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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이 May 04. 2020

겨울이 지나, 봄이 왔습니다.

드라마'날씨가 좋으면 찾아갈게요' ㅣ 플랫(♭)이 드라마라면.

소란스러운 겨울은 가고, 차분한 봄이 왔습니다.


봄이 다가올 때의 설렘이 있다. 연둣빛 풀 위를 총총 뛰어다니는 풀벌레의 힘찬 발걸음, 창가를 타고 들어오는 햇살의 서걱임, 흩어지는 바람에 실려 날아오는 꽃잎의 물결. 세상은 봄이 왔다고 온 힘을 다해 알려준다.


따스함이 찾아오기까지 겨울은 춥고 썰렁하다. 올 겨울 유난히 고립되어 있던 탓일까. 봄이 찾아오다 멈춘 것 같았다. 마음 놓고 밖을 나돌아 다니기엔, 사회적인 거리가 필요한 시기였고 아직 조심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런 와중 봄이 왔구나를 다시금 느끼게 된 드라마가 있다. 



플랫(♭)이 드라마라면.


뭐랄까, 대놓고 밝지 않은데 참 다정하다. 플랫(♭)이 드라마로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분명 추운데 따뜻함이 가득했다. 느릿하지만 잔잔한 긴장감이 연속된다. 모순적인 단어들을 모아 설명하고 있음에도,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게는 어색하지 않은 수식어다. 


플랫(♭) 혹은 샾(#)은 음악에서 반올림 혹은 반내림에 해당한다. 반올림과 반내림이 주는 느낌은 거창하게 말하면 몽환적이거나 음울한 느낌을 준다. (다소 주관적인 느낌으로) 빠르고 경쾌한 템포의 곡이더라도 반올림이나 반내림이 섞여있으면, 안개가 자욱한 새벽의 숲을 연상시킨다. 지금 떠오르는 곡으로는 '아이유-이름에게', '다린-가을' 등 이 있다. 음악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나에게 이 노래들이 주는 느낌이 플랫(♭)이다. 
*아이유-이름에게 https://youtu.be/0w627XlZphs / *다린-가을 
https://youtu.be/1IApYpeWe8A


자주 보고 싶어서 액자에 사진을 넣어두었다는 말 대신, 액자 속에 사진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말한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별일 없냐고 물어본다. 네가 그리웠어라는 말 대신 왜 왔냐고 물어본다. 투박한 언어는 나에게만 애정표현으로 보이는 걸까. 작은 애정표현 하나조차 대놓고 꺼내지 못하는 조심스러운 사랑방식이 다정하면서도 애틋하다. 플랫(♭)이 드라마라면 역시 이런 느낌이겠지.



감정이 머무는 시간, 1초.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어느 지나가는 장면 중 하나이다. 영영 오지 않기를 바랐던 순간이 왔을 때를 직감하는 은섭이가 프레임에 가득 찬다. 생각했던 것보다 그 순간은 1초 정도 더 길다. 감정이 전해지는 시간이 1초 더 생긴 것이다. 감정이 머무는 시간, 단 몇 초의 시간은 시청자로 하여금 은섭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장치가 된다. 


16화의 짧지 않은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꼭 드라마여야 했을까? 꼭 16화이어야 했을까? 만약 영화였다면? 혹은 좀 더 짧은 회차로 구성되었다면? 그랬다면 시골마을의 평화로움과 인물 간의 긴밀한 서사를 느끼기엔 부족했을 것이다. 유독 등장인물의 감정이 느릿하게 담기는 순간이 있다. 아마 지금의 16화가 아니었다면, 머물 수 있는 감정의 시간은 짧아졌을 테다. 안될 말이다. 우리에겐 따뜻한 차를 양 손에 꼭 쥐고 몽글한 감정에 취할 수 있는 날도 필요하다.

jtbc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15화 중


슬프기만 하리란 법은 없지.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원작은 이도우 작가님의 동명소설로, 덕분에 캐릭터성이 명확하고 인물 간의 서사가 단단하다. 특히 작품 내 큰 축이 되는 이야기 중 하나인, '명주, 명여, 해원' 가족의 이야기는 가슴 저릿한 아픈 손가락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택한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행복한 결말이었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 어느 날 짜장면 집 원형 탁자에 삼각으로 둘러앉아 각자의 음식을 먹으며 안부를 묻는다. 떨어져 앉아 있는 그들의 모습은 좁힐 수 없는 마음의 거리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드라마와 소설은 끝이 났지만, 나는 아직도 이들의 행복을 바란다.


jtbc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5화 중


슬프기만 하리란 법은 없지.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굿나잇책방'에서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책 모임이 열린다. 온 동네를 휩쓸고 다니는 개구쟁이 '휘'는 그중 단연 눈에 띈다. 처음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휘'는, 나에게 있어 '휘블리'가 되었다. 반말을 좋아하는 그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반말을 한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큰 생명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는, 반모 클럽 우두머리 '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이런. 이렇게 되니 이 커플을 빼놓을 수 없다. 장우와 은실은 다른 말이 필요 없다. 귀엽다. 은실 앞에 서면 똑쟁이 장우는 말 한마디를 제대로 못한다. 불에 튀기는 팝콘처럼 통통 튀는 에너지를 전해주는 이들 역시 참으로 사랑스럽다. 


따뜻하다고만 하기엔 좀 외로운,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초반에 10초 넘기기 스킬을 사용하며, 빠른 정주행을 했다.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10초씩 넘겨버렸던 감정의 공백을 깨닫게 되었다. 빠르게 훑듯이 지나가버린 순간들이 아쉬워, 두 번째 정주행을 하고 있다. 긴장감 넘치는 후반부에 비해 잔잔하게 전개되는 전반부가 내게는 조금 답답했던 것이 틀림없다. 두 번째 정주행하고 있는 지금, 외로움을 위로받는 방법에 대해서 보고 있다. 사람으로 인한 외로움은 결국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아마도 누군가를 위로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인지라, 드라마 속 인물들이 주고받는 자연스러운 위로가 부러워지기까지 한다. 


드라마 영업 중.


누군가는 나의 사심 가득한 후기를 보고, 이 드라마 혹은 원작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작은 소망이 있기에 드라마 속 자세한 내용은 다루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추상적인 표현이 많이 담겼을지도 모른다. 뭐 어때. 이왕 이렇게 된 거. 감성적인 언어로 꽉 채워, 없는 파도도 만들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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