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이식 수술 중, 죽을 뻔한 태훈, 5개의 로또번호 확보
나의 팔에는 정확하게 다섯 개의 별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조만간 로또 당첨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이젠 급할 것이 없다. 차분히 다음 질문을 준비해서 가브리엘을 만나기만 하면 된다.
나는 그 사이 잠을 잘 못 잤는지, 유난히 몸이 쇠약해졌다. 며칠간은 휴식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마도 유체이탈 상태로 가브리엘을 만나다 보니 잠을 설쳤고, 그래서 힘들었던 가보다.
건강 회복을 위해 보름 넘게 가브리엘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다행히 가브리엘도 불쑥 꿈속에 나타나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몇 주일을 집에 처박혀 엄마가 보내준 반찬으로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었다. 비타민도 챙겨 먹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울렸다.
"태훈이냐? 엄마다. 지금 어디니?"
다급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불안했다.
"어.. 나야, 왜? 집에 뭔 일 있어?"
나는 가능한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엄마에게 물었다.
"너 지금 바로 산안 병원으로 와야겠다. 아버지가 쓰러지셨어!"
"뭐라고요? 왜? 건강하던 아버지가?"
"그 사이 아버지가 간이 많이 안 좋아졌어. 근데 아버지가 너 걱정한다고 말하지 말라 해서 얘기도 안 했는데.. 약 좀 먹고 좀 쉬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근데 뭐? 뭐라는데? 의사가?"
"니 아버지 간암이란다."
나는 정신이 없었다. 아버지가 간암이라니.. 아버지와 나는 종종 한잔씩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했다. 내가 직장 때문에 방을 구해서 나간 뒤로 아버지를 뵐 일이 없었다. 내가 술을 좋아하는 것도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술을 과하게 드시지 않았다. 그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입원 소식은 나를 멘붕에 빠뜨렸다.
나는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일반병동으로 자리를 옮겨 링거를 맞고 계셨다. 건장하셨던 아버지는 살도 빠지고 전보다 훨씬 수척해진 모습으로 힘없이 누워계셨다.
"아버지, 아버지.. 저 태훈이에요. 괜찮으세요? 많이 아프세요?"
아버지는 기력이 없으면서도 아들을 만난 반가움에 어린아이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았다.
"어.. 태훈아.. 왔구나."
"네 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치료받으면 좋아질 거예요."
"그래 고맙다.."
아버지는 긴 말씀을 하지 못하고, 힘드셨는지 바로 눈을 감아버리셨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나는 걱정스럽게 엄마에게 물어봤다.
"아버지가 얼마나 안 좋으신 거야?"
엄마는 한숨을 내 쉬며 나에게 말했다.
"너 잠깐 밖에서 좀 보자."
엄마는 아버지가 들으면 안 될 얘기라도 있다는 듯, 나를 데리고 복도로 나갔다.
"아버지가 그사이 간경화가 좀 있었는데, 약 먹으면서 괜찮았었어. 근데 너 나가고부터, 장가가면 전세 집이라도 마련해 줘야 한다고, 밤마다 대리 뛰고 좀 무리를 했지. 술은 조금씩 드셨는데, 과로가 주원인이라고 그러더라."
태훈은 할 말을 잃었다. 육십이 넘은 아버지가 못난 아들 때문에 은퇴하시자마자 대리 알바를 하셨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태훈은 로또 맞을 생각에 히죽거리고 다니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싫었다. 세상을 잘 못 살은 것 같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럼 엄마, 의사가 뭐래? 어떻게 하면 된대?"
"그래서 말인데.. 아버지가 간 이식을 받아야 할 것 같대. 지금 너무 상태가 안 좋아져서 약으로는 안된대."
엄마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고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검사를 해 보았는데.. 간 수치가 안 좋아서 안 되겠다고 하고.. 의사 선생님이 자녀들에게 공여 의사를 물어보라고 했는데.."
그럼 물어보나 마나 나 밖에 없다. 누나가 하나 있긴 하지만, 돈놀이를 잘 못하다가 파산하고 파라과이로 도피 이민을 간 뒤 소식이 끊겼다. 혹시나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연락처조차 남겨놓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늘 매형과 누나에게 쌍욕을 달고 다녔다. 엄마의 말을 들은 나는 그렇게 오래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엄마.. 걱정하지 마. 나 건강해. 내가 아버지한테 이식해 주면 돼.."
나는 내가 그렇게 선뜻 엄마에게 간 이식의사를 말할 수 있을지 몰랐다. 엄마도 내가 머뭇거리지도 않고 이식의사를 밝히자 놀라신 듯 눈이 동그래졌다.
"태훈아! 너.. "
엄마는 말을 잊지 못했다. 왜 그런지 안다. 늦둥이 막내아들이라고 귀여움만 받고 자란 거는 그렇다 쳐도, 나는 한 번도 집안일을 걱정해 본 적도, 아버지의 말을 공손하게 들어 본 적도 없는, 엄마에게는 늘 손만 벌리는 기생충 같은 아들이었다. 어쩌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서울 소재 대학이 아닌 데도, 마치 서울 대학에 합격한 것처럼 좋아들 하셨다. 그게 내가 생전 처음 한 효도라고 기억한다.
그 사이 몇 년, 조용히 직장 생활하고 있을 때, 엄마 아버지는 내가 무사히 직장에 붙어 있다는 사실과, 집안 돈을 타가지 않는 것만 가지고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흐뭇해하셨다. 그런 부모님이다.
"어 엄마.. 걱정하지 마. 요즈음 회사도 안 나가니까 며칠 입원해 있어도 아무 일 없어."
세상에 백수 된 것이 이렇게 떳떳한 경우는 없을 것이다. 엄마는 내 말을 듣고 곧바로 눈물을 흘렸다. 그 사이 아버지 때문에 혼자 애태우며 힘드셨는지, 울음과 설움을 한데 섞어 깊이 흐느끼셨다. 그 소리가 병원 복도에 나지막이 퍼졌다. 나는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졌다.
나는 얼마나 부모에게 무심한 놈이었던가. 가브리엘이 언급하던 사랑은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것 만 있나 보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건 힘든 일인가 보다.
병원에서 아버지를 간호하며 며칠이 지나갔다. 엄마는 나의 수술 결정 뒤로 하루도 빠짐없이 몸에 좋은 음식을 해 들고 와 나를 먹였다. 내가 원룸에 가있는 날에는 2시간 넘는 거리를 마다하고 직접 음식을 싸 오셨다. 나는 주말에도 간병인과 교대로 아버지를 간호하고, 주중에는 가능한 어머니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 후, 여러 가지 검사를 마치고, 나는 간 이식 수술 적격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아버지 병세도 조금씩 호전되어 수술이 가능할 정도의 체력을 회복하셨다. 수술 날자가 잡혔고, 나는 스케줄에 맞춰 입원을 했다.
"태훈아.. 고맙다. 엄마가 할 말이 없구나. 엄마가 좀 더 건강했으면 너에게 이런 고생 안 시켰을 텐데, 미안하다"
엄마들은 왜 그러는 걸까? 엄마가 잘 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미안하다고 한다. 나이 든 엄마보다는 내가 수술을 받는 게 회복도 더 빨리 되고 좋을 텐데.. 엄마의 마음은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다.
"엄마.. 이제 그런 말 그만해. 나는 아직 젊으니까 조금만 고생하면 아버지랑 나, 다 건강해질 거야."
"그래 알았다. 엄마가 너하고 아버지 수술 잘되고 건강해질 수 있게 하느님게 기도할게."
하느님께 기도.. 하느님께 기도. 이 말이 낯설지 않다. 그래 나는 하느님과 같이 일하는 가브리엘의 친구였지. 하느님께 기도하는 건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다. 그 순간, 하느님은 사랑이라고 주장하던 가브리엘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브리엘.. 이럴 때 네가 좀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어. 아버지도 건강해지고, 나도 수술 잘 받을 수 있게..
나는 기도라는 건 중학교 채플시간에 억지로 한 기억 밖에 없다. 나는 기도가 일종의 심리적 자위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 스스로 기도하는 것은 나약함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사이 가브리엘과의 만남이 최소한 하느님이라는 분이 존재한다고 믿게 만든 것 같았다. 그리고 사랑.. 하느님 사랑.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그 단어가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입원을 하고 있는 동안, 그 사이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나야말로 심리적 롤러 코스트를 겪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사이 내가 겪은 일들을 믿지 못할 것이다. 내가 가브리엘과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도 믿기 어려웠다. 그런 신기한 일이 어떻게 나에게 일어났을까?
그러다 문득, 가브리엘이 나타나 초능력을 발휘해 수술을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가브리엘이 얘기한 사랑의 하느님이 제발 아버지를 건강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드디어 수술 당일이 되었고, 몇 가지 검사 후 나는 바로 수술실로 옮겨졌다. 차가운 수술실의 냉기가 느껴졌다. 살짝 긴장이 됐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속삭였다. 가브리엘! 좀 도와줘..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기도했다.
'하느님, 하느님, 제발 수술이 잘 되게 도와주세요. 가브리엘 제발 나를 도와줘.. 제발.'
간호사의 손길이 느껴졌다.
"환자 분 곧 마취를 시작하겠습니다. 숨 크게 쉬어보세요"
나는 갑자기 잠에 빠져 들었다.. 아니 마취로 의식을 잃었다.
"태훈 님! 태훈 님!"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지금 수술 중이다. 이런 소리가 들릴 리 없다.
"태훈 님, 가브리엘입니다."
"아니, 가브리엘, 지금 왜 네가 나타나? 나는 지금 수술 중이야."
"알고 있습니다. 근데 태훈 님이 저를 호출하지 않으셨어요? 그것도 진심으로.."
아!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가브리엘을 불러냈다고? 그랬던가?
"태훈 님이 아버님의 간 이식수술이 무사히 잘 되도록 제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으셨나요? 사랑의 하느님이 도와줄 거라고 믿지 않으셨나요?"
"내가?"
"분명 태훈 님의 생각 속에서 마음과 영혼을 다해 기도하셨습니다. 진심으로. 그리고 그 믿음이 강해지면 그것이 현실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태훈 님이 저를 부르는 에너지가 너무 커서 저도 정신없이 호출되어 나왔습니다. 저도 이 갑작스러운 이 상황을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가브리엘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 태훈의 생명 에너지를 유지하려면, 한 번밖에 만날 수 없고, 로또번호를 줄 수 있는 기회도 한 번뿐인데, 아무런 질문을 할 수 없는 태훈이 수술대에서 자신을 불러낸 이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태훈 님, 지금 마취 상태에서 저를 호출한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저와의 만남이 길어질수록, 영적 교감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태훈 님의 생명 에너지를 크게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마취 상태이기 때문에, 태훈 님의 생명이 위험합니다."
나는 도무지 가브리엘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랐다. 갑자기 내 생명이 위험하다니.. 그렇다면 이제까지 가브리엘을 만나면서 나의 생명을 깎아 먹고 있었다는 말인가? 나는 이게 현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리고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이번이 저와 마지막 만남입니다. 태훈 님의 생명 에너지의 손상이 너무 심해서 더 이상의 만남이 어렵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아직 마지막 로또 번호도 못 받았는데 이번이 마지막이라니?
"태훈 님, 시간이 없습니다. 태훈 님이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셨던 대로, 지금 수술받는 두 분을 위해서 하느님께 특별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분명 하느님은 태훈 님과 저의 기도를 들으실 겁니다. 그리고 아버님의 빠른 회복을 위해서 아버님의 수호천사 역할을 해드리겠습니다. 이건 태훈 님의 기도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로또 번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약속대로는 태훈 님이 의미 있는 질문을 하셔야 하지만,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닙니다. 질문 없이도 6번째 로또 번호를 알 수 있는 별을 드리겠습니다. 이건 태훈 님의 생명에너지의 손상이 온다는 걸 미리 알지 못한 저의 불찰에 대한 사과의 표시입니다.
그러나 둘 중 하나를 선택을 하셔야 합니다. 태훈 님의 자유권한으로 기도의 응답이든 로또 번호든 선택하시면 됩니다."
가브리엘의 말은 다급했다. 태훈은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마취 상태에서 어떻게 이런 꿈을 꿀 수 있단 말인가?
"삐삐삐삐삐삐.."
간호사가 갑자기 당황하기 시작했다.
"교수님! 이상해요.. 갑자기 환자 바이탈이 이상해요.. 혈압이 50에 90이고, 맥박도 떨어지고 환자가 위험합니다."
"뭐라고? 아니 좀 전까지 정상이었잖아.. 출혈도 없는데 무슨 소리야?"
" 빨리 페닐에프린 100 마이크로그램 투여하고 비상상황 대비해.."
"네 알겠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는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런 일은 흔히 일어나지 않는다. 공여자의 건강상태도 좋았고, 나이도 젊어서 수월한 수술을 기대했었다. 심장에 무리가 갈만한 약을 쓴 일도 없고, 환자의 심장 상태도 매우 양호한 편이었다. 설명이 안 되는 이상한 현상이었다.
"일단 간 절개 중단하고 환자부터 살리자!"
수술실 안은 그야말로 대 혼란이었다.
태훈은 이 순간을 어떻게 헤쳐 나가면 좋을지 몰랐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는데, 어떻게 갑자기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었을까? 태훈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가브리엘! 뭐라도 알아듣게 이야기 좀 해봐. 나에게 모든 결정을 맡겨버리면 어떡해?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뭔지도 잘 모르겠단 말이야."
"태훈 님, 태훈 님의 영혼이 저를 부르면 저는 반응합니다. 이전에는 태훈 님이 저를 불러내는 힘이 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최근 태훈 님의 영혼이 변화되어 천계에까지 신호를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기도와 유사한 능력입니다. 그리고, 지금 유체이탈 상태에서 저와 대화하고 있습니다. 전신 마취가 된 상태에서는 매우 위험합니다. 빨리 저와의 대화를 마치셔야 합니다."
태훈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 로또 당첨의 꿈은 어디론가 사라지는 듯했다.
"가브리엘! 지금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네가 이렇게 나타났다는 것도 지금 이해가 잘 안돼. 그리고 생명 에너지는 뭐야? 그럼 그 나와 꿈속에서 만날 때는 내가 위험할 수 있다는 걸 몰랐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단지 저의 개인적인 이유로 제가 태훈 님의 꿈속에 뛰어들어간 것은 맞습니다. 저도 태훈 님의 건강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진심입니다."
태훈은 그 짧은 순간이지만 생각했다. 일단 아버지를 살려내자. 어차피 지금 로또를 고민할 때가 아니다.
"됐고.. 가브리엘.. 내 기도를 하느님께 전달해 줘. 아버지와 내가 무사히 수술받게 도와줘. 그리고 너와 나의 만남은 나중에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보자고.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뭐가 됐든지 지금은 로또가 중요한 게 아니야.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아니 나를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서라도 수술이 성공해야 돼. 꼭.. 알겠지? 가브리엘 어쨌든 도와줘서 고마워.. 바이!!"
"교수님, 교수님, 돌아왔어요.."
"휴우.. 20년 넘게 이식 수술을 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 보네. 모든 바이탈 기록 저장해 놔. 나중에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보게."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절개 다시 시작할 테니, 마취 상태 확인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수술실 안은 다시 질서를 찾았다. 땀 흘리던 집도의와 간호사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태훈아, 태훈아.. 정신이 드니?"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태훈이 깨어났다.
"어.. 엄마.."
태훈은 수술 중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희미하게 기억이 났다. 가브리엘과의 마지막 긴박했던 대화도 기억이 났다. 태훈은 자기 팔을 걷어보았다. 다섯 개의 별만이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었다.
태훈은 마취 중에 자기가 한 선택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거의 강제된 선택이었지만,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프신 이후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생각했다. 꿈이 아니어도 자신이 가브리엘을 불러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 로또 번호를 얻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던 순간의 기억, 유체이탈이 가능해진 자신의 영혼..
이 모든 변화가 태훈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태훈의 삶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가브리엘의 정체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천사가 사람을 사람에게 직접 나타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천계에서도 위험한 일이라고 하지 않았나? 가브리엘이 그걸 모르고 나에게 접근했다. 왜? 그리고, 가브리엘이 로또 당첨을 미끼로 내가 교회에 관심을 갖게 한 것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태훈은 회복을 위해 병원에 누워서 하루 종일 그간 있었던 일 들을 하나씩 되짚어 보았다.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왜 하필 나에게?
간 이식은 무사히 잘 이루어졌고, 아버지도 순조롭게 회복 중이셨다. 진짜 수호천사가 아버지의 건강을 챙기는 듯했다. 매일 내 앞에서 우시는 엄마만 아니면 모든 것이 견딜만했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도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가브리엘은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다.
-11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