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갈매기를 날게 하는가?

갈매기의 꿈이 말하는 나세움의 교육

by 이동배

리처드 바크의 고전 《갈매기의 꿈》은 청소년 시절 감명깊게 읽었던 책이다. 주인공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의 자유로운 비행 여정이 그 당시에는 너무나 멋져 보였었다. 세월이 훌쩍 지나 중년이 된 지금 조나단이 꿈꾸는 것이 '나세움'의 배움철학과 맞닿아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1. ‘먹이’을 향한 정해진 궤도를 이탈하는 용기: 나세움의 시작


바다 여행 중 흔히 배위에서 보게되는 대부분의 갈매기들은 새우깡을 주면 빠르게 날아와서 먹고 가는 새로 인식했다. 어쩌면 갈매기에게 비행은 생존 수단이다. 야생에서 엄청난 속도로 하강하여 물고기를 낚아채거나 돌고래 등이 사냥할 할때 노리거나 펭귄의 알을 뺏어 먹는 등 매우 영리한 잡식성 동물이다. 소설 속 갈매기들도 보다 손쉽게 먹이를 낚기위해 고기잡이배 뒤를 쫓으며 물고기 대가리 하나를 더 차지하기 위해 날갯짓을 한다.

우리 교육 현장도 소설 속 갈매기와 비슷한 면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좋은 대학입학,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먹이’를 얻기 위해 표준화된 궤도를 돌며 점수 경쟁을 벌이는 학생들의 모습이 비행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얻기 위한 갈매기들의 경쟁과 닮아있다.

그런데 소설 속 주인공 갈매기인 조나단은 생존을 위한 지루한 비행의 반복을 거부한다. 심지어는 본능인 배고픔을 잊은 채 더 높이, 더 빨리 나는 법을 연습한다. 자신의 부모와 친구들이 정해놓은 궤도를 이탈한다.

조나단의 용기있는 행동은 마치 소설 데미안에서 이야기한 ‘알을 깨는 투쟁을 하는 새’의 모습과 닮아있다.


고 3 교실 속 배움은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정해진 틀 속에서 더 나은 생존을 위한 비행이 아닐까? 배움이 수단이 되었을 때 그 배움은 금방 휘발되고 만다. 배움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자신만의 고유성을 발견하는 ‘목적 그 자체’여야 한다. 조나단처럼 인간이 던져주는 먹이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의 날개 끝에 집중하는 순간 ‘나세움’은 시작된다.



2. 시속 342km의 추락, 그리고 재도약: 실패가 주는 교훈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조나단은 고속 비행을 연습하다 수없이 추락한다. 평범한 갈매기들은 그를 ‘무책임하다’고 비난하며 무리에서 내쫓는다. 하지만 조나단은 실패하면서도 계속 질문을 던진다. 왜 날개가 꺾였는지, 어떻게 하면 공기 저항을 줄일 수 있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를 경청하며 몸으로 하나하나 익힌다.

인공지능 시대에 AI는 사람에게 실패 없는 최적의 경로를 알려주지만, 그 경로에는 ‘자신만의’의 서사가 없다. 실패가 없는 인공지능은 수많은 데이터를 언어로 인식해서 나온 최종의 결과를 보여주지만 인간은 자신이 스스로 체험하고 실패한 것을 통해 새롭게 상상하고 질문한다.


나세움의 교육은 아이들에게 가기쉬운 정답을 복사해 주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추락해 볼 수 있는 ‘안전한 하늘’을 빌려주는 것이다.


많은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시간표를 짜며 여행과 프로젝트를 통해 겪는 시행착오가 바로 조나단의 고속 비행 연습과 같다. 공교육에서는 성적의 실패는 자퇴로 이어지게 경우가 있다. 그 실패를 딛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기보다는 더 많은 물고기를 보다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비행법을 알려주는데 그친다.


3. 존재의 본질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


조나단이 결국 깨달은 것은 더 높이 멀리 나는 비행의 기술이 아니였다. 새에게 있어 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존재의 본질’이었다. "비행이란 단순히 날개를 흔들어 먹기 위한 수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갈매기 스스로의 본성이 자유롭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 고교학점제를 운영하면서 느끼게 된 부분은 입시라는 거대한 틀과 칸막이 교과에서 등급으로 줄 세우는 시스템에서는 학생들로 하여금 자유로운 비행을 통한 존재의 본질을 찾기에 부족하다는 점이다. 혹자는 너무 어린나이에 진로를 강요하는 것이 비교육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동의한다. 그러나 진로의 결정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비행할 수 없게 만드는 학교시스템이 문제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학생은 가장 낮은 곳에서 먹이만 보는 갈매기에 머물 수 밖에 없지만, 스스로 질문하며 나를 세운 아이는 조나단처럼 가장 높은 곳에서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했기에 서두르지 않는다. 자신만의 속도로 꾸준히 열정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다.

AI 시대에 인간이 기계보다 우월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은 ‘왜 날아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가치를 스스로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4. 조나단의 귀환: 스스로 서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서로를 세우는 배움으로


소설의 마지막, 조나단은 혼자만의 자유에 머물지 않고 다시 ‘무리의 갈매기들’에게로 돌아간다. 그가 홀로 비행을 연마하며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에서 스승 '챙' 과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자신의 동료와 공유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날지 못한다고 포기한 어린 갈매기들에게 가르친다.


"너희의 날개는 생각 그 자체다. 너희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된다."


나세움은 나 혼자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이기적 성공이 아니다. 내가 나를 바로 세워 얻은 빛으로, 아직 알 속에 갇혀 있는 다른 이들의 껍질을 함께 두드려주는 연대이다. 조나단의 귀환은 교사로서 나를 다시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고 3에서 입시교육을 하다보면 무기력에 빠진 아이들, 엇나가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조나단처럼 배움에서 도주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함께 비행하고 있는가? 아이들의 독자적인 가능성을 믿고 지지하는가? 학생들이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높이 날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가?


조나단의 꿈이 교사로서 지쳐있는 나에게 다시 한번 아이들과 배움의 본질을 공유하며 나아가도록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로 하여금 실패를 딛고 다시 세상을 향해 비행할 수 있는 단단한 플레처가 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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