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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민 Feb 18. 2023

대학원을 왜 다녔나요?

당신은 무언가를 시작할 때 시작한 이유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가?

  지금 시간은 2023년 2월 18일 토요일 오전 1시 19분이다. 9시간 후면 석사학위 수여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2년 전 추운 겨울날 면접을 봤던 기억이 다. 재택근무에 대한 생각을 말씀하라는 질문에 출퇴근 시간과 비용일 절감된다고 말했었다. 열정적으로 면접에 임했었다. 그 당시 10개월이라는 장기교육 후에 대학원을 또다시 지원하는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 컸었던 것 같다. 겉으로는 뭔가 대단한 것을 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처럼 행동했지만, 내심 석사과정을 왜 지원했고, 무엇을 하고 싶으며, 무얼 얻고 싶은지 선명하지 않았다.


  처음 수업이 진행됐던 날 학위과정에 대한 작은 포부를 말하는 기회가 있었다. 막연히 논문을 쓰기 위해서 대학원을 지원했다고 말했었다. 논문을 쓰겠다는 확고한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욕심은 있었지만, 두려웠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의심하며, 나약한 마음을 갖고 있었을 뿐이다.


  석사과정이 끝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해 봤던가? 사실 '왜 대학원을 다니니?'라는 질문에 분명한 답을 하지 못했다.


  석사학위과정에서의 수업은 큰 도움이 되었다. 유튜브 등에서 배우는 교양 수준의 강의보다 학문적으로 깊이 있게 주제를 다루었고, 과제를 제출하고, 시험을 보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확장되었다.


  수업은 나의 생각의 깊이를 깊에 만들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수업일 수록 남는 것이 많았다. 경영통계수업이 그랬다. 통계적 사고를 처음해 본 나는 모든 것이 생소하고 어려웠다. 강의를 듣고 나서는 이해한 것 같았지만  뒤돌아서면 잊어버렸다. 통계학 책을 읽는 것도 버거웠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조금씩 익숙해지는 나를 발결할 수 있었다.


  3학기 시작하기 전에 논문을 쓸 것인지 안쓸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과연 논문을 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쓸까말까를 오랫동안 고마했다. 안 쓰면 후회할것만 같았다. 고민끝에 석사학위 논문 예비 계획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그렇게 일은 시작되었다.


  3월, 4월, 5월, 6월 시간만 흘러갔다. 여름방학 때 많이 진도를 나가겠다고 다짐했지만, 선행연구 논문을 읽은 것이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어쩌면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아니 외면했었다. 학기 중이라, 바쁘다는 핑계, 일해야 한다는 핑계와 변명을 앞에 두었다.


  논문지도는 매월 1번씩 진행됐다. 논문지도를 받으러 가는 길이 두려웠다. 발걸음은 무거웠다. 논지도를 받을 때 궁금한 것을 물어봐야 하는데 해 놓은 것이 없으니 질문을 할 수 없었다. 감사하게도 교수님께서 나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단계 단계마다 닫혀있던 생각의 문을 열어주셨다. 답답하셨을 텐데 기다려주셨다.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질문해 주셨다.


  끝나는 점이 있어야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인가? 11월을 중순까지 논문을 제출해야 하는데, 9월이 되어도 서론조차 제대로 쓰질 못했다. 논문 쓴다고 책상에 앉아 있지만, 다른 것을 하고 있었다. 책을 읽고 정리하거나, 강의를 듣고 씽크와이즈로(디지털 마인드맵) 맵을 만들고 있었다. 논문은 안 쓰고 말이다. 가족들은 논문을 쓰라고 혼자 있는 시간을 내어 주었는데, 정작 논문은 안쓰고 내게 편하고 익숙한 것만 하려 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연구조사방법론 교수님께서 아무거라도 쓰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야 할 수 있다고. 그 말에 정말 아무거라도 채워 넣었다. 형편없었다. 창피했었다. 내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었었구나. 실망하고 절망했다. 한 단계 한 단계 조금씩 채워나가면서 아는 것이 없구나, 어떻게 해야 하지? 막히는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다. 논문을 어느 정도 완성하고도 내가 쓴 것이 논문이 맞나 의구심이 들었다. 겸손해졌다. 10월, 11월에는 주말 내내 논문만 썼다. 여행과 만남은 8월 여름휴가 이후 포기했다. 11월 12일 토요일 대전에서 사촌 동생이 결혼식을 했다. 마침 그날까지 논문심사를 위해 논문을 제출하는 날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야 했는데, 내가 못 가니 아내가 대신 대전까지 갔다 왔다. 우여곡절 끝에 석사논문 심사를 무사히 마쳤다.


  졸업을 앞두고 생각해 본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나? 조금 더 겸손해졌을까? 2년 석사과정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이전과는 다른 나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이 부족하고, 형편없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한 발 한 발 내 디뎠다. 나만의 발걸음을. 옆에서 뭐 하러 석사과정을 다니냐고 해도 꿋꿋이 버텨냈다. 누군가에게는 석사과정이 별 것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만큼은 소중하고 가치 있는 시간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했고, 분명 2년 전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앞으로 더 겸손하게 세상을 바라보며,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 한다. 대학원을 다닌 이유를 졸업식 9시간 전에 깨달았다.


2023. 2. 18.(토) 권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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