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혹시 내가 공무원신분이 결혼의 조건에 영향을 준다면 다시한번 생각 해 보는 건 어때?
난 결혼생활을 하다가 내 직업이 가정생활에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만 둘 수도 있을 거 같거든."
"........"
당시의 남자친구였던 남편과 결혼 얘기가 오갈 쯤 작은 공원 벤치에서 건냈던 대화이다.
남편은 침묵이었지만 끄덕임으로 우리는 결혼을 했다.
내겐 선견지명이 있는 것도 아닌 걸 보니 나에게 결혼은 그 정도의 의미였던 것 같다. 내가 열심히 준비해서 나름 좋은 성과라는 것을 뒤덮을만큼의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결혼 생활에 양가부모님께서 그들의 열심으로 우리부부를 키워주셨지만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기에 의도치 않게 이어받은 연약한 부분을 1,2,3호에게 영향을 최대한 주지 않으려고 책을 읽고 여러 강의를 들으며 부단히 애쓰며 아이들을 키웠다.
아이들이 좀 커가면서 고민은 더 깊어졌다.
어릴 적엔 좋은 책을 함께 읽고, 친구들과 실컷 놀게 하고 좋은 곳에 여행가고 대화를 하면 충분한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10대에 접어들면서 점점 어릴 적 문화를 스마트폰과 OTT, 필터링되지 않은 아이돌 노래의 가사로 대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땐 다 그런거야 하기보다 우리 가정의 좋은 문화를 만들어 아이들의 생각의 폭을 넓혀보자라는 생각으로 한가지씩 추가했던 우리가정만의 문화가 꽤 된다.
위 왼쪽부터 비전보드, FMT, 축ㅁ공, 게임에 대한 태도, 스포츠데이, 탄북톡
1. 비전보드 만들기: 버려지는 잡지나 신문, 책을 모아서 다음 해에 각자가 도전하고 싶은 영역들을 오리거나 찢어서 붙이고 발표를 한다. 그리고 1년 내내 방에 걸어둔다. 연말에 다시 모여 세운 비전보드에 대한 평가와 반성하는 시간을 가진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1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는데 조금은 허투로 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의 마음으로 만들었다.
2. 금요일 저녁 FMT: 가족 중 순번을 정해서 본인이 보고 싶은 영화나 영상을 골라 이 영상의 관점 포인트의 발표와 함께 공식적으로 인정된 영상 보는 시간이다. 온가족이 기다리는 시간이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영상이라도 함께 보는 시간이니 참고 견디는 시간이기도 하다.
3. 축ㅁ(구)공: 토요일 저녁 가족이 모여 앉아 살아온 일주일을 축복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입(구)도 즐거운 시간이다. 그리고 살아낼 한주의 일정을 공유하는 시간이다. 개인이 중요시 되고 있는 문화가 가정에도 스며드는 것 같아 적어도 최소한의 서로에 대한 관심은 가져보자라는 의미에서 만든 문화이다. 요즘은 좀 시큰둥한 문화인데 다시한번 잘 세워 봐야 겠다.
4. 게임을 대하는 자세: 우리집엔 개인 핸드폰엔 게임어플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스마트폰을 개설할 때 아이들과 세운 규칙이고, 경계였다. 게임어플이 깔려 있는데 그걸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OTT어플도 동일한 마음으로 없다. 유튜브도 좀... 패드나 닌텐데 게임을 정해진 시간에 비주얼 타이머를 맞춰놓고 주로 한다. 무슨 게임인지 이 게임을 어느 단계까지 올라가는 걸 목표로 하는지 등 부모에게 승인을 받고 시작한다. 새로운 게임을 깔고 싶다면 그 게임 방식과 게임이 주는 영향을 조사하여 가족들 앞에서 발표하고 최종 결정은 부모가 한 뒤 새로운 게임을 깔 수 있다. 아이들이 게임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 되지만 최소한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도는 자각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만든 문화이다. 계속 지켜내고 싶은 문화이기도 하다.
5. Sport Day: 아빠가 주도하는 문화이다. 일주일에 한번 온가족 근처에 나가 본인이 원하는 운동을 해도 됟고 가족끼리 해도 되고 가족안에서 조를 짜서 해도 된다. 그야말로 '따로 또 같이'의 느낌이다. 농구공으로 축구를 하기도 하고 축구공으로 배구를 하기도 하고 줄넘기로 줄다리기를 하기도 하고 정말 개념 없는 스포츠다. 맘껏 땀 흘리고 실컷 자지러지게 웃고, 돌아오는 길에 꿀맛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면 끝이다.
비가 오는 날은 집에서 하는 실내 스포츠데이다. 포켓볼이나 앉은뱅이 볼링 등 아이디어들을 모아서 보낸다.
6. 탄북톡: 10대는 잘 먹어야 부드러워진다는 것을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낀다. 아이들 마음 속에 이야기를 듣고 공감 해 주고 싶은데 나의 유전자엔 공감인자가 없는 듯하다. 그래서 마련한 문화이다.
책을 함께 읽고 나누며 너의 의견과 생각을 존중하고 싶다라는 공감을 슬쩍 건네고 싶어서 만든 문화이다.
일명, 탄수화물과 함께하는 북토크!
이 외에도 생일에 대한 문화, 결혼기념일에 대한 문화 등 우리가정만의 문화가 있다.
많은 이들이 많은 문화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듯하다. 나도 많은 부분 공감하는 바이다. 그 문화속에서 내가 해야 할 남은 자리가 있는 것 같다. 난 그렇게 가정속에서 대세가 아닌 대의를 따르며 나의 자리를 지켜내며, 더 깊어지길 바라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그 문화의 취지를 잘 받아 이어가 더욱 깊어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