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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의 시대

인간은 분류하는 동물이다

by 해닌

야생의 인간 A, 그리고 B가 있다. 둘은 지금까지 모르는 사이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물리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었으며 앞으로도 간간이 마주치게 되리란 것을 예감한다. 둘은 어색하게 눈빛을 교환하고 이내 적당히 선량한 눈빛 혹은 웃음을 교환한다. 그리고 음성신호를 보낸다.


"저.. MBTI가 어떻게 되세요?"

"뭐일 거 같으세요?"


그렇다. 대 MBTI의 시대가 도래했다.


...

시작부터 헛소리를 해서 미안하지만 공감하는 사람도 꽤 있으리라 믿는다. 60대 우리 부모님도 이제 자신의 MBTI를 아실 정도다.(물론 금방 까먹으심) 누군가는 벌써 지겹다, 헛소리다 비난도 하지만 대한민국 역사상 이렇게 쓸모있고 덜 멍청한 스몰톡 주제가 생긴 적이 있던가? MBTI는 대단히 유용한 도구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유행을 대단히 반기는 바이다.


첫째, 나를 소개하기 편해졌다. 이전에는 '왜 맨날 집에 가세요?', '왜 그런 이상한 질문을 해?', '말을 왜 그렇게 해?', '너 이거 한다며?' 등의 질문을 빙자한 질타를 받아와야 했으나 이제는 다르다. 저 대문자 I라서요. 집가서 에너지 충전해야 해요. 저 N이라서요. 이런거 재밌어해요. 미안해, 내가 T라서. 지금부터 힘내서 공감해볼게! 나 P라서 갑자기 딴거하고 싶어졌어. 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혈액형점같은 헛소리를 듣지 않게 됐다. 요즘 학생들은 잘 모르겠지만 한 5~10년 전만 하더라도 스몰톡 주제로 무슨 형이에요? 혹시 A형? 소심해보여서 ㅋ 같은 무례한 대화가 오고갔다. 인간을 대단히 비과학적인(이렇게 부르기도 사치스럽다. 사실 그냥 대단히 멍청한) 방식으로 4분류 해놓고는 그 유형의 단점만 짚어냈다. 그나마 살아남은 O형이 있긴 했다만 혹시나 O형은 모든 혈액형에 수혈이 가능해서 일까? 라고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아득해져 버리는 것이다....


셋째,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작동 원리를 적절하게 짚어준다. 인간끼리는 서로 달라도 어련히 이해가 되는 차이점들이 있다. 예를 들어서 공놀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나와 다르다고 느낄 지언정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하지는 않는다. 수학을 잘 하는 사람이 외국어를 잘 하는 사람을 보고 부러워할 지언정 저 사람은 왜 이럴까?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꾸만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근본적으로 작동 원리가 다른 것이다.


학교 현장에 있으면 MBTI를 써먹을 데가 참 많다. 일단 한창 자아를 찾아가는 학생들의 관심사기도 하고, 선생님들끼리도 스몰톡 주제로 많이 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관련 책은 별로 없어서 도서관에서 수서하기 미묘하다는 것이 또 특징이다. 정신상담 계열에서는 이미 MBTI가 오염된 검사라고 이야기를 한다던데, 진짜 전문가는 이것으로 책을 쓰고 싶어하지 않아 하는 것이 책 목록만으로도 느껴질 정도다.


오남용되고 있는 비표준화 검사, 이분법적 사고, 자기 검사로 인한 낮은 타당도, 현실과의 괴리, 검사 결과에 대한 잘못된 해석 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왜 떠들고 있느냐? 아무래도 효과적인 오프닝 글을 위해서 이만한 주제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분류 3부작 이야기를 해볼 예정이므로, 전문가가 아님에도 신나게 떠들고 있는 것을 너그러이 양해해주길 바란다.


일단 친한 상담 선생님에게 정식검사지를 빌려서(?) 해본 결과를 첨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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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각 지표가 중간선에 걸쳐있는 사람들도 많다던데, 나는 결과가 분명한 편이다. 사실 대학 신입생때 처음 검사를 해본 이래로 단 한번도 INTP외의 결과값이 나온 적이 없다. 상당히 분류하기 쉬운 개체인 듯하다.


MBTI에 대해서 조금더 이야기 해보자면, 카를 융(이하 융)의 성격 유형 이론을 기반으로 캐서린 쿡 브릭스와 딸 이자벨 브릭스 마이어스(이하 마이어스 브릭스)가 제작한 심리 검사이다. 그런데 융은 애초에 인간을 4분류한 적이 없다. 융이 제시한 성격 기능 이론은 사람의 심리 활동을 에너지의 방향(외향/내향)과 기능(합리적/비합리적) 유형으로 나누었을 뿐이다. 다만 합리적 기능은 사고와 감정, 비합리적 기능은 감각과 직관으로 다시한번 구분한다. 이 이론대로라면 총 8가지의 심리 유형을 분류할 수 있으며 외향적 사고형, 내향적 감각형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감각과 직관을 하나의 큰 축으로 빼내고, 판단과 인식이라는 하나의 축을 추가하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MBTI다.


마이어스 브릭스는 MBTI를 제2차 세계대전 중 인력의 적성을 파악해 적절한 군 산업에 배치하기 위해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마이어스 브릭스는 심리 전문가는 아니다. 브릭스는 아버지에게 홈스쿨링을 받았고 미시간 농업대학의 농학 학사 학위를 갖고 있다. 주요 활동도 교육과 문학이다. 심리학을 기반으로 심리검사를 만들었다기 보단 다양한 인간상을 두고 인간 성격을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고심한 흔적에 가깝다. 연구의 계기도 딸 이자벨의 약혼자가 가진 독특한 성격에 영감을 얻어 시작하게 된 것이라 한다. 융의 이론을 기반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연구하던 내용과 융의 이론이 맞아떨어짐을 알고 차후에 이를 기반으로 삼았다. 초판의 출간은 1962년도이고,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보완하였다고 한다.


인터넷 무료검사로 가장 많이 통용되는 16Personalities는 일본 도야마현이 제작한 사회인 대상 온라인 세미나 서비스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검사의 번역본을 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심리테스트도 무궁무진하게 많다. 인터넷 무료 검사이다보니 신뢰도도 낮을 뿐더러 근본적으로 MBTI는 다른 심리검사(BIG 5, MMPI 등)에 비해 문제점이 많이 지목된다. 그런데. 대체 왜. MBTI는 이렇게까지 인기가 많은 것일까?


나는 이렇게 주장한다. 인간은 분류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심리학자들이 싫어하는 그 '이분법적 사고'를 하고 싶어한다! 인간은 자신을 알고 싶어하고, 타인과 구분짓고 때로는 무리짓고 싶어한다. 이는 안정감을 주고 빠른 판단에 근거가 되어 준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드는 노력을 줄여준다!(이게 바람직하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이 맛을 모르는 전문가들은 자꾸 모호한 이야기를 한다. 어떠한 경향이 강하고... 당신은 이런 부분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 그러면 일반인들은 이렇게 답한다. "그래서.. 어쩌라구요?"


MBTI를 보라. 아주 칼같이 (51대 49의 성향이 나오더라도) 지표마다 땅땅 결과값을 내려주는 데다가 무려 16분류(혈액형점의 자그마치 4배 값이다)를 제시하여 인간을 골고루 분배해준다. 얼마나 명쾌한가. 그리고 재미있는가? 심지어 앞서 말했듯이 타인과 나의 다른 지점을 꽤 시원하게 짚어주기까지 한다. 유행할만 하다. 너무 납득이 간다.


세상살이, 얼마나 복잡하고 할게 많은가.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홈키퍼든 각자의 삶은 다사다난하다. 우리는 심리전문가가 될 생각도 없다.(물론 자격도 능력도 없다) 어차피 각자의 분야가 너무 쪼개져서 전문가 말고는 서로 잘 모르지 않는가. 그러니 MBTI의 대유행 시대를 받아들이자. 그저 교단에 서는 사람으로서 '엣헴, 내가 MBTI를 좀 알아봤는데 말이지..' 하며 맥락을 짚어 주는 것으로 본분을 다할 뿐이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MBTI 잡썰은 따로 빼두겠다. 다음 설명은 학생들에게 MBTI 간단 설명을 할 때 써먹는 내용이다.


MBTI는 4가지 지표를 기반으로 인간의 성격을 분류하는 심리검사이다.

이 지표는 사람에 따라 중간값일 수도 있고, 극단값일 수도 있는데 중간값인 경우 유의미한 분류지표가 되지 않는다. 16유형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이 어떤 지표에서 어떤 값을 갖는지를 보면 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변하기도 하고 다른 유형의 심리방식을 학습하기도 하는데 본인이 편안한 상태,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질이 무엇인가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된다.


1. 에너지 방향 - 외향/내향

관심이나 주의가 주로 향하는 방향을 뜻한다. 뭔말인지 모르겠으면 에너지를 어디서 얻는지를 보면 된다.

E : 외향인은 주로 외부세계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인간과의 교류, 관계 그 자체를 즐기며 관심이 있다. 사실상 사회생활하면서 에너지가 순환 충전되는 셈이므로 부럽다.

I : 내향인은 자신의 내면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자신의 생각에 몰두하기를 좋아하며 관계성에서 에너지를 얻기보다 그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 자체에 집중한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무조건 싫어하는 게 아니라 의미없는 스몰톡에서 재미를 못 느끼는 편이다.

* 내성적/외성적인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분류다! 이는 기질이 아니라 기능에 가깝다.


2. 인식 기능 - 감각/정보

정보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방식의 차이를 말한다. 같은 정보를 접하고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S : 감각형은 오감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 현재의 사실과 경험을 중시하므로 세부적인 사항, 명확한 데이터 등을 중점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다보니 일상적이고 실용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ex)부동산, 스포츠 등

N : 직관형은 보이지 않는 의미와 가능성을 받아들인다.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정보에 흥미를 가지고, 맥락을 함께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에 집중하지 않고 가능성 그 자체를 탐구하는 데에 흥미를 보여 큰 그림은 잘 그리지만 디테일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어떠한 주제가 쓸모있냐 아니냐는 흥미를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다. ex)철학, 예술

* 실제로 정보를 처리할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3. 판단 기능 - 사고/감정

의사 결정을 할 때 근거를 어디에 두냐에 차이가 있다. 즉, 중요시하는 요소 자체가 다르다.

T : 사고형은 싸이코패스가 아니다. 판단을 내릴 때 논리적인 원인과 근거, 객관적인 데이터를 중시하여 감정을 관여시키지 않으려는 것 뿐이다. 때로 사고형은 상대방이 상처받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수 있다.

F : 감정형은 감정 과잉이 아니다. 그들은 가치 지향적이고, 관계지향적인 인간형이다. 타인과의 관계 자체를 중시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할 수 있다.


4. 상황 대응 방식 - 판단/인식

J : 판단형이다. 계획형이 아니다! 외부 상황이 주어졌을 때, 자신의 기준대로 판단한 후에 대응한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양식을 선호하며 미결의 상태를 불편해한다. 이미 적절한 판단대로 작성한 계획표가 틀어지는 것에 불쾌감을 느끼며, 시간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P : 인식형. 외부상황이 주어졌을 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시시각각 변화되는 상황에 유동적으로 적응하며 반복되는 루틴을 지루해할 수 있다. 개방적인 양식을 선호하며 불확실한 상황에서 오히려 흥미를 느낀다. 그러다보니 계획을 세우더라도 어디까지나 다양한 선택지를 미리 찾아놓는다에 가깝지, 스케줄을 미리 짜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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