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게 하는 것들
초등학생이었을 때 나에겐 아침에 꼭 빠지지 않는 일과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등교 전 잠깐의 시간 동안 마루에 앉아 있는 일이었다.
마루에 앉아 있는 5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하루를 시작하는 힘이기도 하며 오늘도 행복한 하루가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었다.
하루의 시작에 마루에서 느껴지는 생각과 감정은 하루하루 새로웠다.
특히 어렸을 때는 지금과는 다르게 사계절이 뚜렷하여 그때마다 느낄 수 있는 것들이 확연히 달랐다.
겨울에는 길고 추운 겨울밤 동안 추위를 피하기 위해 마당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솜이불을 덮은 것 마냥 내려앉은 눈에 왠지 모를 포근함과 따뜻함을 느꼈다.
봄에는 따스히 불어오는 봄바람에 몸을 맡기며 생각에 잠겼다.
여름은 더위에 취약한 나에게 가장 기피되는 계절이었지만 더위가 시작되기 전의 아침은 마치 폭풍이 오기 전 마지막 평화를 즐기는 듯했다.
대망의 가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아마도 어렸을 때 느꼈던 감정이 지금까지 지속되어 이토록 가을을 좋아하는 것 같다.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은 마루에 앉아 있으면 차갑기도 시원하기도 한 바람이 솔솔 불어와 뺨을 스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면 행복의 가장 중심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다.
이런 나의 하루의 시작점이자 하루를 살게 했던 행복루틴은 어느샌가 사라졌다.
아마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당시 남아있는 기억에는 8시까지 학교를 가야 했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걸어가면 충분히 걸어갈 학교를 중학생이 되어 언제 올지 모를 만원 버스를 기다리고 간신히 버스에 내리면 끝이 보이지 않을 언덕을 올라 학교에 갔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자주 지각을 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내 행복의 시작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없어졌다.
그렇게 무심히 잊혔던 행복의 시작점은 불현듯 급하게 산 선풍기에서 찾아왔다.
샤워를 하고 나와 앉아 선풍기 바람을 맞으니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을 회상하며 "어렸을 때는 그런 작은 거 하나에도 행복을 느끼고 있었구나" 하며 신기하기도 부럽기도 하며 지금의 삶과는 대비되는 것에 안타깝기도 했다.
어른이 된 사회 속의 나는 단지 기계 속 톱니바퀴가 된 것만 같다.
아침 9시의 시작을 위해 무거운 몸과 마음을 들고일어나 억지로 화장실에 끌고 가며 하루를 시작한다.
매번 똑같은 일과 사람들 그 속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들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로 오후 6시를 간신히 지나 잠깐의 저녁 시간이 끝나고 하루가 마무리된다.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내고 하루하루의 간격사이에서 조금씩 메말라감을 느꼈다.
행복의 시작점이 사라진 순간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하루를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토록 작다고 생각했던 것이 세월이 흘러 이리 크게 다가올지 몰랐다.
하루를 온전히 살아가는 것, 온전히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나다울 수 있도록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상처 주는 모든 것들로부터 나를 잃지 않으며 나를 지켜내는 것
나를 살게 하는 것, 온전히 나의 하루를 살아가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무수히 상처받고 흔들리는 나를 지탱하며 감정의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게 만드는 것
하루하루 사이에 나를 살게 하는 것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마치 어렸을 때 마루에 앉아 잠깐의 시간을 보낸 것처럼
그렇게 조금씩 만들다 보면 나의 하루에는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이 가득 차고 나를 상처 주는 것들이 비집고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간 하루를 다시 온전히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