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The Remains of the Day. 1994년)
[명리로 보는 영화]의 글쓰기는 영화 서평이 아닙니다.
영화 속 특정인물을 명리학에서의 일간( 日干 -'나'- 즉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에 대입해서 풀어보는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 장르입니다. 또한 글에 언급되는 인물이 반드시 주인공일 필요는 없습니다.
영화를 명리로 풀어보는
정관(正官)적인, 너무나 정관적인
집사, 스티븐스.
[남아있는 나날]은 watcha, Wavve, U+모바일 TV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속에 인용되는 명리 관련 용어는 글 밑에 번호를 매겨 설명글을 첨부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 거의 울지 않는다. 슬퍼서가 아니라, 울어야 하는 순간에도 감정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남겨진 나날]의 의 집사 스티븐스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영국의 오래된 저택, 달링턴 홀에서 평생을 보낸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고, 옷을 정리하고, 은식기를 닦고, 손님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집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위엄'이라고 말한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자기 역할을 지키는 것.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직업윤리다.
스티븐스는 '일' 때문에 부친의 임종을 챙기지 못할 정도로 살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슬픔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감정은 직업이라는 틀 안에서 눌려 있다.
이 영화에는 또 한 사람이 있다. 가정부 미스 켄턴. 그녀는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로 가끔 스티븐스를 당황하게 만든다. 농담을 하고, 웃고, 때로는 그의 마음을 건드리는 질문을 던진다. 그녀는 스티븐슨의 단단한 그의 삶에 유일하게 파동을 던지고 온기를 이끌어내는 인물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감정이 있다. 하지만 스티븐스는 끝까지 그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어느 장면에서 미스 켄턴은 그의 방에 들어와 책을 읽고 있는 스티븐스를 발견한다. 그녀는 살짝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무슨 책을 읽고 있죠?”
스티븐스는 당황해서 책을 숨기려 한다. 그 책은 연애 소설이다. 그 순간 스티븐스의 표정에는 어딘가 어린아이 같은 부끄러움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는 다시 표정을 정리하고
“부탁인데 혼자 있는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
미스 켄턴은 스티븐스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가 자신을 붙잡아주길 바랐다. 그래서 일부러 다른 남자와의 결혼 소식을 알려 질투를 일으킬려고도 했지만 그는 마음과는 달리
"네, 고마워요. 친절하시네요.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스티븐스의 차가운 반응에 절망한 켄턴은 골방에서 처절한 울음을 삼키고 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간 스티븐스는 업무 이야기로 그녀와의 마지막을 정리한다. 철벽 같은 방어막.
결국 미스 켄턴은 저택을 떠나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스티븐스는 그날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일을 계속한다.
*영화 속 특정 인물의 특징을 사주와 연결해서 분석하다.*
특정인물에게 사주를 부여한다면, 물론 영화 속 인물에게 실제 명식(사주)은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기질을 설명할 때 오행이라는 언어는 때때로 흥미로운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오행을 기반으로 재 구성한 이미지
스티븐스의 사주를 오행으로 추측해 보자면 목(木 1번) 일간(日干 2번) 일 것 같다. 왜냐하면, 목 오행의 에너지는 기본적으로 곧다. 목오행 중에도 양목(갑목)과 음목(을목)이 있다. 스티븐은 갑목인 느낌이다. 자기 역할과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한번 정한 길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그런데 이 목의 사람에게 금(金)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금은 목을 극(통제)하는 기운이다. 그래서 이런 구조의 사람들은 삶을 '의무”와 “책임'의 틀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자기감정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생각한다.
스티븐스가 평생 붙잡고 있는 단어, '위엄'이라는 말도 어쩌면 그런 기질에서 나오는 것인지 모른다. 바위처럼 굳세고 어떤 자극에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태산 같은 힘이 '나(일간)'를 통제하고 억누르는 현상이다.
여기에 더해 그는 그는 식상(食傷 3번)의 기운이 매우 약해 보인다. 명리에서 식상은, 삶을 즐기고 사람들과 즐겁게 소통하는, 즉, 감정을 표현하는 힘이다. 이 식상이 약한 사람들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밖으로 내보내는 통로가 막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는 미스 켄턴 양을 사랑하지만 말하지 못하고 그녀를 떠나보낸다. 식상(食傷)은, 자기 마음을 밖으로 내보내는 힘, 식상이 약한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스티븐스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사랑을 느끼지만 말하지 않는다. 슬픔을 느끼지만 울지 않는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 미스 켄턴이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의 본분에 일차의 오차도 없다. 관성(나를 통제하는 힘)이 강한 사람이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다.
20여 년이 흘러 재회한 그들. 미스 켄턴은 남편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회한에 가득 찬 모습을 보인다.
비는 내리고 스티븐스도 안타까운 감정을 살짝 드러내지만 흔들리던 그의 눈빛도 잠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두 사람의 재회 위로 쏟아지는 차가운 빗줄기는 그의 견고한 금(金)의 외벽을 녹이기는커녕 더욱 차갑게 적신다. 그는 빗물에 섞인 눈물을 닦아내는 대신, 다시금 꼿꼿이 옷깃을 세우며 자신이 평생 지켜온 고독한 질서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나 역시 관성(官星 4번)의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나, 식상 역시 막강한 힘으로 이 관성에 대적하고 있다.
그래서 관성이 나를 누르고 통제하려고 할 때,
"해 봐, 어디 한 번 해 봐!"
이런 용트림을 느낀다(웃음).
하지만 스티븐스처럼 관성이 강한 명식을 가진 사람이 식상이 약하면 주위로부터
“ 감정이 없는 사람 같아. 그리고 왜 저렇게까지 일만 하지?.”...
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삶은,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역할을 끝까지 지키는 일일지도 모른다.
영화, [남아있는 나날]은 스티븐스의 실패한 사랑의 영화로 회한에 젖은 영화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명리를 공부한 나의 눈에는, 그것은 자기 방식(에너지)대로 살아낸 한 인간의 이야기로 느껴진다.
평소 명리학을 공부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달라졌다. 스티븐스가 답답하거나 한심하지 않고 그를 이해하게 된다는 거.
그는 그가 가진 기운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1930년대의 영국의 대저택, 달링턴으로 갈 수만 있다면 스티븐스에게 말해주고 싶다.
가끔은 나를 위해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사적인 모임도 가지면서 소소한 삶의 기쁨을 표현하고 느껴보는 훈련을 조금씩이라도 하세요. 가능하면 연애소설도 열심히 보세요.
연애소설을 읽거나 쓰는 것은 그에게 필요한 기운을 다 사용하는 행위라고 명리학 이론에 근거한 솔루션 중의 하나다.
영화 속의 특정인물, 스티븐스에게 식상의 나라로 분류되는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3개의 단어,
Mangiare → 먹다
Cantare → 노래하다
Amare → 사랑하다
가 절실하게 필요한 에너지이다.
영화 <남아있는 나날>을 보며, '관성'이 강한 주인공 스티븐스의 고단한 삶을 오행의 기운으로 풀어보았다.
영화 [남아있는 나날]은 일본출생 영국작가의 노벨문학상 출신의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을 영화화했습니다. 저는 영화는 봤지만 소설은 아직 읽진 않았어요. 소설을 읽으면 가즈오 이시구로의 탁월한 명문장이 주는
인간의 회한 및 노년의 쓸쓸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명리단어
* 목(木 1번) - 목, 화, 토, 금, 수 오행 중 하나
*일간(日干 2번)-사주팔자 8개의 글자 중 '나'를 대표하는 에너지. 나의 정체성.
*식상(食傷 3번- 식신/상관)-놀고, 먹고, 쉼을 통해서 나를 릴랙스 시킬 수 있는 에너지.
식상의 힘을 적절하게 운용함으로써 경직되어 있는 관성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다.
*관성(官星 4번-정관/편관)
이 영화에서 스티븐스는 '정관'의 에너지다.
정관의 에너지는 다양하게 발현될 수 있으나
스티븐슨스는
자신을 통제하고 억누르는 기운으로 사용했다. 정관이 과한 탓에 평생을 책임감(위엄)으로 살아내느라 정작 자신의 희로애락은 잃고 살았던 것 같다.
영화 속 특정인물들에게 언급되는 에너지(명리관련 용어)를 만세력 어플을 설치해서 나에게
어떤 에너지가 있는지를 비교해 보는 재미를 느껴보세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