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이 가르쳐준 감정지도

불안은 나를 이끄는 방향감각이었다.

by 파랑S

“어떤 사람은 안정감을 기반으로,
어떤 사람은 불안함을 동력으로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한다.”



며칠 전, 메모장 속 오래된 문장을 발견했다.
2019년, 명리학을 공부하기 전의 내가 적어둔 글이었다.
그 문장을 다시 읽는 순간, 울컥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감정선은 언제나 ‘불안’ 위에 있었다.
그 불안은 종종 설명할 수 없는 우울감으로 이어졌고, 때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명랑함으로 튀어나왔다.
극단적으로 어두웠다가, 또 지나치게 밝아지는 나의 감정 진폭이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에게 낯설게 느껴졌다.

그 감정을 이해하고 싶어, 나는 문학과 명상, 그리고 심리학을 기웃거렸다.
그러던 중 정말 ‘우연히’, 명리학을 만났다.



내 사주에서 가장 ‘나’를 대표하는 글자, 병자(丙子)가 나의 일주다.



깊고 차가운 물속(子水)에, 뜨거운 태양(丙火)이 떠 있는 형상.


[페북에서 김동균 님의 작품]


극단적으로 陰의 에너지가 수렴하는 水의 기운과 그 반대의 陽의 에너지인 火의 팽팽하게 맞서는 이미지다. 나의 정체성인 병화는 십이운성상 ‘태(胎)’의 자리에 있다.



‘태’는 생명의 기원이며, 아직 어떤 형태로도 고정되지 않은 가능성의 에너지다.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

섬세함, 그리고 아슬아슬한 불안.
창조성과 감수성이 깃든 상태이기도 하다.



명리학을 공부하며 처음 일주를 해석했을 때,
나는 마치 나 자신을 '문장'으로 읽는 기분이었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도 아닌 듯한

이 불안정한 성향.


그게 바로 ‘원래부터의 나’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나는 감정의 양극단을 오가며 살아왔다.
밝은 순간은 눈부셨지만,

어두운 시간은 깊었다.


이 부조화는 늘 나를 불편하게 했고, 스스로도 나에게 적응이 안 되었다.



하지만 명리학은 이 혼란을 하나의

‘지도’로 그려주었다.


나는 병자일주 중에서도

특히 에너지가 약한 편이다.


쉽게 말하면, 사주상에서 나를 지지해 주는 ‘내 편’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늘 주변의 기운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



말투 하나, 공기의 흐름, 눈빛 같은 사소한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온 이유가 있었다.



처음엔 그것이 약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공부가 깊어질수록,

극단적으로 약한 에너지는
오히려 강력한 에너지로 동시에 존재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극신약한 사주는 때로는
남다른 통찰과 감수성을 갖춘 ‘센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나는 명리공부를 하며, 나의 불안을 정면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명리학은 내 안의 불안을 ‘결핍된 감정’이 아니라 나를 안전하게 이끄는

'정교한 방향감각'이라고 가르쳐주었다.



어쩌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누구보다 섬세하게 감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걸 이해하고 인정하자,

그 불안은 내 삶의 내비게이션이 되었다.



명리학은 아직도 내게 묻는다.


너는 누구냐고,

너는 왜 이런 감정을 품고 있느냐, 고.



그리고 나는 매번 그 질문 앞에서,
조금씩 더 깊이, 조금씩 더 다정하게 나를 이해하게 된다.



이 공부를 멈출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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