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조용히 나를 되찾다

나는 지금 살아 있다

by 몰리

따뜻한 색감의 해질녘


왼쪽 가슴부위에 손을 얹어본다.

콩닥콩닥.....

손바닥에 느껴지는 일정한 속도의 미약한 울림.

지금 이 순간도 일정한 속도로 뛰어주고 있는 이 심장은 지금까지 52년을 그래와 주었다. 그것은 매 순간 들이마시는 숨과 같아서 잊고 사는 순간이 더 많긴 하다.

하지만, 이 심장도 언젠가는 멈추리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니 매일 되새기려 애쓴다. 언젠가는 반. 드. 시 죽게 되는 필멸의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정말 불행한 인간이었다.

사랑을 독차지했던 막내에서 12살에 있었던 사건으로 크게 상처받아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불과 얼마 전까지도... 거기에는 만성적이었던 우울증, 대인공포증, 깊은 수치심, 자기혐오, 죄책감, 무기력증 등등..... 온갖 경험을 해보고, 스펙을 누적시켜야 하는 젊은 시절에도 그 공포증들에 짓눌려 제대로 된 시간들을 살아가지 못했다. 그 길고 길었던 시간들을 말이다. 걸핏하면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로 지내던 생활로 밀린 카드빚을 감당하느라 힘들어지기도 했다. 빚만 청산한 상태에서 가진 것도 없이 의존적인, 어리석은 취집형식의 결혼으로 또다시 불안한 시간들을 살았었다. 수평적인 관계, 몇 번의 폭력과 강도를 더 해가던 언어폭력, 존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15년의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용기를 냈고

이혼이라는 거대하게만 보였던 산을 넘었다.

나르시시즘이 강했던 남편과 이혼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몰아치는 두려움과 태어나 어쩌면 처음인 것만 같은 스스로의 이 큰 선택이 맞는 건가? 그리고 남편이 어떻게 나올지..... 그 후폭풍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모른다. 하지만,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동영상에서 나오는 여러 조언들을 들으며 한걸음 한걸음 걸어 나왔다. 그즈음부터 내면에서도 무언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지금은 해가 뜨기 전 6시 43분.

전에는 자신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구구절절 쓰는 작가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이야기들을 통해 그저 연민의 시선을 구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그것은 남들 앞에서 옷을 벗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커다란 용기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지금은 놀라울 정도로 충만하다.

거의 40여 년의 시간만에 말이다. 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때로는 설렘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흔한 말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맞겠다. 가끔씩은 마음이 가라앉을 때도 물론 있지만 전처럼 깊은 수렁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

이렇게 내가 나를 구하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말하고 싶다. 그것은 요즘 많이 알려진 바로 명상이다.

호흡을 알아차림으로 온전히 마음을 이 순간에 두는 것이다.

혼자 시작한 것은 아니고 앱을 통해 꾸준히 해왔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쓰는 글쓰기.

만천하에 수십 년 곪은 상처를 내보이고, 햇빛에 툭툭 털어 말리자 옅어지고 말라서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그런 것이 있었나? 기억에서 희미해져 있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죽음에 대한 되새김이다.

소멸..... 결국 죽어서 사라지는 존재에게 정말 심각한, 진지한 문제랄게 몇 개나 될까 싶기도 하다.


나는 지금은 오직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명상이란 것을 몰랐다면 여전히 과거 상처 속을 어둡게 헤집고 다니면서 원망을 하거나, 미래의 걱정으로 불안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강아지풀은 자연의 귀여운 선물이다

여기서는 명상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어떻게 시작하기 막연한 명상과 가까워지게 됐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다.

하나 더, 모든 마음의 아픈 일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뿌리 깊은 자기혐오 말이다. 나도 나를 치유해 가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혐오했던, 등 돌렸던 내면의 아이에게 몇 번이고 미안했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사과를 했었다.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를 오랫동안 미워했던 사람이라면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내면의 울고 있을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