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소리를 잠재우는 고요한 도시의 계절
프라하로 떠나는 기차 안, 창 밖 넓게 펼쳐진 초원을 바라봤다. 한가롭고 적적한 기분. 지금쯤 평행우주 어딘가 회사에서 허덕이고 있을 또 다른 나를 상상하니 순간에 감사함이 몰려온다. 지금 우리는 훌쩍 떠나가고 있다.
프라하의 첫인상은 기대와는 달리 유쾌하지 않았다. 중앙역 트램 티켓부스는 돈만 삼키고 발권을 잊었다.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본인 소관이 아니므로 이메일을 보내란다. 설령 메일을 보내더라도 한참을 기다려야 할게 뻔한 상황이라 에너지를 낭비하기 싫어 포기했다. 지불은 한순간이지만 환불은 한세월이다. 이런 비합리적인 상황을 겪고 나니 유럽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 심지어 역무원을 통해 발권하면 수수료가 발생하는 기적의 경제학을 체험했다. 지역경제에 기여했다 셈 치자.
슬픈 일은 잔잔하게 오지 않고 한 번에 밀려오는 걸까. 어렵게 트램을 타고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했지만 예약 누락으로 거부당했다. 예약 확인서를 보여주며 여러 차례 항의했지만 늘 아쉬운 건 객의 입장이다.
평소 아무리 급한 일도 의연하고 침착하게 대처하던 내 모습은 사라지고 올라오는 화를 삭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대책 없던 나 자신이 낯설었다.
지수가 침착하게 프런트에 예약 누락 확인서를 요청해서 발급받았다. 대행사 환불 절차를 밟기로 한 다음 가장 가까운 다른 호텔을 예약해서 급히 이동했다. 시작부터 멘탈이 탈탈 털렸다.
3월, 프라하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 기온은 -5도에서 9도, 날씨는 화창하고 좋다. 어제의 기억은 덮어두고 도시와 친해질 겸 거리를 걸었다. 아름다운 거리를 즐기기 위해 카메라도 내려놓고 가벼운 두 손으로 걸어본다. 찍고 싶은 건 많았지만 두 눈으로 보고 싶은 게 더 많았다. 시간은 많으니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다니자.
블타바강이 흐르는 프라하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과 같다. 빨간 지붕 아래 화려한 건물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조각들이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거리는 반듯이 잘 닦여있고 오랜 세월 발자취에 쓸려 맨질맨질해진 디딤돌들이 역사적 깊이를 말해준다.
프라하에 곳곳을 누비며 도시의 인상을 기록했다. 도시의 건물들, 거리의 사람들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동안 불투명하게 다가왔던 감정들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감탄, 기쁨, 흥분을 감출 줄 모르던 천둥벌거숭이 같던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이제는 여행의 감정이 잔잔하고 서서히 일렁였다. 바랐던 감정이었다. 천천히 오래오래.
올드타운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트램의 진동은 건물을 통째로 흔들고 새벽 취객들의 고성방가와 적당한 소음으로 밤이 채워진다.
3월 어느 날 아침, 눈이 펑펑 내렸다. 빨간 지붕은 하얀 눈으로 덮였고 모든 소리는 내리는 눈에 묻혀 낮게 울려 퍼진다.
도시를 크게 돌아 고요한 일상을 걸었다. 따뜻한 봄을 기다리며 꽃을 활짝 피웠던 크로커스와 개나리는 때 아닌 눈 소식에 어리둥절했겠지만 계절의 경계선을 목격하는 이방인의 입장에선 즐거운 순간의 연속이다.
어느새 올드타운을 벗어나 현지인이 사는 동네 깊숙이 들어왔다. 중심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맞닿은 올새니 공동묘지(Olsany cemetery)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19세기 유럽의 조소 예술의 황금기를 간직한 거대한 묘지공원이자 미술관이다.
눈 쌓인 묘비의 고요한 침묵 속에서 죽음에 대한 그들의 태도와 삶의 흔적들에 귀를 기울였다. 거대한 깃털 펜을 쥐고 있는 여신의 조각상은 우아함과 역동성이 살아있다. 햇빛을 가리는 여인의 망토 위로 마치 생전의 업을 받쳐 올린 듯 소복이 눈이 쌓여간다.
"죽음은 산 사람의 몫 같아, 고인의 생을 기억하고 붙잡고 싶어서 묘를 남기는 게 아닐까" 지수에게 말했다.
예전부터 죽음에 대해 하나 다짐한 것이 있다. 슬픔은 산 사람의 것이지만 떠난 이의 빈자리에 남는 것이 슬픔뿐이라면 너무나 허무하지 않을까. 언젠가 미국 하와이의 뮤지션이자 독립운동가, 이즈라엘 카마카위우올레(Israel kamakawiwo'ole)의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 커버곡 뮤직비디오를 본 적 있다. 그 영상에는 이즈라엘 고향 주민들이 다 함께 바다로 나와 배를 띄우고 그의 유골을 바다로 흩뿌리며 잘 가라고 환호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장례식이 하나의 축제가 될 수 있구나, 죽음 뒤에 반드시 슬픔만 있으리란 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장례식은 함께 했던 이들이 전시장에 모여 좋았던 기억, 어처구니없던 사건들을 추억하는 놀이터가 됐으면 좋겠다. 당신들 덕분에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지고 즐거웠다고 이야기를 나누는 축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다.
불현듯 죽음이 찾아온다면 그 찰나의 순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 죽는구나. 그동안 즐거웠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았어'라고 씨익 웃으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남길 수 있을까. 나는 그러고 싶다. 유한한 생명이 주는 무한한 삶의 궤적 중 단 하나의 목표점이 있다면 최종과녁은 그곳을 향해있다.
상념에 빠져 침묵 속을 걸었다. 정적을 깨고 지수가 말했다.
"너 없으면 나는 어떻게 살지?", "내가 더 오래 살걸?", "그것도 싫어", "그렇다면 순장...?!", "약속했다?"
나의 죽음은 이렇게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