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도 있답니다(11)

척척박사

by 이도

아주 오랜 예전부터 감정을 숨기는데 바빴다.

언제나 나의 마음은 뒷전이었고 애써 나를 속여가며 남들의 시선을 맞추며 살아왔다.

나의 마음을 숨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가장 주된 이유는 남들이 불편한 상황에 처해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나만 손해 보면 됐지", "나만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불편한 상황이어도 괜찮은 척, 좋은 척을 했다.

타인의 무례한 언행에도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걸 꺼야"라며 나의 탓으로 돌렸다.

어느 순간 나는 타인과 상황에 맞는 척을 하는, 해야만 하는 척척박사가 되었다.


직업이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보니 하루에도 다양한 사람의 여러 가지 감정이 비가 내리듯 나에게 쏟아졌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면 흠뻑 젖은 나를 발견하곤 했다.

어떤 날에는 비가 홍수가 되어 나 하나조차도 마음대로 가눌 수 없는 날이 있었고 나 또한 그 감정에 동요되어 후회가 반복되는 나날이 있었다.

어느 날은 일을 마치고 차에 올라타 문을 닫을 새도 없이 공허함이 뒤따라 들어왔다.

갑자기 들어온 공허함이라는 감정은 나를 더욱더 무겁게 만들었다.

방금까지 내가 지었던 미소와 웃음이 무색하게도 나의 마음은 칠흑 같은 심연으로 끌어당겨졌다.

남들을 위한다는 핑계로 만들었던 웃음은 진짜가 아니었기에 어느 순간 제 자리를 잡아 퍼져만 가는 어두운 감정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직을 하며 새롭게 자리를 잡기 시작한 회사에 출근을 할 때 아버지가 해주었던 말이 무심코 떠올랐다.

"일을 할 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줘야 한다."

그때는 흘려들었던 말이 왜 갑자기 떠올랐을까 생각했다.

아버지가 했었던 말은 누구에게나 들었을 법한 사회생활에 대한 조언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서 아버지 또한 나와 같은 척척박사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위해 싫어도 좋은 척을 했으며 하기 싫은 일에 대해서도 아무 말도 못 하였을까.

나뿐만이 아니라 아버지가 그리고 수많은 우리가 척척박사가 된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좋든 싫든 앞으로도 척하는 일은 빠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내 한 몸 비 맞지 않을 수 있는 우산 하나 씌워줬으면 좋겠다.

우산이 작아 어깨가 젖어도 괜찮고 신발이 젖어도 괜찮다.

"나 지금 우산 쓰고 있어요" 할 수 있을 만한 나만의 우산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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