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에는 며느리가 일을 가야 하는 스케줄이라 아들과 손녀도 며느리 일가는 데 같이 가기로 해 남편과 둘이 오붓하게 지내기로 했다.
설 이틀 전 며느리가 일을 마치고 들어오자 평시처럼 교대를 하고 집으로 내려오려고 짐을 챙기는데 여행을 가기 전 미리 세베를 드리겠노라 해서 그러자고 했다.
시부모님 살아계실 때 명절에 내려가면 설 전날 동네 주민들이 동곽에 모여 어르신들께 세배를 드리고
각 집에서 준비한 음식과 떡국을 나누던 *묵은세배가 익숙한 터라 옷을 갖추어 입고 자리를 잡으려는 중에 손녀가 이리저리 다니면서 혼자 바빴다.
장식장에서 봉투 두 개를 꺼내서는 저금통을 열어 천 원 지폐 몇 장씩을 봉투에 각기 넣는 모습을 보면서도 무엇을 하려는지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세배를 받았는데
세배를 마치고 덕담을 하려는데 갑자기 일어서더니 돈봉투를 내보이며 '왜 나한테 세배 안 해요.' 한다.
순간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한바탕 웃으니 다시' 세배를 해야 세뱃돈을 드리잖아요.'라면서 재촉을 한다.
세배를 하고 나면 본인이 받던 돈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돼 고마움과 함께 아이 수준에 맞는 세시풍습을 간략히 이야기를 해주고는 봉투를 돌려 주려니 아니라고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드리는 용돈이라며 받지를 않아서 가방에 넣어가지고 와 꺼내보니 저금통에서 꺼낸 구겨진 천 원짜리가 각 세 개씩 담겨있다.
세뱃돈을 준비한 마음, 돈을 봉투에 넣어주려는 정성이 기특해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이리 가르친 며느리에게 고마움을 전하니 며느리는 어머니가 꼭 봉투에 넣어주시는 것을 아이가 보고 배운 것이라며 되갚는 말을 해서 서로를 추켜주는 훈훈한 마음을 나누었는데 고부간의 사랑은 큰 것이 아니어도 이렇게 작은 것을 크게 감사하면서 서로 덕을 나누는 것이라 생각된다.
나이가 들면서 아이를 살피는 것이 쉽지는 않으나 같은 여자 특히 과거 내가 겪었던 워킹맘의 심정으로 돌보기를 통해 며느리의 고된 직장생활에 응원을 보낸다.
*묵은세배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섣달그믐에 가족과 친지에게 올리는 세배. [개설] 섣달그믐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이자, 다가올 새해를 맞이하고자 집 안팎을 깨끗이 손질하고 음식 등을 장만하는 날이다. 특히 한 해를 무사히 잘 보냈다는 의미로 집안 어른들을 찾아 절을 올리는 풍속이 있는데 이를 묵은세배 또는 구세배라 한다. [
연원 및 변천] 묵은세배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그믐에 가족이나 집안 어른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올리는 세배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보면 “조정에 나가는 신하로서 2품 이상과 시종(侍從)들은 대궐에 들어가 묵은해 문안을 드린다. 양반들의 집에서는 사당에 배알 한다. 연소자들은 친척 어른들을 두루 방문한다. 이러한 것들을 배구세(拜舊歲)[묵은세배]라고 하며 이것을 하느라고 이날은 초저녁부터 밤중까지 골목마다 등불이 줄을 이어 끊어지지 않는다.”라고 기록하여 묵은세배의 풍속을 설명하고 있다.
[절차] 영암 지역에서는 덕진면 노송리에서 섣달그믐 오전에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합동 세배를 하는데, 이것을 묵은세배라고 한다. 오후에는 가는 해가 아쉽다고 하여 문중 구성원들의 화합을 도모하는 의미에서 망년회를 한다. 망년회는 사무를 맡아서 보는 직책인 유사(有司)를 정하고 일정한 금액을 거두어 이것으로 음식을 준비하여 나누어 먹는다. 마을 사람들이 회관에 모여 객지에 있는 사람들과 마을 일에 관한 회의를 하기도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섣달그믐은 1년 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끝맺음하는 날이다. 따라서 이날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한 해를 보내면서 조상과 부모, 이웃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려고 묵은세배와 망년회를 행한다. 이것은 한 해를 잘 보내고 새로운 해를 잘 맞이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풍속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