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필요한 건, 기준!
최근 기사를 봤다. 경기도교육연구원에서 <초등학생의 생활과 문화연구>라는 주제로 발표한 보고서의 결과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성적 낮은 초등 6학년생' 41%가 '이생망'(이번생은망했다의 줄임말)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고등학생도 아닌 초등학생이 이런 생각을' 이라고 의심하면서 여러 차례 동일 기사를 읽고 또 읽었다. 분명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였고 결과도 초등학생의 답변으로만 이루어진 것이었다. 무엇이 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나를 말하자는 게 아니다. 어쩌면 나도 부모로서 은연 중에 이런 생각을 내 자녀에게 심어주고 있지는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아니 필시 분명 그런 의도는 아니였지만 그랬다.
프랑스 요리에 ‘그래뉴이에’라는 개구리 요리가 있다. 이 요리는 개구리를 재료로 삶는 방법이 특이하다.
일반적으로는 냄비에 물을 담아 펄펄 끊는 물에 넣지만 개구리를 넣으면 화들짝 놀라 냄비 밖으로 뛰쳐나가기에 요리사는 생각해 낸 것이 찬물에 넣은 개구리를 서서히 가열하는 방법이다.
냄비 속의 개구리는 처음에는 기분 좋게 수영을 한다. 그러다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조금씩 온도를 높여나간다. 미미한 수온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개구리는 물이 끊을 때까지 뛰쳐나가지 못한 체 천천히 죽어간다.
세상의 급류에 휩쓸려 어디로 어떤 식으로 가는지 그 길의 끝자락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수조차 없게 만드는 여러 정보들이 난무한 세상을 남녀노소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잠시 멈추어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삶의 한 영역인 자녀교육을 바라보았지만 삶은 개구리가 되어가는 영역은 없는지 진지하게 돌아보게 된다.
직업인으로서의 책임감으로 임하는가? 그냥 월급쟁이의 삶은 개구리로 임하는가?
주어진 재정안에서 가치있게 관리하고 쓰고 있는가? '한번뿐인 인생'이라는 가치로운 단어를 훼손시키며 나만을 위한 플렉스하고 있는가?
건강관리를 위한 외모를 가꾸는가? 남들 눈에 '보여지고 싶은' 외모를 가꾸는가?
부모로서 자녀가 가치 있는 삶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가? 자녀의 편한 삶만을 바라보고 방향을 만들어 주고 있는가?
내가 살고 싶은 삶만을 꿈꾸는가? 너와 함께 살고 싶은 삶을 꿈꾸는가?
내 인생의 마지막 시절인 가치로운 노후를 위한 노후 준비를 하는가? 경제적 풍요에 중점을 둔채 자신의 내면가꾸기와 사회 환원을 위한 외면하고 있는가?
기사 한 자락으로 인생의 전반 돌아보며 흐려진 방향성은 다시 재조정하고 망가진 방향성은 다시 고치고 없었던 방향성은 새로 세울 수 있는 기준이 있어 감사하다.
기준대로 차근차근 세워 오늘도 걸어간다. 혼자가 아니라 무섭지 않고 기꺼이 그 걸음 함께 하는 이들이 있어 전우애를 느낀다.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예레미야애가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