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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봄 Nov 28. 2022

알아차림의 장소, 교장실

삶으로 배운 것만 남는다

똑똑

딱딱한 교내 슬리퍼를 신고 소심하게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인기척과 동시에 문을 열었다. 깊은 주름이 인상적인 교장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며 그 안으로 10개의 발을 옮겼다.

“어서 오십시오. 부모님, 한 주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소도시에서 홈스쿨은 처음이라며 학교에 보낼 것을 강력히 권유하셨던 첫 면담 이후였기 때문이었을까 긴장이 목구멍까지 찼다. 둘째 출산이 더 두려웠던 나의 성격으로 이번에도 동행해 준 남편이 너무 고마웠다.

차와 함께 교감선생님, 2호의 담임선생님, 교무부장선생님과 몇분의 선생님이 면접관의 모습으로 반대편 자리에 앉았다. 그 중 한 선생님이 먼저 입을 떼셨다.

“2호와 잠시 개인적으로 얘기를 해도 될까요?”로 예상문제는 적중했고 그렇게 지영이는 선생님과 자리를 옮겼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우리 부부는 정갈한 대답을 하며 질문을 이어갔다.

“저는 이 도시에서 등교전에 농사일 해 놓고 우수고 언덕길의 칼바람을 맞으며 학교를 다닌 세대입니다. 제 교직 생활에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교장으로서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셔서 아이들이 제 학년의 교과과정을 잘 수행하도록 다시 한번 권합니다.”

그때 알았다.

교장선생님은 이 도시의 일명 토박이고 칼바람 맞으며 학교 다녔다는 것을

교장선생님의 교직생활에 화제성이 짙은 우리 가족이라는 것을     


“어머님께서는 지금은 휴직 중이시지만 언젠가는 복직을 하실텐데 그때를 위해서라도  현석이 지영이가 학교를 다니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보건교사는 3대 조상의 묫자리를 잘 써야 얻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때 알았다.

몇 년 후지만 복직예정이 기정사실이라는 것을

보건교사라는 타이틀은 조상의 묘까지 고려해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교장선생님의 다음 타겟은 1호였다.

“그래, 1호는 일주일 동안 뭐하며 지냈니? 학교 오고 싶지 않니? 친구들은 요즘 체육시간에 하키 배우는데 너무 즐겁게 배우거든. 어제 아침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 했던 일들을 나열 해 볼래?

끝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상대편의 12개의 눈이 1호의 두 개의 눈을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1호 동공의 지진이 옆자리인 나에게까지 흔들렸다.

“음,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큐티하고 청소하고 동생이랑 놀다가 빨래 개고 책 좀 보다가” 말하면서 1호의 눈은 자연스레 운동장으로 향했다. 운동장에선 피구가 한창이었다.

1호의 어깨의 으쓱거림으로 하키에 대한 질문은 갈무리되었다.

“어머님, 1호의 말로는 주로 인성 위주로 생활하는 거 같은데 4학년이면 학교에선 고학년입니다. 이제 곧 5학년이 되는데 학습적인 면도 중요합니다. 보통 학부형들은 공부를 더 했으면 바라는데 이번은 반대의 상황이니 난감합니다.”

그때 알았다.

학교의 주된 민원은 학생들의 학업에 관한 것임을

생활의 주 무대가 학교에서 집으로 옮겨온 아이들이 기본 생활 패턴이 자리 잡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었던 것이 학습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진다는 것을     




그때 1호가 우물쭈물 입을 떼었다.

“근데요. 교장선생님, 전 우리가 학교랑 어린이집 가고 나면 엄마가 집에서 혼자 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집에 있어 보니 할 일이 많더라구요. 그래서 엄마 아빠의 힘듦과 수고가 많다는 걸 한주 동안 배웠어요.”

계속 채근하듯 쏟아지는 질문에 마음이 불편해서였을까 긴장의 연속이어서 였을까.

 1호의 뇌를 거치지 않고 나온 말에 눈물 쏟을 뻔 했다.

그때 알았다.

엄마가 혼자 있을 때 놀고만 있다고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을

매일 쌓이는 집청소와 설거지, 빨래는 인공지능이 했단 말인가

아이들은 진정 가르쳐야 할 대상이 아닌 삶으로 배워야 할 대상임을     

이렇게 교장이자 인생 선배이자 선배 부모이자 선배 교사로서 2차 면담은 마무리 되었다. 친정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말씀 해 주셨는데 그 마음에 응답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까지 느꼈다.  

   

또 한번 산을 넘은 가벼운 마음으로 저녁을 먹으며 2호가 말했다.

“아까 그 선생님이 일주일동안 엄마가 소리 지른 적 있냐고 물었는데 그저께 장난감정리 안 해서 엄마가 소리 질러서 내가 아무 말 못했거든요. 근데 선생님이 부모님이 함부로 대하면 그건 학대라서 경찰아저씨 같은 분들이 도와 준다고 하시면서 말하라고 해서 ‘우리 엄마 잡아가지 마세요. 내가 장난감 안 정리해서 소리 질렀어요.’ 하고 울었어요.” 면담 가기 전 그렇게 출제경향과 예상문제로 연습시켰겄만

그때 알았다.

시험은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함을     


그 뒤로도 몇 차례 교장실에서의 알아차림이 있은 뒤 진정한 정원외 관리자로 분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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