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옷을 벗어야 진짜 '나'를 세울 수 있다

하선과 단종, 두 왕이 우리 교육에 던지는 질문

by 이동배

최근 '왕과 함께 사는 남자' 영화를 를 보았다. 천만관객 영화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단종 '박지훈'과 엄홍도 '유해진'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도 이유지만 왕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해갈 때의 아픔과 그 아픔에 공감하는 촌장의 마음이 감동을 주었다. 문득 이보다 전에 조선의 왕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가 떠올랐다. 바로 '광해: 왕이 된 남자' 이다. 풍자극을 하는 광대에 불과한 하선(이병헌)이 광해와 완벽하게 똑같은 외모와 말솜씨를 가졌으며 허균의 제안에 따라 독살위협을 받던 광해의 대역을 일시적으로 맡게되며 왕으로서 겪게되는 일화를 상상해서 만든 에피소드이다. 천민이지만 자유로왔던 하선에게 하루아침에 왕으로의 신분전환은 기분이 어떠했을까?

<광해, 왕이 된 남자>와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을 통해 우리 교육의 민낯을 생각해보았다. 어찌보면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산다는 것은 수험생으로서의 일상이다. 매일 아침 '나'라는 존재 위에 '수험생'이라는 무거운 곤룡포를 입게 된다. 유초중고의 십수년의 교육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소위 명문대라는 옷이 잘 어울리는지, 소매 길이는 본인의 등급에 맞는지 끊임없이 거울을 비춰보며 격려한다. 하지만 정작 그 옷 안에 숨 쉬는 '아이'의 본래의 얼굴은 잊어버리곤 한다.


1. 하선의 '가면'과 쿨리의 '거울자아'


영화 <광해>의 하선은 영문도 모른 채 왕의 대역을 맡게된다. 도승지 허균이 시키는 대로 걷고, 말하고, 음식을 먹고, 심지어 생각까지도 왕의 흉내를 내야한다. 하선의 모습은 마치 거울자아의 완벽한 복제와 같다. 학생들에게 사회시간에 미시적 관점을 가르치면서 사회심리학자 쿨리(Cooley)의 '거울자아(Looking-Glass Self)' 이론을 설명했는데,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울에 비친 모습이 곧 진정한 나라고 믿으며, 타인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자신을 분장하게 되는 현대인의 정체성에 대한 중요 이론이다.

하선이 광대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가짜 왕으로서의 모습으로 연기하는 과정을 보며 오늘날 대입 제도를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에게 수능점수와 생기부 등급이라는 거울에 비친 숫자가 곧 자신의 가치로 받아들이게 된다. 또 다른 사회심리학자 미드(Mead)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적 규범이 내면화된 자아인 'Me'가 비대해져, 생동감 넘치는 주체적 자아인 'I'를 질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루하루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숨긴채 왕으로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던 하선은 어느날 도승지에게 질문을 시작한다. "대관절 왕이란 자가 무엇을 위해 존재한단 말이오?", " 그대들이 죽고 못 사는 사대의 명분이 도대체 무엇이오? 백성이 열번 굶어 죽을때, 한번 배부른 것이 명분보단 낫소"

진정한 왕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해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하선은 가짜 왕의 가면을 벗고 진짜 주체성을 가진 인간으로 돌아온다. 평상시 광해의 모습과 다른 하선의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모습에 많은 신하들은 감동하며 도승지 허균은 하선을 진정한 임금으로 인식하게 된다.

어찌보면 학생으로서 '나세움'의 첫걸음은 바로 이 '불편한 질문'을 제기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2. 단종의 '유배'와 '대2병'의 역설


또 다른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단종은 삼촌인 세조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영월로 유배된다. 그는 원래 왕의 정통성을 지닌 사람으로 그를 따르던 많은 신하들이 역모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왕이라는 화려한 이름(Me)이 사라진 자리, 그에게 남은 것은 초라한 '이홍위'라는 이름 밖에 없게된다.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하며 유배지에서 자살까지 시도한다.

교육에 대비한다면 이는 마치 학생이 입시라는 목표가 사라진 뒤 대학에 와서 자신이 선택한 전공에 대해 회의를 가지며 방황하는 대학생들의 '대2병'과 닮아 있다. 부모와 사회가 정해준 취업 잘되는 대학과 학과에 진학한 'Me'가 사라지자 내가 진짜 공부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대학에 와서 다른 학생들과 비교하며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고등학교 때 시험준비로 자신에 대해 한번도 깊이있게 고민해본 적이 없는 시간이 성인이 되어 대학생 때 또 다른 경쟁과 부딪치면서 본래의 자아와 충돌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자기에 대해 자존감이 낮아지면서 마음의 병을 갖게된다.

다시 영화 속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하루하루 사는 것보다 죽음을 기다렸던 단종은 그 유배지에서 촌장 엄홍도와 주민들과 상호작용하며 비로소 '나'를 찾아가게 된다. 마을을 위협하는 호랑이를 직접 활을 쏘아 잡으며 '효능감'을 맛보고, 촌장의 아들 태산에게 글을 가르치며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깨닫는다. 오히려 허울뿐인 왕위에 있을 때보다, 유배지에서 땀 흘리며 백성들의 삶에 들어가서 삶에 대해 실천하게 될 때 더 단단하게 자신을 세우게 된다. 이런 태도는 결국 세조의 사약을 거부하고 엄홍도로 하여금 자결을 돕게 하며 스스로 왕으로서의 마지막 자존감을 찾게된다.


3. '나세움' - 타인의 거울을 깨고 나오는 용기


두 영화가 우리 교육에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진짜 배움은 타인의 시선에 나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나세움'의 배움철학은 다음의 세가지에 의미를 둔다.

타인의 거울 깨기: 등급과 숫자가 나를 정의하게 두지 않는 것.

질문의 복원: "어떻게(How)"보다 "왜(Why)"를 먼저 묻는 교육.

연대의 자아: 나 혼자 잘 사는 왕이 아니라, 하선처럼 백성의 삶을 고민하고 단종처럼 백성들과 더불어 함께 성장하는 나누는 교육.

한 사람은 왕에서 광대로 다른 사람은 병약한 청년에서 진정한 왕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 두 영화가 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하선이 왕의 옷을 벗고 광대로 돌아가 환하게 웃을 수 있었던 이유, 단종이 유배지에서 비로소 '진짜 왕으로서의 정체성'이 되었던 이유는 결국 타인의 목소리를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내 안의 진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교육도 아이들에게 화려한 곤룡포를 권하기보다, 스스로 활을 들어 내 안의 호랑이를 잡을 수 있는 용기를 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이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가장 소중한 권리이자, '나세움'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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