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본 묶기
평소와 다르게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아침 일찍 검진센터로 향했다.
센터에 도착해 안내받은 층으로 올라가 검진복을 받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검진복 상의는 앞 쪽이 펼쳐져 있었고 이를 끈으로 묶는 구조였다.
자연스럽게 두 끈을 붙잡고 리본모양으로 묶기 시작했다.
위, 아래 예쁘게 리본을 묶고 나니 밋밋한 옷에 나름의 맵시가 생겼다.
옷을 갈아입고 거울을 보다 문득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리본을 묶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분명 리본을 묶을 수 없었을 때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
전교생이 100명 남짓한 초등학교를 다녔다.
작은 학교에서 나름 뜀박질을 잘한다는 이유로 지역 학생들이 모여 겨루는 육상경기를 나가게 됐다.
학교가 작다 보니 장비가 넉넉하지 않아 대회용 신발의 순번을 정해 신었다.
신발은 서로 마다 신발끈을 조이는 정도가 달랐고 끈이 풀린 상태로 신발을 받았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도록 나는 끈을 묶는 방법을 몰랐고 그럴 때마다 절절맬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면 옆에 있던 친구가 신발끈을 묶어주었다.
계속 친구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어 집에 가자마자 고모에게 끈을 묶는 방법을 배웠다.
그때 배운 방법을 아직까지도 변함없이 잘 쓰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생활 속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고모에게 배운 것 같다.
리본 묶는 방법 이외에도 나의 삶을 지나간 분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일례로 중학교 담임선생님께 배웠던 마음처럼 말이다.
어렸을 때를 돌이켜보면 경제적으로 집안 사정이 어려웠고 이 점은 여러 상처를 남겼다.
학교를 다니며 매번 급식비를 밀리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선생님들은 밀린 학생들의 이름을 호명했다.
언제나 그 호명 안에 내 이름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일로 넘길 수 있지만 그 당시 여렸던 마음은 아니었다.
창피하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마음에 생채기가 생겼다.
하지만 학교 생활에서 모든 순간이 그렇지만은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해 처음 만났던 담임선생님은 급식비가 밀릴 때면 나를 따로 불러 이야기하셨다.
아직까지도 그때의 기억은 따뜻한 감사함으로 남아있다.
그때 배웠던 선생님의 세심한 생각과 상처를 보듬어주는 마음은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았다.
그렇기에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기 전에 언제나 내가 놓칠 수 있는 타인의 마음을 그리고 상처를 생각하고자 한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생각해 보니 다행히 나의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 많았다.
리본 묶기 같은 사소한 삶의 지혜부터 다른 이를 생각하는 마음처럼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을 배웠다.
모날 수도 있었던 나의 삶을 안아주었던 많은 분들 덕분에 지금까지 하루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덕분에 평온한 삶을 보낼 수 있었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평온한 하루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말과 행동,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작은 것들이라도 누군가의 상처를 안아줄 수 있기를 삶에 작은 쉼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받은 것처럼 내가 다른 이에게 그리고 다른 이가 또 다른 이에게 따스함을 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