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깨는 고통이 우리교육에 필요한 이유

데미안이 전해주는 배움의 철학

by 이동배


청소년 시절 한참 감수성이 예민할 때 읽었던 책 중의 하나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이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워서 읽다가 도중에 포기했고, 이십대에 다시 읽을 때는 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소설 속의 아픔으로만 생각되었다. 그러다 최근에 다시한번 읽게 되었는데, 인생의 중반을 넘어선 지금에서야 데미안이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1. 우리 교육은 자신의 ‘껍질’을 깨어 스스로 나오게 만드는가?


유복한 환경에서 부모님의 그늘아래 사는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대는 어두운 욕망과 부모님의 도덕적 세계의 사이에서 혼란을 느낀다. 그는 꿈에서 본 새를 그린 그림을 데미안에게 보낸다. 그에 대한 데미안의 답장이 소설의 가장 유명한 문장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은 새가 태어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알’의 세계를 깨뜨려야 자신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음을 주장한다. 어찌보면 그 알은 새의 생명을 보호하는 방어막인데 왜 깨라고 했을까? 원래 모든 생명체는 자신을 보호하는 세계에서 스스로 나오는 것부터 시작된다. 엄마의 태 속에서 안전하게 있던 아이가 일정기간이 지나면 탯줄을 잘라야 엄마로부터 분리되는 것처럼.

데미안의 말을 우리 교육에 대비해보자. 알은 부모와 학교안의 안전한 교육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와 타인이 규정한 세계, 우리사회가 강요하는 대학과 성공의 기준, 스스로 만든 편견' 을 의미할 수 있다. 태어나려는 자는 자신이 있던 세계를 깨고 나와 자신의 존재가치를 발견하는데서 출발해야 되지 않을까?

오늘날 우리 학생들은 학업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도 여전히 안락한 둥지(수많은 학원과 입시 시스템) 속에 머물기를 강요받고 있다. 자식이 알의 껍질을 부수고 나가는 고통의 경험을 용기있는 학부모가 아니면 지지하기가 쉽지 않다.


2. 나를 가두는 ‘세계’를 파괴하는 용기


싱클레어가 부모님의 따뜻한 세계(밝은 세계)와 그 이면의 어두운 세계 사이에서 방황할 때, 부모는 자녀가 어두운 측면을 보기보다는 자신의 아이가 ‘밝은 세계’에만 있기를 바라기 쉽다. 그러나 진정한 성장은 이처럼 대립된 두 세계의 경계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도록 돕는 것이다. AI가 최적의 경로를 제시하는 시대에, 교육의 방향은 정해진 경로에 의존하는 대신 아이가 그 경로(알)를 의심하고 부술 수 있는 ‘새의 부리(비판적 사고)’를 길러줘야 한다.

고 이건희 회장은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당시 삼성의 국내에서의 1위에 안주하고 초일류 브랜드를 꿈꾸지 못하는 타성을 질타했다. 국내 1위 브랜드라는 안전한 한 알의 세계속에 있는 삼성 임직원들에게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꾸라'는 말은 충격이었다. 알을 깨지 않으면 새는 결국 죽는다. 관행과 기존의 실적에 안주하는 기업 역시 순식간에 도태되고 마는 것이다. 기존의 나를 가두는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자기만의 가치를 세우는 '창조적 파괴'가 바로 '나세움'의 시작이다.



3. 나세움은 나를 찾기 위해 걷는 길이다.


데미안은 " 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고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라고 묻는다. 진정한 배움은 학생 스스로 알을 깰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을 입시와 관행으로 억누르지 않고 자신을 세우는 힘을 기르려면 국가와 학교가 짜놓은 시간표 대신 학생 스스로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배울 지 스스로 결정하는 자기설계의 과정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주제를 통한 프로젝트와 학교안밖의 경험을 통해 갈등, 협력, 좌절과 작은 성공을 경험하게 하고 그 과정을 통해 배우는 기쁨을 맛보게 해야 한다.

학교가 청소년기에 지역사회와 함께 알을 깨고 나오는 학생들을 지원할 때 학생들은 저마다의 고유성을 가지고 자신의 별을 찾는 길을 기꺼이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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