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그 단상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감독이 던지는, '가족 ' 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매번 묵직하다. 그리고 그가 즐겨 사용하는 색상이 나의 취향과 맞아서 더욱 그의 영화가 좋다.
특히 '환상의 빛'의 포스트는 오랫동안 카톡의 숨겨둔 프사로 사용하면서 시시때때로 보는 사진이다.
‘어느 가족’은 본 지 꽤 되어 영화 관련,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았다. 2018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배우 케이트 블란쳇은, 안도 사쿠라의 취조실 장면의 연기에 대해,
“앞으로 우리가 찍는 영화에 우는 장면이 있다면 안도 사쿠라를 흉내 냈다고 생각하면 된다”
라고 할 정도의 후문이 있었다고. 나도 굉장히 강렬하게 기억이 일어나는 장면이다.
...
경찰은 취조실에서 납치죄가 성립된다고 노부요에게 말한다. 노부요는 묻는다.
“낳으면 다 엄마가 되나요..?”
"낳지 않으면 엄마가 될 수 없죠. 두 아이가 당신을 뭐라고 불렀나요? 엄마?"
라고 경찰은 되묻는다.
그리고 카메라는 꽤 긴 시간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그녀는, "글쎄요.."라고 대답한다...
영화 초반부에서 그녀는 쌀쌀맞아 보이지만 그러나 그녀는 혈연관계로 묶인 관계가 아닌 가족을 하나로 묶기 위해, 얼마나 큰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화면 가득 채워진 그녀의 표정으로 표현해낸다.
고레에다 감독은 늘 가족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의 정의에서 거의 언제나 조금씩 비껴 나 있다. 감독의 첫 장편영화이자 그의 모든 작품에서 잔영처럼 스며있는 ‘부재’, ‘기억, ’ 삶 이후에도 남는 감정‘에 대한 서사는 그의 첫 장편영화인 ’ 환상의 빛‘에서부터 출발 되었던 것 같다. 나는 ’ 환상의 빛‘을 창동의 리좀시네아트에서 개봉작으로 봤다.
’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개봉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영화, 환상의 빛.
봄이었던가, 혹은 가을이었나. 낡고 오래된 도시, 마산의 창동이라는 곳에서 영화를 보고 밖으로 나왔을 때, 영화 내내 푸르고 짙은 암록의 스크린 속에 있다가 영화관 입구에 뒹구는 햇빛을 감당하기 어려워 잠시 휘청거렸던 기억도 났다.
크고 화려한 영화관 보다 내가 아는 한 가장 작고 초라한(?) 곳에서 봤던 영화가, 그 어느 영화보다 뇌리에 돌처럼 새겨져 있는 듯하다. 그때 그 느낌이 창동에 대한 이상한 기시감마저 들게 하는 것도 같다. 기시감을 다른 언어로 표현하면, '애정'쯤으로 변환이 가능하겠다.
아름답고 쓸쓸한 이 영화의 장면 장면을 잘라서 벽에 걸어두고 싶다던,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매 장면에 기이한 적요가 흐른다. 나 역시 짙은 암록의 검은 색상이 화면 전체에 베이스로 깔려 있으면서 그 위로 얇고 푸른 색상이 창호지에 번진 습기처럼 피어나는 장면들에 격렬한 상실감을 느끼면서 압도되었다.
도대체 이 감독은 누구인가,라고 그에게 사로잡혀있던 때가 있었다.
...
'환상의 빛', 은 ’ 죽음‘을 둘러싼 침묵에서 시작된다. 자살로 남편을 잃은 여인은 남편의 죽음에 대해 ’ 이해할 수 없음‘과 '말해지지 않음’의 무게를 안고 살아간다.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마음을 오래 휘감아 치는지를 이 영화에서는 보여준다.
이후, '그리고 아버지가 되었다',는 혈연이라는 전통적 가족이 조건이 뒤틀렸을 때, 사람들은 어떤 혼란에 빠지는가,에 대한 영화다. 여기서 고레에다는 가족이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감정의 관계라는 메시지를 ‘조용히’ 던진다.
그다음, '어느 가족'은, 좀 더 적극적(?)이다. 이 영화에선 가족으로 보장되는 그 어떤 요소도 없다. 불법과 결핍으로 구성된 공동체이지만 그 안에는 누구보다 진한 ‘돌봄’이 있다. 고레에다는 이 영화에서 가족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위선과 폭력을 드러내면서, ‘가족이란 결국 무엇을 나누느냐에 달려있는 것’ 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파비엔느에 관한 진실'. 이 영화는 친구와 부산에서 봤다. 남성들의 영원한 연인, 까뜨리느 드뇌브와 쥴리아노 비노쉬가 모녀 관계로 나오는데, 모녀가 공유하는 ‘같은 시간’은 있지만 그 안에서 형성된 감정은 서로 다르다.
배우인 엄마, 파비안느가 회고록을 냈다. 그걸 읽어 본 딸은 거짓말이라고 흥분한다.
거짓이라고 말하는 딸에게 파비안느는, 그것은 거짓이 아니라고 답하지 않는다.
“난, 배우이고 진실 그대로 말하면 재미가 없으니까..”라고.(아, 진짜 뭐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모녀는 다시 대화를 시도하면서, 바로 그 지점에서 가족의 진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고레에다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고레에다 감독은 ‘가족’이 그의 영화의 모티브가 되어, 애써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방기 하거나 피하지 않고 그만의 방법으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