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달
아예 흔적 없고
바람마저 잠자던 이국땅 한낮,
푸른 실핏줄 선명한 햇빛아래
키 큰 해바라기 함박웃음 넘치는 평야,
지애미 치맛자락 부여잡는 꼬맹이처럼
샛노랗게 웃어대는 민들레조차
낯설었다.
밤마다
심연계곡 휘감아도는 돌풍
깊이 잠든 심혼 흔들어대고
세월 따라 잊힌 깨알설움
철 지난 옹알이처럼 귀환하는 찰나,
주술처럼 쏟아지던 모국어
겨울 댓잎 서걱대는 마른 음색으로
숨죽인 채 흘러나오던 가냘픈 비창.
고맙다,
한마디 건넨 적 없어도
새끼손가락 건 동심 단짝처럼
밤낮으로 동행하던 나무 벽시계,
정시마다 양문 활짝 열어젖히곤
딸꾹질 곡조로 꺾어 울던 자정,
섬집 뒷산 목쉰 뻐꾸기 메아리되어
심창 흔들어대면
굵은 눈물 마중물 삼아 삐죽거린 이중창.
봄이면
낯선 땅 강바닥 돌무더기 틈새마다
꼬꼬리꼬꽃 새빨갛게 자지러지고,
코흘리개 앞산 물들이던 연분홍 진달래
차마 못 지운 얼굴인양 어른거리면,
생명줄 놓지 않으려고
무딘 쇠처럼 굳어진 각혼마저
부스스 일어나
엇박자로 불러대던 고향노래.
자나 깨나
불어대던 뿔피리 앞세우고
바람신 내린 철새처럼
서둘러 귀향한 산천마다
갖가지 색깔로 반기던 들꽃무리
일편단심인양 그리 수줍게 웃더니
가을신사 꽁무니 따라 흔적조차 없다.
칼바람에
억새풀 고개 떨구는 겨울,
헐벗은 산천초목마저
가쁜 숨 몰아쉬는 끝없는 설국,
망망대해 한가운데 무인도인양
오롯이 적막한 영혼 뜨락에
뜬금없이 터지는 꽃망울,
대서양너머 두고 온 무지갯빛 눈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