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강

by 글바트로스

매일새벽, 안양천으로 향한다.

인공 불빛 번쩍대는 인도를 따라 20여분 정도 걸으면, 도심 번화가와는 사뭇 다른 세상에 다다른다.

겨울밤은 늦잠꾸러기 아이처럼 눈 비비며 깨어나고, 새벽은 벌거벗고 떨어대는 앙상한 나무 가지 사이로 소리 없이 내려온다.


어둠과 빛, 서로 맞대면하는 짧은 만남의 순간.

어둠은 게으른 여인인양 마지못해 검은 치마 자락 동여매고, 여명은 재간둥이 섬처녀처럼 흰 저고리 앞섶 여미며 날쌔게 다가선다.

서로 언성을 높이며 삿대질해 대는 인간 세상과 달리, - 쪼금만 말미를 더 달라는 보채는 애원도 없이, - 각자 제 자리로 찾아간다.


창조주 묵언에 순응하는 중일까.

밤이 물러선 빈자리에 갓난쟁이 아기처럼 태어나는 새벽!

어둠과 빛이 창조 섭리 따라 순응하는 황홀한 광경 앞에 무릎 끓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호롱불에 죽어라 달려드는 하루살이처럼, 인공 불빛 유혹에 갈지자 행보로 헛발질해대던 낯익은 모습!

눈에 드러나지 않게 생명을 주는 무한한 날숨, 무상으로 빨아들이는 들숨으로 살아있는 존재, 허약한 신원이 얼핏 느껴진다.

창조주가 날숨을 보내 주지 않는 순간, 모닥불 불씨처럼 사그라질 존재임을 결국 인정하고야 만다.

유한한 내 신원, 불변의 섭리에 고개 숙이는 찰나다.


넉넉한 어매품을 넌지시 드러내는 새벽강.

겨울 강물에 까만 점처럼 동동 떠 다니는 가마우지, 유랑하는 쪼꼬미들은 점점 커지고 숫자도 늘어난다.

절반은 얼어붙은 얼음을 용케도 피해 다니며 자맥질하는 녀석들, 어찌나 귀여운지 연신 웃음이 흘러나온다. 내 새끼도 아닌데도 너무 춥지는 않은지, 부질없는 걱정이 앞선다.

날 보란 듯이, 장난꾸러기 녀석들은 서툰 자맥질 곡예 중이다.

작은 생명이 무탈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오지랖 마음으로, 가던 길 멈추고 가만히 바라본다.

잘 알고 있으니 염려 말라는 듯, 기우뚱 날갯짓으로 가끔씩 화답한다.

눈앞의 쪼꼬미들 여린 몸짓 따라 뜬금없이 생명예찬 흘러나와, 멈칫 놀라 주변을 둘러본다.

다행히, 아무도 없다.


안양천, 그 마법의 나라.

냇가에서 자맥질로 입술 파래진 가시네도, 잰걸음으로 겨울운무 너머에서 다가온다.

고바위 고갯길 어디선가 버리고 온, 초록마음도 나비처럼 나폴 대며 덩달아 귀환하는 중이다.

고향 섬집 앞에 흐르던 화천(花川)처럼, 어서 오라고 반기는 새벽강!

걸림돌마다 넘어진 생긴 흉터도, 빈말에 멍든 자국도, 괜찮다며 다독였던 혼잣말도 눈치 없이 뒤따라 온다.

꽁꽁 싸맨 내상 용케 알아본 동무처럼, 새벽강은 자꾸만 꼬셔댄다.

"싸맨 가슴, 그만 풀어라. 니 속에 든 것, 얼른 꺼내라. 고약한 냄새나는 상처, 전부 털어나 봐. 세포마다 물든 피멍, 전부 씻어내고 하얗게 헹구어 주마. 청포묵 마음으로, 되돌려 줄게."


실개천 영혼일까.

일주일에 4일은 안양천까지만, 3일은 한강 접합부까지 걸어간다.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안양천 동무들을 찾아간다.

어서 오라는 한마디 하지 않아도, 나 홀로 반갑고 고향 냇가에 온 것처럼 평온하다.

팔색조 마음,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까마득한 유년의 고향 섬집 앞에 흐르던 꽃덤불 가득하던, 그 화천 닮아서일까.

매년 변절 없이 회귀하는 연어처럼, 오래전에 가출했던 동심도 세월물결을 거슬러 귀향하는 중일까.

새벽강으로 향하는 마음, 일편단심 민들레.

중단할 수 없는 짝사랑,

새벽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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