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낙인찍다
막내였던 나는 노랑나비와 같았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 차 있던 아이는 대부분의 시간은 기쁨에 차 있었으며 부모님은 사랑의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곤 했다. 무언가 하고 나면 "막내 봐라, 일찍 일어나서 눈도 다 치웠는데 언니들은 아직도 자냐." 이런 말씀을 자주 던지셔서 언니들은 못마땅한 시선을 던지곤 했다.
몸이 허약했던 두 살 터울의 언니에게 장난을 친 일에도 꾸지람을 듣지 않을 정도였다.
동네 아이들과 놀 때도 골목대장이 되어 논과 들판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국민학교에서는 반장도 하고......
그때 세상은 온통 아이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거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열두 살 되던 해던가.... 두 살 터울의 키가 컸던 언니가 갑자기 학교에서 새로 만든 핸드볼선수단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부모님이 반대하자 추운 겨울날 체육선생님이 집에까지 찾아와서는 부모님을 설득했고 언니는 그렇게 운동선수가 되었다.
전지훈련이나 여러 경기들을 따라 바쁜 언니를 뒷바라지하느라 나만 바라보던 부모님의 시선은 농사일과 운동하는 둘째 언니에게로 전부 쏠리기 시작했다. 그즈음부터 나는 무대에서 춤을 추면서 관객들이 하나둘씩 나가버리는 것을 쓸쓸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어느새 노랑나비는 날갯짓을 하여도 아무도 자신을 전처럼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처음 돈을 훔친 것은 훔친 것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서랍에서 우연히 뒹구는 천 원짜리를 호주머니에 몰래 넣었을 때의 묘한 두근거림, 그것을 찾느라 진땀 빼는 엄마옆에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들고 나는 못 봤다고 거짓말을 횡설수설하면서 속으로 얼마나 겁이 났는지 아마도 심장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기도 했다.
다음날 그 몰래 숨긴 천 원짜리 한 장을 학교 앞 문방구에서 마음껏 쓰면서 처음으로 아이는 묘한 쾌감을 느꼈던 것 같다. 이후 아이는 마치 일상처럼 부모님의 돈을 조금씩 훔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지갑을 여기저기 자리를 바꿔서 넣어 놓으셨지만, 농사일에 바쁘신 분들이라 낮시간 동안 아이는 여유롭게 모든 곳을 헤집고 다니곤 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는 흘렀던 것 같다. 자식들을 믿고 끝까지 누구라고 의심의 말씀도 안 하시던 아버지와 엄마. 어느 날 한 명씩 부모님이 앉아 계신 방으로 본인의 가방을 들고 들어오게 하시곤 이것저것 차분하게 물어보시기도 했다. 아이는 어느새 대단한 거짓말쟁이가 되어 있었다. 눈빛은 떨리고 있었지만,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영혼 없는 거짓말들뿐이었다.
며칠 더 가지는 못했다.
하필, 어버이날이던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모든 가족들이 있는 자리에서 뜯어진 저금통으로 모든 일은 탄로가 나고 말았다. 언니들의 이상했던 날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한 번도 손찌검을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내 발바닥을 몇 대 때리셨는데 이제는 모든 게 다 끝났구나 나는 공포와 혼란스러움에 울고 있었다.
한밤중이 되어 원래대로 안방에서 자려고 하는데, 엄마가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셨다.
" 얘가 어디로 와, 너는 저쪽 방으로 가서 자!"
나는 언니들 세명으로 이미 가득 찬 어두운 방으로 죄인처럼 들어가 언니들의 발밑에 작은 몸을 웅크렸다. 절망과 공포가 뒤엉켜서 눈물도 얼어붙은 것만 같은 밤이었다. 이제 모두 다 끝났구나..... 나는 몇 번을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