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기일이다.
아버지도 함께, 위령미사를 봉헌한 첫날이기도.
두 분, 합동 위령미사 시간인 만큼 집중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내 의지와는 별개로 줄줄이 다가서는 상념들로 사뭇 흔들린다. 공동 위령미사 신청한 일주일 전부터 오늘까지, 강바닥 자갈처럼 가라앉아 있다. 수시로 골내며 어머니께 쏘아붙인 억새풀 같은 말들, 피라미들처럼 떼 지어 몰려든다. 선명한 색깔로 앞다투어, 생환한다. 만조 때마다 드세게 밀려오는 물살에 휘둘리는 무인도처럼, 흔들리다 완전히 침수된 느낌이다.
이런 와중에도 기억너머에서 잠들었던 파편들이 일제히 깨어나며, 깃발을 흔들어대며 줄지어 밀려온다.
제례 의순, 묵념시간이었다.
차려진 제수 용품 중에서 유독 기이하게 보이던, 쌀밥 두 그릇!
눈 감고 있는 중에도, 머릿속에는 갖가지 의문들이 들쑥날쑥 댔다.
어머니 제사인데, 왜 두 그릇일까?
어머니의 혼령만 오시지 않았을까?
한 그릇은 아버지 몫인데, 아버지 혼령도 함께 오셨나?
두 분 혼령, 사이좋게 식사하실까?
생시처럼, 묵묵히 수저만 뜨는 중일까?
어머닌, 아버지랑 겸상하고 싶으실까?
어머니의 비장한 모습,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처럼 아주 선명하게 다가왔던 순간이다.
아버지 장례식날, 갓 쓰고 하얀 두루마기 입은 백발 문중 어른들 앞에서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던 어머니!
연신 혀를 끌끌 차는 소리와 재촉해 대는 헛기침에도, 당신의 미래 지정석인 - 아버지 무덤 옆에 미리 만드는 작은 봉본을 - 한사코 거부했다. 그 덕분에 드센 아낙네로 낙인은 찍혔지만, 사후에는 염원대로 공동묘지에 따로 안장되었다.
그날 이후부터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고, 두 분 기일엔 성당 위령미사를 따로 봉헌했다.
오늘 이전까지는, 쭉 그래 왔다.
오늘 새벽 미사 전례 주임 신부님이 주관하고 있다.
세례명대신에 부모님 성함을 호명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전 유년의 그 섬엔 사찰들은 더러 있었지만, 성당은 없었다.
두 분은 생전에 예수님이나 하느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던 만큼, 세례명도 없다.
부산에서 세례를 받은 그날부터, 내 이름 석자 위에 부여받은 세례명과 동고동락한 지 40년이다. 모세의 사막 세월과 같은 기간이지만, 그의 영웅적인 탈출기는 위화감만 더할 뿐이다. 나의 속내는 원판불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그릇 겉만 닦는 중이다.
섬집 우리 부모님은, 나와는 다른 원판불변의 심성을 지니셨던 것 같다. 아버지의 빚보증으로 쫄딱 망한 후에도, 두 분도 끝내 천성을 바꾸지 못했다?
그 시절에는 유난히도 동냥 오는 떠돌이 거지나 나병 환우가 많았다.
그들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어머니를 모지리처럼 여기며, 숱하게 은근히 무시했던 발칙한 꼬맹이.
흡족하게 웃는 아버지도 허겁지겁 먹어대는 그들도, 오금 저리도록 싫었다. 매달 몇 번이나 되는 종갓집 기일, 막둥이 딸내미보다 더 잘 기억하는 한다는 이유로 눈 흘겨대던 유년!
국민학교 방과 후, 대문까지 올라가는 골목길에 멍석 깔고 나란히 앉아 있는 그들, 매번 질겁했다.
제사 음식장만에 바쁜 어머니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정말 싫다니까! 당장, 가라고 하세요."
징징 울어대던 고약한 막둥이도 세월의 빗질 따라, 모난 성품도 모진 말수도 점차로 줄어드는 중이다.
그래도 여전히 숨죽이며 실존하는 바탕,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대면할 때마다 절망한다. 내 기대치에 못 미치는 누군가를 향한 낙담과는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무게다.
이런 나와는 달리 부모님은 '천명에 순응한 무명의 그리스도인'으로, 내 심혼에 각인되어 있다.
주저 없이, 날마다 간청한다.
주님, 어머니 아버지 영혼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두 분,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천국문을 열어주소서!!
새벽미사가 종료되는 순간.
매일미사책을 손가방에 넣고, 검은 목도리를 손에 쥔 채로 서둘러 일어서려는 찰나다.
어느새 옆에 다가 온 원장 수녀님, 앉아 있던 의자밑 내 발치깨로 작은 쇼핑백을 밀어 넣었다. 보일 듯 말듯한 눈웃음을 남기고, 성전 제단으로 종종걸음으로 올라가서 뒷마무리 중이다.
무언지 물어볼 틈도 없이 순식간에 자리를 떠났고, 큰 소리로 물어보기엔 눈들이 너무 많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냥 들고 오는 것도 어쩐지 석연찮아, 앉은 채로 잠깐 기다렸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고맙다는 신호로 짧은 목례를 보냈고, 잘 알고 있다는 듯한 옅은 미소가 답례로 건너왔다.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쇼핑백부터 열었다.
참기름병과 들기름병이 마치 이란성쌍둥이처럼 서있는 모습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란히 방문한 것 같은 몽환, 기이한 감동이 밀려왔다.
섬마을에 희귀한 존재였던 진갑둥이, 막둥이 딸내미 집 찾아온 시골 노부부처럼 느껴진다.
일곱 살 꼬마처럼, 하루 종일 콧노래를 불러댔다.
섣달 초하룻날부터 들쑤시던 회한은 흔적조차 없고, 동화나라 초록꼬마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소박한 선물은, 특별하고도 진한 여운이 맴돈다.
억 겹의 시공간을 - 저승과 이승의 인연을 - 한순간에 불러 모으는 신묘한 능력이 숨어 있었나?
새벽 영하 10도 날씨를 놀라 깨어난, 유년의 생떼쟁이가 쏘아 올린
"성체로 오시는 주님, 오늘은 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마세요!"
희한한 일이다. 냅다 지른 화살기도에 응답하셨을까?
꿈보다 해몽을 잘해야 즐거워지는, 행복한 몽환이 절실한 엄동설한이다.
시골 방앗간에서 짠듯한 참기름 들기름은, 아마도 평생 기억될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째 허물거리는 마음으로 중얼거리던 말.
"어매랑 아버지! 이제 그만, 사이좋게 사셔요!!"
하늘궁창 뚫고, 올라갔나?
마치 걱정 말라는 화답처럼 선물로 찾아온 참기름 1병, 들기름 1병.
아주 특별한 날, 절묘한 타이밍에 받은 소박하고도 귀한 선물!
어머니 기일, 시공을 초월한 묘한 감동으로 행복한 첫날이다.
수녀님에게서 받은 뜻밖의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