위해 그들을 공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묘한 느낌마저 든다.
숙소는 산 중턱에 짚으로 지붕을 얹은 아름다운 아일랜드의 전통가옥을 안내받았다. 둘이 보내기엔 지나치게 넓었지만 오래된 가구들과 잘 갖춰진 주방 그리고 무엇보다 피트를 연료로 떼는 벽난로가 특히 맘에 들었다.
머무는 내내 비가 세차게 내렸다. 낮에는 주로 시내에 나가 장을 보고 돌아와 밥을 지어먹고 밤이 되면 기온이 뚝 떨어져 몸을 웅크리고 벽난로 앞에 앉아 피트를 한 움큼 태워 타들어가는 불꽃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돌이켜보니 겨울에 시작한 이 여행은 봄도 여름도 아닌 모호한 계절을 지나 여행 끝무렵에 와서는 다시 겨울 끝자락에 놓인 것 만 같다. 일상을 도망치듯 떠나 방향성을 잃고 일상을 도망치듯 떠나 새로운 삶을 탐색하고 있는 지금의 처지와 이 여행이 너무나 닮아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떤 계절을 찾아 떠나왔고 이 여행이 끝나면 어떤 삶의 궤적을 그려나갈 수 있을까. 미나더프의 밤은 계절의 감각을 상실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발걸음을 겨울과 봄 사이 문턱에 멈춰 세웠고 다시 한번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가야 할지 물음을 던졌다.
삶의 결이 변하기 시작한 시점을 어디쯤에 찍어야 할까? 추상적으로는 긴 여행을 꿈꿨던 갓 서른때부터겠지만 조금 더 가깝고 명확히는 퇴사 이후의 생활에 전환점을 찍고 싶다. 분에 넘치는 고등교육을 받고 운 좋게도 능력 밖의 직장생활을 했다. 그 어렵다던 평범한 삶을 살아봤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 긴 여행의 꿈이 실현되기 전까지 몇 개월 간의 일상생활을 떠올렸다.
언제부터인가 퇴사는 자유를 갈망하는 상징적인 단어로 자리 잡았다. 삶을 지배하는 직장생활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지고 유행처럼 번져갔다. 퇴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꿈의 단어가 되었다. 나 역시 지금의 전환점을 퇴사 이후의 삶에서부터 사고하고 있다. 이 틀로부터 자유롭진 못한 수많은 보통사람 중 하나다. 그렇다고 삶의 방식까지 틀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퇴사로 인한 자유가 아닌 주체적 활동에 의한 자유로운 생활을 원한다.
제일 먼저 평소처럼 6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시간을 명상과 필사로 대체했다. 커피를 내리고 과일을 깎고 빵을 구워 지수와 소박한 아침을 맞이한다. 오전에 청소와 빨래를 하고 나면 시간이 훌쩍 지나 어느새 점심 먹을 때가 된다. 삼시 세끼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나면 하루가 금방 간다. 직장을 다닐 때는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외면하고 살았을까? 어쩌면 사회에 틈바구니에서 너무 버둥거리며 살아온 게 아닐까 싶다. 지수와 차를 마시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동안 집을 소홀히 여기고 몸과 마음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퇴사 이후의 삶은 단순히 탈제도, 해방, 일탈, 자유의 상징 같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게 경쟁사회의 압박을 벗어나 떠나온 여행은 도피처가 될 수 없었다. 예측할 수 없는 간섭은 어디에나 있었고 여행은 늘 불안정했다. 우리들의 매 하루는 언제든지 쉽게 다쳤고 그만큼 소중했다. 그럼에도 꿋꿋이 나아가 이곳 아일랜드 최북단 미나더프 외딴집에 왔다. 돌이켜보면 행복은 순간에 머무는 것이었다. 과거에 예치할 수 없고 미래가 보장할 수도 없었다. 오직 한결같이 앞으로 나아가다 잠깐 멈춰 서서 지금 내가 이곳에 두발을 딛고 서 있음을 느낄 때 행복은 다가왔다.
셀 수 없는 저항에 맞서 한결같은 일상을 지켜가는 건 진심으로 대단한 일이었다. 피트광부는 비바람이 몰아쳐도 미나더프 집 곳곳을 다니며 연료창고에 피트를 채워 넣었다. 딩글주민들은 자본주의에 젖지 않고 바다를 가꿔간다. 그라쎄 숙소에서 만난 가족들의 화목함도 그들의 흐트러짐 없는 부지런함 덕분이었고 과거 중학교 동창 친구의 꿈을 향한 끈질김 또한 그랬다. 베를린 과일가게처럼 자신만의 가치를 오랫동안 지켜오는 모든 것들을 위대하다고 말해도 괜찮을 것 같다.
다시 지금의 우리를 돌아봤다. 이 여행은 삶과 분리되지 않았다. 일상의 연장선을 이어서 다양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서 여기까지 왔다. 모든 것들이 방안에만 있으면 평생 몰랐을 수많은 감정과 자극이었다. 그 안에 몸을 맡겨 스스로를 돌보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미나더프의 평온한 시간은 계절의 문턱에 놓인 우리에게 커다란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삶은 너무나 소중하고 다치기 쉬우니까 늘 가꾸고 돌보며 살아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