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문법을 누가 허락했는가?
한 해가 지나가고 다시 봄이 온다. 그리고 어김없이 여름과 가을 겨울이 이어진다. 이 단순한 순환을 통해 옛사람은 '년(年)이라는 시간의 단위를 발견했다.
'시간이 반복된다'는 감각, 그것은 단지 해가 바뀐다는 사실을 넘어서, 세계가 주기적으로 숨을 쉬고 있다는 우주의 리듬을 인식한 인류 최초의 직관이었다.
하지만 '올해'와 작년'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그리고 '내년과 '후변'을 어떤 언어로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이 생길 때마다 옛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중에서도 그들은 목성의 운행에 주목했다. 목성은 약 12년에 한 번씩 제자리로 돌아온다. 대기 천체의 느린 회귀에서 그들은 시간을 측정하고 '년(年)'을 표현하려 했다. 물론 목성의 공정은 정확히 12년이 아니다. 11.9년, 약간의 오차를 안고 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오차마저 감안하여 수정하고 체계화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명리학에서 말하는 '공망(空亡)의 개념이다. 말하자면, 우주적 시간의 틈새.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60 갑자다.
이 고대의 시간 표기법은 단순한 기호 체계가 아니다. 그들은 천체의 주기성을 통해 시간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 속에서 개인의 삶과 운명을 포착하려 했다. 그 네 기둥. 연. 월. 일. 시는 목성, 지구, 달이 그려낸 우주적 기호다. 그 기묘한 한 문단 속에 내가 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것은 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나만의 고유한 시간이자 공간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년주의 간지는 목성의 공전 주기 위에, 월주의 간지는 지구의 공전과 관련 있다. 그리고 일주는 달의 공전에서, 시주는 지구 자전의 리듬에서 비롯된다.
사주팔자의 연. 월. 일. 시는 목성, 지구, 달이라는 천체들의 운동이 만들어낸 시간의 겹침이자 교차점이며, 바로 그 지점에서 한 인간이 태어난 것이다. 그 좌표에 '나'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뜻이다.
사주는 단지 인간의 것이 아니라, 우주의 언어다, 그때 그 공간, 그 시간의 결절에 우주의 에너지가 집중되고, 그 결과 하나의 인간, 한 명의 '나'가 이 세상에 나타난다.
우리의 삶은 임의적으로 던져진 우연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가 허락한 필연일지도 모른다. 사주는 그 무늬를 읽기 위한 지도이고, 인간은 그 위를 걸어가는 존재다. 그러나, 그 우주의 질서는 누가 허락한 것인가?
누가 지금, 이 자리에 그대와 나를 모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