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된 태훈, 가브리엘과 영적대화를 시작하다
"로또 11XX회 당첨 번호는 7 13 18 36 39 45. 축하합니다!"
TV에서 로또 1등 당첨 번호가 발표되고 있었다. 태훈은 훨씬 건강이 좋아진 아버지와 거실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가 정갈하게 깎아 내오신 사과를 아버지와 같이 먹고 있었다.
TV를 보던 태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버지! 로또 해 보신 적 있어요?"
"왜? 가끔 술 먹고 집에 오다가, 로또 가게 들러서 몇 번 사봤지.."
"그럼 아버지는 상금은 타 보신 적 있어요?"
"응.. 5000원짜리 한번 된 적은 있지. 야! 누가 당첨 되려고 사니? 그냥 재미로 하는 거지"
태훈은 주머니에서 로또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살짝 꺼내 보았다. 5개의 번호가 정말 1등 당첨번호와 같았다. 가브리엘은 약속을 지켰다.
"그렇죠? 로또는 재미로 하는 거죠.."
"태훈아, 아빠는 로또 필요 없어. 네가 로또야! 엄마도 로또고. 난 로또를 너무 많이 맞아서 더 욕심내면 벼락 맞을 거다!"
아버지는 유쾌하게 말하셨다. 아버지의 건강한 음성이 들려선지, 엄마란 말이 들려선지, 부엌에 계시던 엄마가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거실로 와 앉으셨다. 어머니는 걱정 없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요즘 로또 맞은 사람들 중에 잘 사는 사람 몇 없답디다. 없이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큰돈이 생기면 형제 우애도 깨지고, 주변에 사기꾼이 달려들고.."
엄마는 로또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계신 듯하다.
"엄마, 만일 내가 로또 당첨된다면 그 돈으로 편하게 사는 게 좋아? 아니면 한 십 년 열심히 일해서 성공해서 부자 되는 게 좋아?"
엄마는 난데없는 나의 질문에 우문현답을 했다.
"난 네가 로또 당첨돼서 그 돈으로 집 마련하고 결혼하고, 그리고 아들 딸 낳고, 그다음에 한 십 년 열심히 살아서 성공하고 부자 되는 게 좋다. 왜?"
엄마는 항상 옳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았다. 몇 번이나 로또를 사려고 가게 앞을 서성거렸지만, 살 수 없었다. 그 순간 형이 생각났다. 형이 한 말들이 생각났다.
애초에 형은 내가 로또에 목숨걸기를 바란 건 아니다. 형은 내가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를 바랐다. 천사가 된 형은 사랑하는 동생의 삶이 안타까웠고,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속물이었던 나는 로또의 유혹이 아니었으면 애초에 교회에 나가볼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의미 있는 질문을 찾아내려 노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가브리엘의 설명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형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형을 생각하면, 나의 인생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부모님 등골 빼먹던 기생충 같았던 인생. 그러다 로또나 맞아 팔자를 고치려던 욕심. 형의 희생과 사랑 앞에서, 내가 그런 인간의 모습으로 형을 만나고 있었다는 게 너무 창피했다.
형이 준 메모를 가지고 로또 1등 당첨이 되고, 그 돈으로 내가 계속 백수처럼 살았다면, 형은 아마도 나와의 만남을 후회하고 가슴 아파할 것이다. 형이 물에 빠진 나를 살리고, 그것도 모자라 수호천사가 되어 나를 만나고, 백수인 나를 설득하기 위해 고육지책 (苦肉之策)으로 로또를 제안했다. 그런데, 로또 당첨금만 먹고 떨어진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놈인가? 쓰레기 아닌가?
나는 우선 형에게 떳떳하고 싶었다. 형이 구해 준 동생이 이렇게 형의 몫까지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로또에 목숨 거는 백수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 김태훈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모습으로, 누가 봐도 의미 있는 생을 살아가는 그런 놈이 되고 싶었다. 아니,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부터라도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김태훈 목사!"
"네 담임 목사님!"
"오늘 설교는.. 뭐라고 할까? 마치 김목사가 실제로 하늘나라에서 천사를 만나고 온 것처럼 생생했어요. 교인들도 매우 감명 깊게 설교를 들었을 것입니다. 참, 젊은 사람이 20년 된 목사보다 설교를 더 잘하는 것 같아. 김 목사님의 기도생활이 생각보다 깊은 가 봐. 그것도 하느님이 주신 축복이니 잘 사용하면 교회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허허."
"부끄럽습니다. 제가 어떻게 담임목사님의 말씀을 따라가겠습니까? 더 열심히 하라는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김 목사는 말도 예쁘게 하는구먼. 아무튼 김 목사가 말씀을 전할 때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영적 아우라가 느껴져.. 마치 천사가 바로 뒤에서 김목사를 붙들고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것 같다니까.. 허허허"
담임목사님은 영적 통찰력이 출중하시다. 가브리엘 천사가 나를 도와주고 있는 것을 느끼고 계시다.
요즈음 나는 가브리엘과 매일 대화한다. 예전의 꿈속 대화가 아니라, 깊은 기도를 통해서다. 내가 영적 몰입 상태가 되면 가브리엘은 어김없이 내 곁에 온다. 아무도 보지 못하고 나도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나는 그가, 아니 형이 내 곁에 와 있는 걸 안다. 그를 느낀다. 그의 말도 들린다.
형과 같이 설교를 준비하는 시간은 나에게 가장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다. 성경에 나타난 하느님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하고,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성경의 의미를 알려주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목사가 되어 말씀을 전하고 있었다.
가브리엘을 수술대 위에서 마지막으로 본지 벌써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가브리엘과 나누었던 대화는 나의 생각과 삶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로또 당첨을 위해 가브리엘에게 질문하고, 답을 들으면서, 기독교의 본질을 조금씩 알게 되었지만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의심과 질문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나는 답을 찾고 싶었다. SNS를 통해 사람들이 궁금해하던 질문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어딘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것을 알려줘야 할 교회는 어떤 이유에선 지 답을 회피하고 있었다. 기독교와 과학적 세계관과의 충돌, 기독교의 타 종교에 대한 배타성, 기독교의 정치 개입, 교회 기업화와 영성의 소멸,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비리들.. 나는 대답이 필요했다. 형이 살고 있는,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한 세계로 가고 싶었지만, 이런 질문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나는 답을 찾기 위해 한동안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권위주의와 반지성주의에 포획된 교회 안에 답은 없었다. 그뿐 아니라, 어려운 질문을 하는 나는 목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탄의 세력으로 치부되었다. 나는 많이 황당했고, 좌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에게 묻고 싶었던 의미 있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반드시 찾아야 했다. 고민 끝에, 결국 나는 신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만일 교회가 대답하지 못한다면, 나 스스로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편, 부모님들은 아버지 간 이식수술 이후 바뀐 나의 모습에 놀라워하셨다. 엄마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교회를 다니셨고, 나는 건강을 회복한 아버지도 함께 교회에 모시고 나갔다. 엄마는 이런 나의 모습을 놀라워하면서 좋아하셨다. 뒤늦게 내가 신학교를 지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20년 기도응답이라고 기뻐하셨다. 아버지는 그저 예전보다 밝고 싹싹해진 아들을 흡족해하셨다.
나의 신학교 입학 소식에 누구보다도 놀란 것은 준식과 유경이었다. 준식은 처음에는 내가 미친 줄 알았다고 했다. 유경은 내가 교회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고 했다. 교회 사업으로 이권을 챙기던 아버지 때문에 교회를 멀리하던 준식은 최근에는 유경이가 다니는 순복음 교회에 나간다고 했다. 잘 된 일이다. 준식은 아마도 유경에 대한 관심으로 교회를 옮긴 듯했다.
그렇게 나는 신학생 생활을 시작했다. 역시 3년의 대학원 과정은 만만치는 않았다. 공부는 역시 힘들었다. 그렇지만, 늦깎이 신학생으로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업에 참여했다. 나는 수업에 들어오신 모든 교수님들께 골치 아픈 질문을 하는 이과 출신 괴짜 신학생이었다.
특별히 윤교수님은 조직신학을 가르치시면서 나의 질문에 가장 꼼꼼히 대답을 해 주신 분이었다. 수업 내용 외에도, 성경의 역사성, 성경의 신비성, 교회의 비민주성, 세속화된 교회의 영적 한계성, 대형 교회 세습의 문제점, 교회의 권위주의적 행태의 폐해,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한계, 예수 부활의 법적 증거 등, 내가 가브리엘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내용들을 친절하게 답변해 주셨다. 신학교에 들어와 크게 갈등을 느끼지 않고 졸업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윤교수님 강의와 친절한 설명 덕분이었다.
3년 간의 신학생 과정을 마치고, 전도사로 2년 간의 사역기간을 거쳐, 목사 안수를 받고, 나는 운 좋게 윤교수님의 추천으로 지역 교회의 부목사로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목사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이끌어야 하는 것은 정말 무거운 책임이었다. 이전보다 몇 배 더 기도하게 되고, 매일매일 하느님이 베푸시는 영적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편, 목사로서 매일매일 영적 생활에 몰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브리엘이 얘기하던 루시퍼의 실체가 눈에 들어왔다. 이 놈은 아직도 인간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대형교회 목사들을 유혹하고, 그들의 입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성경 말씀을 왜곡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안타까웠다. 거짓을 전파하는 루시퍼를 어떻게든 막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세상 권세를 장악한 루시퍼를 혼자 힘으로는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그 기도를 가브리엘이, 놀랍게도 형이 듣고 있었다. 나의 간절한 기도와 묵상 중에, 사탄을 대적할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그 순간에 가브리엘 천사가, 아니 형이 다시 나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이번에는 유체이탈의 상태가 아니라, 깊은 기도 중에 가브리엘과 영적인 대화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나의 설교를 돕고, 나와 영적 전쟁을 돕기 위해 형이 나의 수호천사로 돌아온 것이다. 할렐루야!
그런 형과의 대화는 나의 삶에 엄청난 힘과 용기를 주었다. 설교를 준비하는 순간에도 나에게 영감을 주고 말씀을 조리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지혜도 주었다. 형과 기도 중에 영혼의 대화를 나누는 순간은 나에게는 정말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설교 강단에 서면 형은 언제나 내 뒤에서 나를 지키고 있었다. 악한 영의 세력이 나의 설교집중을 방해하지 않도록.. 나는 온전히 말씀을 힘 있게 교인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형과 내가 꿈속에서 만난 사건은 내가 목사가 되어 하느님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한 큰 그림의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어머니의 기도가 뿌리가 되었고, 형의 사랑이 나를 변화시켰지만, 내가 목사가 되고 교회의 개혁을 위해 앞장서게 될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형은 알고 있었을까? 가브리엘도 하느님의 모든 뜻을 알지 못한다고 했는데, 하느님의 섭리일까?
나는 목사로서 교회의 본질에 충실한 목회를 하려고 노력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목사는 그저 말씀을 전하는 대언자일뿐.. 루시퍼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영적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기득권 대형 교회에 기생하는 루시퍼의 행태를 막기 위해 교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목사의 비리를 고발하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러자, 대형교회 목사님들로부터 항의가 빗발쳤다.
나는 어느새 교회개혁주의자로 불리게 되었다. 대형교회 목사 들로부터 젊은 목사가 멋모르고 까분다는 협박성 경고도 들었다. 다행히 담임 목사님은 나의 진정성을 이해하시고 응원해 주셨지만, 주변의 시선과,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과 회유가 끊이지 않았다.
가브리엘과 나는 알고 있었다. 조만간 루시퍼가 우리를 공격할 거라는 것을. 루시퍼와의 일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 13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