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름에 관하여.
그렇기에 미리 죽음을 상정해봅니다.
죽음을 목도함에도 탈피의 여정은 끝나지 않습니다. 두려운 마음 앞에 돌아가는 주마등. 위태로움을 감지한 몸이 저에게 보여주는 마지막 영화, 낭만적으로 느껴지다가도 이 또한 앞선 욕망과 같은 맥락이지 싶습니다.
저에게 전하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정리하는 두꺼운 포장지. 가장 마지막 순간에 마저 저는 무겁게 가라앉고 맙니다. 불어 올려지는 것은 아직인가 봅니다.
긴 마무리를 합니다. 우리는 무한한 시간 속, 유한한 삶을 살아가며, 무수히 쪼개진 흐름의 연속성 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아마 가장 나중의 시간이 오면 무엇인가를 담을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있겠지요.
많은 것들이 침전되고 뇌 속의 가장 작은 부분이 부푼 기억들로 채워집니다. 결국 떠오를 수 있을까 의심합니다. 끝에 닿을 수 있을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저는 아주 짧은, 극미한 도약을 하고자 합니다. 뜨거운 들숨이 마음을 차갑게 식히는 그런 기회가 오기를 저는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원합니다. 제 인생에서 최초로, 최후의 자발적 망각이 저를 불러 주기를 원합니다. 죄악 이후의 용서, 그리고 애와 상과 감으로부터의 부름을 원합니다. “잊어라. 겉치레를 찢고 태워라. 물질의 향유를 놓고 나의 점유를 누려라. 나 처음으로 그대의 마지막 뜀을 도우리라…”.
앞으로의 미래는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그동안 그래왔듯이 제 주변을 충분히 관망하려 합니다. 그만큼 많은 것을 기억하려 하기에, 끝을 향한 도약은 아마 좀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종이에 말라붙은 잉크를 핥으려 드는 저의 머리로는 좀처럼 잊지 못하는 사람과 순간이 많기에, 저는 다시 그 속지를 들여다봅니다. 망각의 부름은 그런 저를 기다려 주리라 믿습니다. 그가 저를 꽤 오래 봐 온 만큼, 저의 우물쭈물함 역시 알아줄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