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태우고 춤을 추라

조르바에게 배우는 배움의 야성

by 이동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조르바의 그리스인(Zorba the Greek)》은 쉽게 읽힌 책은 아니다. 조르바의 삶에 대한 태도가 처음에는 다소 불편했다. 하지만 조르바의 삶의 태도는 배움의 야성을 회복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1. ‘펜대’를 쥔 아이들, 그러나 자기 삶의 ‘조종간’을 잊은 교실
오늘날의 교육은 아이들에게 거대한 학교와 교과서를 제공해주었지만, 학교밖으로 나갈 용기는 가르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어쩌면 아이들을 정답이라는 종이 성곽 안에 가두고 아이들을 ‘대답하는 노예’로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데미안》의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우리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세련된 지식이 아니라 조르바의 거친 춤사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날것의 삶과 마주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나세움’의 배움의 출발이다.


2. ‘생각’하는 화자와 ‘실천’하는 조르바의 만남


젊은 인텔리이자 작가인 '두목'(화자)은 책 속에 파묻혀 지내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크레타섬으로 가서 갈탄 광산을 운영하려 하는데 그 여정에서 '알렉시스 조르바'라는 노인을 만난다. 조르바는 독특한 인물이다. 현재를 열정적으로 산다. 손에 잡히는 음식, 눈앞의 여자, 발밑의 대지 등 '지금, 여기'의 생명력에 온몸을 던진다.

불운하게도 광산 사업은 처참하게 실패하고 두목은 전 재산을 날리게 되고만다.

하지만 '두목'는 그 실패의 잔해 위에서 조르바와 함께 미친 듯이 춤을 추며, 평생 자신을 가두었던 '책의 감옥'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맛보게 된다는 줄거리이다.


3. 배움의 야성을 회복한다는 것


카잔차키스가 조르바를 통해 세상에 던진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람은 머리(지성)로만 살 수 없고, 가슴(열정)으로만 살 수도 없는 존재이다. 조르바는 지식에 매몰되어 화석화된 인간들에게 "당신의 머리를 깨고 가슴의 소리를 들어라"고 말하는게 아닐까?


"죽으면 말썽이 없지. 산다는 것은... 두목,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러 붙어 풀어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


저자는 메토이소노(Metoisono)를 이야기하는데 이는 낮은 차원의 물질이 고귀한 정신적 가치로 승화되는 '성변화'를 뜻한다고 한다.

예컨대 조르바에게 빵을 먹는 행위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빵을 에너지로 바꾸어 춤을 추고 일을 하는 숭고한 영적 의식인것이다.

조르바에게 자유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실패까지도)를 온몸으로 책임지는 것이다.

우리교육은 아이들에게 배움의 야성을 키워주고 있을까?


4. ‘나세움’은 ‘삶을 찾아가는 마음의 근육’이다


조르바는 말한다. "두목, 당신은 당신이 읽은 책만큼만 살고 있군요."

'나세움'의 배움철학은 아이들에게 더 많은 양의 책을 읽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책에서 읽은 내용을 자신의 삶으로 번역해내고, 조르바처럼 실패 앞에서도 당당하게 춤출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마음의 근육'을 키워주는 것이다.
AI가 모든 지식을 대신 처리해 주는 시대에, 소설속 조르바가 보여준 것은 인간이 '날것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이라는 무대에서 남의 각본이 아닌 자신만의 춤을 추게 하는 일이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정답을 외우는 곳'에서 '자아를 춤추게 하는 무대'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조르바가 던지는 메시지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학습자주도성(Agency)’과 맥락을 같이한다.
듀이의 실천적 교육 또한 교과서의 활자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중시한다.

마치 소설속 조르바가 빵을 먹어 에너지를 만들고 그것을 춤으로 승화시키는 과정(메토이소노)은 정보를 지혜로 바꾸는 것처럼 행함으로써 삶의 이치를 배우는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은 지나치게 ‘알’ 속의 안전함(정답, 표준화)을 중요시했다.역설적으로 지식 처리는 AI가 더 잘하는 시대이다.

소설속 조르바의 외침을 접목해본다면 아이들이 교육시스템에 매몰되어 자기 색깔을 잃어갈 때 이 조르바처럼 온몸으로 부딪히고, 실패하며, 다시 일어서는 ‘야성적 생명력’과 ‘회복 탄력성’이 가장 강력한 생존전략이 될수 있다.


5. ‘조르바의 심장’을 가진 ‘싱클레어’ 키우기
미래의 인재상을 데미안의 싱클레어와 그리스인 조르바의 캐릭터가 잘 조화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미안을 만나 자신의 알을 깨고 성장한 싱클레어의 비판적 성찰능력과 조르바처럼 거침없이 자신의 삶을 표현하며 살아가는 역량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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