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아날로그가 차가운 스마트로 변하기까지 1
"어른 말씀에 대들면 안 된다."
어릴 때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말이다.
아버지가 "안 돼"라고 하시면 이유를 묻지 못했다.
"왜요?"라고 물어보면 "왜가 어디 있어,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야"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럼 난 그냥 "네..."라고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지?"라고 하시면 그게 끝이었다.
더 이상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그 시절 우리 집 분위기는 이랬다.
아버지가 리모컨을 잡고 계시면 나와 형은 아버지가 보고 싶어하는 채널을 봐야 했다.
뉴스 시간에는 조용히 있어야 했고, 아버지가 "불 꺼라"고 하시면 공부하다가도 불을 꺼야 했다.
밥상머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먼저 숟가락을 드셔야 우리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반찬이 마음에 안 들어도 "맛없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감사히 먹어라"가 기본이었다.
학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생님 말씀은 곧 진리였다.
"야, 너 이리 나와"라고 하시면 이유를 몰라도 일단 나가야 했다.
"왜 숙제 안 해 왔어?"라고 물으시면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그냥 "죄송합니다"만 반복했다.
중학교 때는 더 심했다.
체육 선생님이 "운동장 10바퀴 뛰어"라고 하시면 무조건 뛰어야 했다.
"왜 뛰어야 하는지" 묻는 학생은 없었다. 묻는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었다.
그때는 그게 당연했다. 어른이 나보다 많이 알고, 많이 경험했으니까 어른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때도 선후배 관계는 엄격했다
선배가 "신입생은 뒤에 앉아"라고 하면 뒤에 앉았다.
"오늘 뒤정리는 1학년이 해"라고 하면 그냥 했다.
MT에서 선배들이 게임을 시키면 부끄러워도 했다.
"왜 이런 걸 해야 하지?"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대신 친구들끼리 몰래 모여서 투덜댔다.
"아, 진짜 짜증나. 왜 우리가 선배들 뒷바라지를 해야 해?" "그러게.
근데 뭐 어쩌겠어, 우리도 선배 되면 1학년들한테 시킬 수 있잖아."
그렇게 우리는 참고 견뎠다.
언젠가는 우리도 그 위치에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첫 직장에서의 충격은 더 컸다.
"신입은 회의에서 말하지 말고 듣기만 해."
"커피 떨어지면 바로바로 갖다 놔."
"선배들 퇴근하기 전에는 먼저 가면 안 돼."
이런 암묵적인 규칙들이 있었다.
누가 가르쳐준 건 아니었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과장님이 "이 업무 내일까지 해와"라고 하시면 밤을 새서라도 해야 했다.
"힘들다"는 표현은 할 수 없었다.
대신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회식 자리에서는 더했다.
술을 못 마셔도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라며 억지로 마셔야 했다.
선배가 건배하자고 하면 일어서야 했고, 선배가 얘기할 때는 조용히 듣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왜 그때 한 번도 "왜요?"라고 묻지 못했을까?
왜 아버지 말씀에 무조건 "네"라고 했을까? 왜 선생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을까?
왜 선배들의 부당한 요구에 거부하지 못했을까? 왜 회사 상사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렇게 교육받았으니까.
"어른 말씀에 토를 달면 안 된다."
"선생님은 항상 옳다."
"선배를 무시하면 안 된다."
"회사에서는 상사 말이 법이다."
이런 말들이 내 머릿속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그런데 요즘 신입사원들을 보면 신기하다.
"부장님, 이 일을 왜 이런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데요."
"이 회의의 목적이 뭔가요? 효율성을 높이려면 다른 방법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야근하는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들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이 친구가 나한테 대드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질문들이다.
일의 목적을 알고 싶어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 싶어하고, 개인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
이런 게 왜 잘못된 걸까?
어느 날 92년생 후배가 내게 물었다.
"선배는 신입 때 궁금한 게 있으면 어떻게 하셨어요?"
"그냥... 참고 알아서 해결했지."
"왜요? 물어보면 되잖아요."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의문이 들어도 참고, 불합리해도 참고, 이해 안 가도 참았다.
하지만 이 친구들에게는 '묻는 것'이 당연하다.
이해할 때까지 묻고, 납득할 때까지 토론하고, 개선할 점이 있으면 제안한다.
누가 맞는 걸까?
어른들의 한마디가 절대적이었던 그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따르기만 하면 됐으니까.
책임도 없었고, 고민도 적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내 생각을 말할 용기, 의문을 제기할 권리,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자유.
88년생인 나는 지금 애매한 위치에 있다.
위로는 "요즘 애들은 버릇없다"는 선배들이 있고,
아래로는 "왜 그렇게 살아요?"라고 묻는 후배들이 있다.
나는 과연 어디에 서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