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찐 사랑

어릴 적 죽은 형이 가브리엘임을 알게 된 태훈

by 김정룡

퇴원을 하고 며칠간 집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수술 탓이기도 했지만, 나의 생명 에너지를 보충해야 하기 위해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두 번 더 가브리엘은 만났더라면 내 몸이 견디지 못했을 거란 말이지! 그사이 몸이 힘든 것이 다 이유가 있었구나.'


태훈은 수술대 위에서 가브리엘이 쏟아 낸 말의 실마리를 풀어내기 위해 생각에 잠겼다.


가브리엘은 자신이 먼저 내 꿈속에 나타났다고 말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수호천사가 되어 나를 보호하고 믿음을 갖게 하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우연히 내가 선택되었을 수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위험한 행동이었는데, 무슨 이유로 천계의 룰까지 어겨가며 나에게 집착한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완성하지 못한 로또 번호가 남아있다. 내 팔에 5개의 별은 내가 로또번호 5개는 맞힐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만 있어도 로또 3등은 가능하다. 보너스 번호까지 맞히면 2등이다. 만일 5개를 맞히고 나머지 40개의 번호를 가진 로또를 모두 사두면 그중 한 장은 1등이 된다. 그래! 나에게 아직 로또 1등 당첨의 가능성은 열려있다. 그런데 가브리엘이 어떻게 나에게 5개의 번호를 전달해 줄까? 가브리엘은 나와의 약속을 어기지는 않을 것이다.


태훈은 부모님 댁을 방문했다. 아버지는 건강을 잘 회복하고 계셨다. 그 모습이 안심되고, 건강한 부모님을 뵈니 행복했다.


"아버지! 태훈이에요.. 저 왔어요.."


퇴원 후로 아버지는 부쩍 태훈을 찾았다. 항상 부족한 아들이지만, 아버지에게는 대학 졸업하고 직장까지 다녔던 자랑스러울 아들일 뿐 아니라, 간까지 이식해 준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였다.


"어 그래 태훈아.. 어서 오너라."


아버지는 아직 몸이 불편했지만, 태훈의 방문은 아버지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아버지 불편하신데 그냥 누워 계세요.."


"그래 너는 수술한 데 불편하지 않니?"


"좀 불편하다가 이제는 아무렇지 않아요.. 그리고 몇 달만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온대요."


"그래 네 덕분에 내가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구나. 너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하느님이 도우셨지. 너한테 고마운 건 말로 다 할 수 없고.."


그렇다. 하느님이 도우셨다. 가브리엘이 아버지와 나의 수술 성공을 위해 하느님께 직접 읍소했을 것이다. 물론 의사 선생님의 실력으로 성공한 수술이지만, 나는 그 순간 절박했다. 의사의 손에만 맡겨두기보다는 0.1% 실패의 확률이라도 피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 아닌가?


"아버지.. 아들이면 당연히 해야지. 엄마도 이제 고맙다는 얘기 그만해요. 남들이 들으면 친 아들이 아닌 줄 알아.."


내 말을 들은 엄마는 또 눈물을 글썽인다.


"그래 태훈아. 네가 곁에 있어줘서 얼마나 힘이 되고 다행인지 모르겠다. 딸 년은 외국으로 도망갔으니 그렇다 치고, 네 형이라도 살아 있었으면 네가 혼자 힘들지 않아도 될 것을.."


엄마의 넋두리가 시작되었다. 맞다. 나에게 형이 있었다. 나의 평생 마음의 짐이었던 형.. 나를 살리려고 내 엉덩이와 발을 밀어내던 그 순간을 아직도 내 몸이 기억하고 있다.


"엄마는.. 왜 또 형 얘기야. 형은 나를 살리다 그렇게 됐으니 천국에 가서도 남을 도와주는 천사처럼 살고 있을 거야.."


나는 무심결에 말을 뱉고 나서, 순간 모든 생각이 멈췄다.


'...........!!!!!!!!'


맞다! 형이다.. 가브리엘이.. 나를 지켜주었던 형.. 그 형이다. 나는 순간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 형이 나를 지키는 수호천사가 되려고 내 꿈에 나타난 거다. 한심하게 사는 동생을 어떡하든지 정신 차리게 하려고 나타난 형이다. 어디서 본 듯한 그 평범한 인상은 어릴 적 형에게서 느껴지던 인상이다.


"엄마.. 근데 혹시 형 사진 아직 가지고 있는 거 있어?"


나는 갑자기 생각난 듯 뜬금없이 엄마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내가 형 얘기하니까 갑자기 보고 싶어 졌니? 나도 한동안 안 꺼내봤다. 보면 너무 가슴이 아파서.. 아버지도 죽은 아이 생각하면 뭐 하냐고, 태훈이 두배로 잘 키우면 된다고 그러셨어. 어디.. 앨범이 어디 있나 한번 볼까?"


나는 가슴이 콩닥 거렸다. 어렸을 때 모습 만으로 성인 된 얼굴을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고, 특히 가브리엘은 천사 특유의 착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개구쟁이 형의 어린 시절 모습을 떠올리기 어려울 것 같았다.


엄마는 오래된 앨범을 한 장씩 넘겼다.

"사진이 오래됐구나.. 색이 다 바랬네. 어릴 적 아버지가 너하고 지훈이 데리고 낚시터 가서 찍은 사진이 어디 있었는데.."


엄마는 추억 속으로 들어가는 표정으로 조심스레 앨범을 한 장씩 넘기고 있었다.


"여기 있네!"


앨범 속에서는 아버지가 낚시로 잡은 고기를 망에 넣어 들고 있었고, 그 옆에서 형이랑 내가 서서 해맑게 웃는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잡은 고기 여섯 마리를 보고 형이 양 손가락으로 6개를 만들며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6개의 로또 번호..


형과 내가 행복한 추억을 공유했던 시절에 기억하던 6마리의 고기. 그날 형과 나는 생선 회의 맛을 처음으로 보았고, 처음으로 생선을 숯불에 직접 구워 먹었다. 그때의 맛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형도 그때의 추억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게 형과의 마지막 추억이기도 했다.


그 사진들은 형이 죽기 바로 전 여름의 추억을 담고 있었다. 그 사진 중, 형과 얼굴을 마주 보며 짓궂게 찍은 사진을 보는 순간, 형의 눈빛에서 가브리엘을 보았다.


'형이다!'


나는 얼음이 되었다. 이 모든 신기했던 지난 몇 개월 간의 일들의 퍼즐이 한꺼번에 맞혀지는 순간이었다. 가브리엘은 동생의 삶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백수로 사는 동생의 인생에 의미를 찾아주고 싶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기도도 한 몫했을 것이고, 가브리엘이 말한 개인적인 이유라는 게 결국 나였다. 로또 번호로 나를 꼬셨던 것도 기독교를 제대로 알려주고 싶었던 형의 고육지책이었다. 천계의 룰을 어기고, 내 꿈에 직접 나타날 정도로 형은 죽어서도 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유체이탈의 상태로 가브리엘을, 아니 형을 만나는 것이 나의 생명에너지를 위협하는 것을 뒤늦게 것 같았다. 형도 어쩌면 자신의 무모한 행동을 무척 후회했을 것이다.


나의 코끝에서 뭔가 찡하게 오는 게 있었다. 형이 나를 살리고 죽은 것도 모자라, 나의 수호천사가 되겠다고 내 꿈에 나타난 이 엄청난 사건을 뭐라 표현할까?


'사랑!'


이 말 말고는 딱히 설명할 말이 없다. 형이 나 대신 물에 빠져 죽고도, 얼마나 내 걱정을 많이 했을까? 나는 형 대신 두배로 열심히 살아야 될 놈인데 그러지 못하고 있었으니, 형도 답답했겠지.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부쳐주는 돈으로 편히 사는 백수 생활이 적성에 맞는다고 떠들고 다녔었다. 내가 너무 싫었다.




몇 달이 지났다. 수술 상처도 거의 다 아물어가는 어느 날, 발송인 불명의 우편물을 받았다.


'누가 보냈을까? 요즘에 발송인이 제대로 표시되지 않은 우편물은 흔치 않은데..'


발송지를 확인해 봤다. 전라북도 ㅇㅇ군 □□ 면 ◇◇ 번지.. 옛날 시골집 주소다. 소름이 돋았다.


형이다.. 형이 보냈다.


태훈은 조심스레 봉투를 뜯고 안의 내용을 보았다. 그 안에는 5개의 번호와 해당 주간을 표시하는 날짜가 적힌 메모지가 있었고, 가브리엘이 쓴 편지 한 장이 있었다.


'태훈 님, 태훈 님과의 만남이 위험하다는 경고를 받은 후, 많은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태훈 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너무나 미안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태훈 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천상계로부터 자문을 받았습니다. 이 방법 만이 유일했습니다. 특별한 허락을 받고 잠시 지상계에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편지로 나마 마지막 인사를 드릴 수 있어 다행입니다. 5개의 로또 숫자와 당첨일을 보내드립니다. 이것만으로도 1등 당첨될 수 있다는 것을 태훈 님은 알고 계실 겁니다.


제가 태훈 님께 로또를 핑계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지금쯤은 이해하셨을 겁니다. 저는 태훈 님의 수호천사로서 태훈 님의 안전은 물론, 태훈 님에게 주어진 인생이 가장 값지고 의미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제가 자처한 일입니다. 저의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태훈 님을 위험에 빠뜨릴 뻔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태훈 님을 위한 제 마음이라는 것만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태훈 님의 생에 하느님의 인도가..'


'다 알아.. 형..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어.'


태훈은 글을 읽으며 죽은 형 생각에 가슴이 아리고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하느님의 사랑.. 이게 형이 얘기하던 그 사랑인가? 나는 형한테 해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저 나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조건 없이 사랑을 부어주고 있었다.'


나는 그 편지를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다. 부모님에게도. 그 편지를 가슴에 품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형이 아니 가브리엘이 나에게 했던 말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나를 왜 그렇게 짠하게 바라보곤 했는지 이제는 그 눈 빛도 이해가 되었다.


나는 로또 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다시 한번 보았다. 형은 끝까지 약속을 지켰다. 로또가 내 인생을 바르게 만들어 주지 않을 것을 알고도, 나와의 약속이기에 지켰다.


나는 형이 마지막으로 써준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내 마음속에 형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나도 형처럼 살고 싶었다.



-1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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