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밥취향을 존중합니다.
마음에 묻혀 두기엔 나의 짧은 기억력으로 마음의 찌릿을 잊어버리기 싫어서 늦은 일기를 쓴다.
2월까지는 초중고를 다니는 모든 학생들의 방학기간이다. 난 이 기간에 냄비밥을 한다.
홈스쿨하는 가정에서 다른 학생 방학기간에 냄비밥?
맞다. 우리 홈스쿨에는 따로 방학기간으로 정해진 날은 없다. 연중 정해진 행사 즉 가족들의 생일, 양가 어른들 생신이라고 적어놨지만 사실 컨디션이 멜랑꼬리한 날 또 날씨가 집에 있기 아까운 날은 상시 방학이기에 따로 방학이라는 기간을 정해 놓지 않았다.
그런 집에서 방학이라고 냄비밥을 한다. 따로 정해진 방학은 없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방학이라 덩덜아 우리집 아이들도 인간관계를 회복하느라 조금은 더 바쁘고 활기차기에 방학의 설렘을 느껴보라고 냄비밥을 한다.
방학의 설렘과 냄비밥은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집 아이들은 압력밥솥의 찰진 갓지은 밥보다 냄비에서 지어져 밥알이 풀풀 흩어지는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밥을 뜸들이는 시간 동안 한번씩 돌아가면서 냄비뚜겅을 열어보는거 보면서 '냄비밥이네'하면서 재촉이나 하는듯 수저를 놓고 물을 떠 식탁에 놓는 것을 보면 신이 나는 것이 틀림없다.
나는 또 냄비의 푸석함을 연신 드러내 듯 줄줄 흘리면서 떠들면 밥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냄비 바닥에 눌러 붙은 밥을 숟가락이 굽어져라 긁어 먹는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눌은밥 덩어리가 숟가락에 붙는다면 이 날은 로또보다도 더 큰 환호가 터진다. 덩달아 다른이들의 숟가락은 바빠진다.
마지막으로 다음 날 아침 그 냄비에 끓인 숭늉을 우리집 세대주가 마시는 것으로 냄비밥의 의식은 마무리 된다. 밥 한번 해서 온가족이 즐겁다면 일석삼조아닌가
그런 생각에 그냥 쌀만 씻어 취사버튼만 누르면 세상 간편한 편리함의 아이콘 전기압력솥밥을 포기하고 15분 불리는 시간과 물이 잦아들 때까지 화산폭발하듯 튀는 밥물들을 견뎌내며 저어야 하는 수고에도 매일 끼니마다 냄비밥을 한다.
이쯤이면 유튜브에 나오는 알록달록한 갬성넘치는 냄비에 창너머로 햇살이 비치는 김이 모락모락나는 하얀 쌀밥을 연상할지 모르겠으나 우리집엔 그런냄비도 그런 갬성의 창도 주방엔 없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런 날을 기대하며 주방도구에는 외면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갬성은 없으나 혼수장만할 때 그릇세트사고 사은품으로 받은 스테인레스 냄비에 밥을 한다. 그래서 더 밥맛이 좋은지도 모른다. 신혼 초 추억과 아이들 이유식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냄비라서... 우리가족의 기쁨에 함께 웃고 아픔에 함께 울었던 냄비라서...
난 그런 추억이 좋다. 나이 들었는 증거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냄비밥을 하다보면 다른 아이템이 마구 떠오른다. 오늘은 냉동실에 고이 잠자고 있던 오징어가 떠 올라 냄다 꺼내 살짝 데친다. 야채 탈수기에 오징어를 넣고 세탁기의 원심력은 쨉도 안되게 휘돌려 버린다.
갑자기 예상치 못한 메뉴로 마음이 급해진다. 전기압력밥솥의 밥은 우리의 인공지능님께서 알아서 적당 온도를 유지 해 주지만 아날로그 냄비밥은 그렇지 못한다.
냄비밥의 생명은 뜸을 들이고 밑바닥에 누룽지가 살짝 떴을 때 밥그릇에 옮겨 담아야 하는 찰라의 스피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징어를 튀김가루에 묻히고 튀김옷을 발라 놓고 손이 너무 바빠 발로 준비한 튀김기에 기름온도가 올랐는지 수시로 체크해 본다.
드뎌 됐다.
선 잠 깨어 줄지어 있는 오징어를 기름솥으로 투하한다. 신발을 튀겨도 맛나다는 튀김냄새에 식탁에서 각자 하던일을 하던 아이들의 코가 환호를 보내며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모습으로 연신 왔다 갔다 한다. 마음처럼 손도 바삐 움직이나 냄비의 오징어들은 생각만큼 잠이 깨지 않는 모양이다. 얼릉 정신차리라고 뜰채로 오징어를 흔들어 본다.
집에서 엄마가 해 주는 음식에 엄지척을 보일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안다. 그래서인지 그날이 곧 도래할 것을 알면서도 못내 아쉬워 자꾸 튀김이며 부침개며 나라에서 권장하지 않는 조리법을 사용한다.
느그들 40대에 고콜레스테롤은 당첨이다. 그 지분은 엄마꺼다.
곧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식탁엔 부부만이 남을 날들이 올것이다.
예전엔 얼릉 커라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이젠 좀 넉넉히 단단하게 천천히 커라 싶은 마음이 자리 잡는다.
세아이를 낳고서야 매일의 끼니를 하면서야 그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들이 커서 자기의 살림을 할 때 엄마를 뭐라고 기억할까 생각하게 된다.
우리 엄마는 '매일 냄비밥 해주던 엄마'라고 기억되고픈 소망이 들어 냄비밥을 한다.
난 그렇게 '냄비밥 해주는 엄마'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