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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똘레랑스 아제

by 글바트로스

“왜, 두 줄로 서있어요?”

“이쪽은 묵례 줄이고, 저쪽은 기도 줄입니다.”

“엄청나게 기네요.”

저울질하는 속마음, 금방 눈치챘나 보다.

“묵례 줄은 금방 줄어요."

망설임 없이, ‘묵례 행렬’ 뒤꽁무니에 섰다. 바로그때부터, 그녀의 친절한 설명과는 정반대 상황이 일어났다. ‘묵례행렬'은 꿈쩍도 않는 대신, 반대로 '기도행렬'만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계속 도착하는 인파로 인해, 오히려 "묵례행렬'은 점점 길어지는 게 아닌가!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옮겨? 그냥 서 있어야 하나?’

한참이나 끌탕하다가 ’ 기도행렬‘로 옮겨 섰다. 이번에는 '묵례행렬이 -내가 옮겨가길 기다렸다는 듯이, - 서둘러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또다시 옮겨 설 수가 없었다.

수많은 시선에 짓눌려 더 이상 줄 바꾸어 서기를 감행하지 못했다. 붙박이 가구처럼 선 채로 30여분이 지나자, 온몸이 슬슬 뒤틀리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서 셀카 찍느라 여념이 없는 남자, 마냥 즐거운 모습이었다. 거두절미하고 다짜고짜로.

“긴 연도 한 대요? 아니면 짧은 연도한대요?”

아무런 대꾸도. ‘못 들었나? 무시하나?’

아까보다 더 날 선 목청으로

“들은 것 없어요?”

마지못해, 툭 던지는,

“모릅니다.”

등 뒤에서 합류하는 쾌활한 여자 목소리.

“30분마다, 교체되나 봐요.”

“아~! 그래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얼른 뒤돌아서며, 평소에 나답지 않게 먼저 소속 성당을 밝혔다. 그런데, 곧바로 말문이 막혔다. 서로 공감할 수 있는 화제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우린-그녀와 나는 – 서로 마주 보며 애매하게 웃고만 있었다. 우리 연결고리는 교황님뿐이다. 갑자기, 떠오른 축복장.

“몇 년 전에, 교황님께 축복장 받았어요.”

“로마에 가서 받았어요?”

“아니요. 서울로 보내줬어요.”

“축복장이 있는 줄도, 몰랐네요. 어떻게 생겼어요?”

“교황님 사진아래 정형화된 축복문구로 되어 있어요.”

“뭐라고 쓰여 있나요?”

“간단해요. 교황 프란치스코는 KIM OO, 세례명 LIOOOO 축복합니다.”

“한국어로요?”

“아니요. 내용은 영문이고, 세례명은 이탈리아식 표기로요.”

“대단한 분인가 봐요?”

“아닌데요.”

“아님, 아주 굉장한 일을 했나 봐요?”

“그런 일도, 한 적 없는데요.”

“그런데, 어떻게 받았어요?”

“아마도 교황님 취임한 해의 부활절 무렵일걸요. 절두산 성지 미사 후에 주임 신부님 말씀에- 교황님께서 로마유학 온 가난한 사제들을 도와주고 싶어 한다는 공지에 – 동참했던 게 전분 데요. 암튼, 가보처럼 지금껏 간직하고 있네요.”

“정말 귀한 가보네요. 너무 부러워요~”

갑자기 폐부를 찌르는 질타, ‘결국, 자랑질했네.’

공연한 말을 쏟았다는 후회와 씁쓸한 자각도 치밀었다. 불편해진 마음으로 원래 위치로 되돌아섰다.


그날, –절두산 성지 미사에 참석했던 날, -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공지 중의 ‘가난한 유학생’, 그 말은 아픈 순위대로 예전 기억을 소환했다. 순간적으로 코끝이 찡해지고, 동시에 눈물도 그렁그렁해졌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프랑스 유학생활의 잔상, – 짙은 안개 숲에서 헤매는 것 같은 답보 상태의 논문과 수시로 욱죄이는 생존위협의 압박감, - 실제처럼 찔러댔다.

교황님 선의에 동참했던 십중팔구, 동병상련!

몇 달 후, 예기치 않은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축복장을 받은 날!.

몸속의 세포들이 전부 함성을 질러대던, 생애 통 털어 몇 안 되는 기쁜 날이었다.

특별한 신분이 된 것 같은 우쭐한 마음, 종교적 신원인 세례명에 충실하겠다는 각오, 세상적인 성공을 바라는 기대까지.

부족한 예지로 교황님 축복장을 –만사형통의 부적으로 – 오역한 날!


마침내 우리 셋도,- 쾌활한 그녀, 나, 셀카남자 – 같은 줄에 나란히 앉았다.

공석 없이 전원 착석하는데도, 시간이 꽤나 걸렸다. 아무런 말없이 앉아있기가 멋쩍어, 그냥 인사치레로

“참, 형제님은 어느 성당에서 오셨어요?”

“나는 유교신자입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대답에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잠시 후, 마음을 가다듬고

“그런데, 어떻게 오셨어요?”

“천주교 큰 어른이 돌아가셨으니, 마땅히 조문 와야지요.”

적절한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아, 그만 입을 다물었다.

“초파일에는 부처님께도 문안인사도 갑니다.”

이번에는 야무진 쐐기까지.

마침내 착석이 완료되었고, 인쇄물도 분배되었다.

통상적인 가톨릭 위령기도 ‘연도’ 대신-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 중 ‘예수님 부활과 승천’ 기도로 대체된 순서에 일순 당혹했지만, 부활축제 기간이라는 사실에 곧바로 이해되었다.

그 순간부터 오른쪽에 앉은 남자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사실은 그 유교신자가 어떤 태도로 동참하는지가 더 궁금해졌던 것이다. 곁눈질해 대는 나보다 추모전례에 더 집중하는 모습, 와장창 무너진 섣부른 편견!

드디어 합송 추모전례기도가 끝났다.

지하 성전에서 -프랑스 순교 사제들 유해가 모셔진 장소에서 – 밖으로 나온 우리는 곧바로 헤어지지 못하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미적거렸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셋 중에서 가장 쾌활한 그녀, 느닷없이

“저는 세례명이 OOO인데요. 형제님! 나중에 세례 받으시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담담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지금처럼, 앞으로도 유교신자로 살아갈 겁니다.”

갑자기 굳어진 분위기, 일순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얼른 내가

“네~ 그러세요. 天心으로 사는 사람, 전부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래요.”

그제야 우리 셋,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들처럼- 크게 웃었다.


그 유교신자는 -이름도 성도 모르는 조문객은 -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말을 -tolérance를 -생각나게 했다.

연일 TV에서 거품 내뿜는 커다란 목청에 지친 나머지, 참으로 갈급했던 어휘다.

그 수수한 행보는, -다른 종교를 향한 존중하는 태도, - ‘똘레랑스’ 향기로 와닿았다.

허락도 받지 않고 겁 없이 붙인 호칭으로, 속으로 연신 중얼댔다.

“똘레랑스 아제, 늘 행복하세요.”

프랑스 똘레랑스 지인들이 유난히 그리웠던 그날!

거대한 하얀 구름, 새털구름 무리에 둘러싸여 흘러가고 있었다.

하늘에서도 교황님 조문 왔나? 아님 마중 나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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