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 장례식장에 가다

오열이라는 어쩌면 민폐

by 몰리

죽음에 관한 생각을 자주 한다. 20대, 수면제를 먹고 생각했던 죽음은 절망적이고 무기력하고 우울해서 다 끝내고만 싶어서 생각한 죽음이라면 요즘 떠올리는 죽음은 나도 반드시 죽는다는 당연함에 관한 것이다. 그런 당위성, 결국 필멸의 존재임을 생각할수록 살아 숨 쉬는 순간이 선명해지고,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가지치기가 가능해지는 것 같다. 심각하게 여기던 문제들도 그 무게감을 잃는 것 같고.


무연고장례식에 관한 인터넷 기사를 처음 접해던 것은 몇 해전이었다. 한 신부님이 겨울철에 길에서 얼어 죽은 노숙자의 장례를 무료로 치러준다는 내용이었는데, 시신 관 옆에 슬픈 표정의 신부님의 옆모습 사진이 함께 있었다. 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기사를 스크랩해 두었었고, 몇 년이 지나서야 그 무연고 장례식에 가게 되었다.

하루 전 미리 시간을 확인했는데, 내비게이션을 따라서 가도 헤매는 일이 있는 편이라 시간은 어느새 촉박했다. 서울에서도 한참 들어가야 하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9시까지 가야 했는데 10분 넘게 늦고 말았다. 장례식장에 가서도 물어 물어 2층에 있는 장소를 겨우 찾았다. 장례식장 한편에 작게 마련된 곳이었다. 이미 장례식 봉사를 해 오신 분들이 조용히 앉아 계셨다. 머리가 하야신 따뜻한 인상의 남자분 - 나에게 어떻게 이곳을 알고 왔는지 친절하게 물으셨다 - ( 이일을 해오신 지 7년이나 되셨다 한다) 그리고 그 옆에 우아한 분위기에 지성미가 있어 보이는 여자분도 꽤 오래 해 오신 듯 남자분과 몇 마디 근황대화를 나누었다. 또 옆에는 말없이 계시는 목사님도 한분 계셨고, 밖에는 화장을 하는 동안 염불봉사를 해주시러 조끼를 입고 불교단체에서 오신 분들이 몇 분 와 계셨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따스한 햇살을 비춰주는 일들을 하시는 분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생각에 놀라웠다. 그분들도 하나같이 인상들이 좋으셨다.

영정사진은 한분만 계셨다. 유족이 발걸음 한 고인만 사진을 올린다고 했다. 옆에 보니, 젊은 남녀가 앉아 있었는데 나이대로 보아, 또 여자분이 계속 우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인 듯했다. 짧은 머리의 미소 띤 얼굴의 희미한 영정사진의 여성분은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기도 했다. 봉사자는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대충은 알고 왔는데, 예상대로 조사를 읽어달라고 하셨다. 나는 무대공포증 연관인지 책 읽기도 공포증이 아직 있는터라 그 부탁을 듣자마자 아무렇지 않은 척 조용히 대답했지만 심장이 그때부터 혼자 내달리기 시작했다.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준비가 끝나고 식은 시작되었다. 순서가 진행되고 나는 어느새 심장을 보이지 않게 부여잡고 있었다. 남자분의 다음 순서 말씀과 손짓에 나는 조사를 들고 방의 한가운데로 가서 섰다. 고인 세분의 성함을 차례로 말해야 되는데 자연스럽지 못했다. 이어서 약간 떨리고 부자연스럽게 문장들을 한 줄 한 줄 읽어나가는데 마음속에서 무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여름 죽어버리겠다고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었던 객기의 죽음이 아니라, 이곳은 정말 죽음으로 향한 이들을 추모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한 줄 한 줄 읽어가면서 만감이 교차해서 울기 시작하다가 그곳에서는 평온하시라는 마지막 문장에서는 겨우 문장을 읽어갈 정도로 어느새 오열을 하고 있었다.

방 안의 공기가 조금 이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식이 끝나자 능숙하게 상주도 하던 여자분이 친절하게 말을 걸어오고, 다음 순서에 대한 안내도 해주었다. 이어진 화장터에서는 줄이어 세분의 관이 들어가고 염불봉사를 하시는 분들과 함께 들어가서 잠시 화장을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시간이 지나 화장이 끝나서 햇살이 비추는 밖으로 사람들이 유골함을 들고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장례지도사의 인도로 먼저 유가족이 있는 분의 유골을 먼저 뿌리는 듯했다. 갑자기 떨어진 곳에 계셨던 남자분이 나에게 오시더니

" 한번 뿌려보시겠어요?"

하시는데 내가 놀라서

" 제가요?" 되묻자 그럼 다음에 해보시라고 미소 지으셨다. 세분의 유골 산골이 끝나고 절차가 끝나자 사람들이 인사를 하면서 돌아가는데, 유일한 유족이었던 젊은 남녀가 나를 지나치면서 거의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그저 민폐를 끼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또 다른 세 분의 장례가 다시 시작되었다. 남자분은 이번에는 한 분의 상주를 - 앞에 나와 향을 꽂고 술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것이었다 - 해달라 하셨다. 친구분이 돌아가셨는지 사람이 많아 안에 못 들어왔던 중년의 남자 한분이 절을 하면서 잠시 오열하고는 " 잘 가라, 이 새꺄!...... "

소리치셨다.

봉사시간이 다 되어 나는 다음에 다시 오시라는 짧은 인사를 받으면서 장례식장을 나왔다. 여기저기서 영정버스와 유족들이 계속 들어왔고 우는 소리가 간간이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하늘의 햇살은 얼마나 따사롭던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보다가 나는 아직 죽지 않았음을 상기하고 또 언젠가는 나도 죽게 됨을 상기했다. 조용하고 평온한 공기 속에 잠시 서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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