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잃어버린 시대, '지식 붕괴'가 다가온다

by 권석민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내가 AI의 도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생각을 해본 게 언제였을까.’ 궁금한 것이 떠오르면, 이제는 거의 반사적으로 AI에게 먼저 묻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보고서를 쓰거나, 복잡한 문제를 풀어야 할 때, AI에게 먼저 질문한다. AI가 만들어 낸 결과물은 빠르고 수준이 높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불편하다. AI가 만든 결과물이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자신이 없다. 점점 나란 존재는 사라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나를 뒤덮는다.


Acemoglu, Kong, & Ozdaglar(2026)의 「AI, human cognition and knowledge collapse」 논문은 에이전틱 AI가 제공하는 맞춤형 추천이 인간의 자발적 학습 노력을 대신하게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장기적으로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공통의 지식 기반이 약화·소멸되는 ‘지식 붕괴(knowledge collapse)’ 균형에 수렴할 수 있다 주장했다. 이 논문의 핵심 질문은 “에이전틱 AI가 인간의 학습 유인과 사회의 장기적 지식 생태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이다.


사람과 조직은 제한된 인지·시간 자원을 가지고 있다. AI가 충분히 정확한 답을 제공하면, 굳이 스스로 배우려 하지 않는 경향이 생긴다. 이 논문은 그 경향이 단순한 개인의 게으름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새로운 장기 균형으로 이끄는 구조적 변화라고 말한다.


'지식 붕괴'는 세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첫째, 단기적으로 AI는 개인의 의사결정 질을 높이고 생산성을 끌어올린다. 전문 지식이 없어도 고품질의 답을 얻을 수 있어, 교육·의료·행정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혜택이 크다. 둘째, 그 편리함이 쌓이면서 학습 동기가 약해지고 '무임승차 균형'이 나타난다. AI가 알려주니 굳이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기대가 커지고, 스스로 배우려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 셋째,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가 '지식 붕괴' 균형으로 수렴할 수 있다. 편리함의 누적이 결국 공동체의 지식 기반 자체를 허무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지식 붕괴' 상태의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일반 지식이 거의 사라진다. 학교에서 배운 기본 개념, 역사와 과학의 기초, 시민으로서 알아야 할 상식이 더 이상 공통분모로 작동하지 않는다. 둘째, 새로운 세대는 세상의 기본 구조와 맥락을 스스로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곧바로 AI에게 묻고, 개념을 스스로 쌓는 학습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셋째, 아이러니하게도 머릿속이 비어 가는 동안 의사결정 수준은 오히려 높게 유지된다. 고성능 에이전틱 AI가 상황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머릿속은 비어 있는데, 손에 쥔 도구만은 믿기 어려울 만큼 똑똑한 사회. 그것이 지식 붕괴의 민낯이다.

연구진은 겉으로 시스템이 매끄럽게 작동해도, 공통의 상식과 기본 개념이 무너진 사회는 구조적으로 취약해진다고 지적한다. 첫째, AI가 오류·편향·악의적 공격에 노출될 때 이를 감지하고 바로잡을 인간의 역량이 크게 떨어진다. 둘째, 민주주의·시장·법제 같은 집단 의사결정 시스템이 공통 언어를 잃으면서 합리적 토론과 사회적 합의가 어려워진다. 셋째, 재난·전쟁 같은 비상 상황에서 AI 접근이 끊기면,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할 능력을 잃은 채 무력해진다. 도구가 멈추는 순간, 사회도 함께 멈추는 것이다.


연구는 지금이 교육과 학습을 전면 재설계해야 할 시점임을 시사한다. "AI를 잘 쓰는 법"만 가르치는 수준을 넘어, AI가 있어도 왜 인간이 계속 공부해야 하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AI를 활용하면 일의 속도와 결과는 분명 좋아진다. 그런데 그 성과가 내 깊은 사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느낌은 지워지지 않는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서서히 내려앉고, 누군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거나 예고 없이 토론이 벌어지면 두려움이 먼저 올라온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거기에 종속되지 않을 만큼의 자기 계발을 함께 이어가야 한다. AI에 완전히 기대는 순간, 조직은 그 사람 대신 AI를 쓰면 된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AI에게 나의 생각을 통째로 맡기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모두가 AI를 쓰는 시대일수록, AI 기술을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를 내가 설명할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깊이를 유지하는 일이다. 오늘 책 한 챕터를 더 읽고, 개념 하나를 스스로 정리하고, 내게 의미 있었던 일들을 글로 남겨보는 것. 느리지만, 그것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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