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의 이야기
저는 이 글을 통해 단순히 저의 실패를 기록하려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제 시선에 대한 기록이 어쩌면 내 주변에 대한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혹시 어떤 이에게 이것이 개인의 회한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짊어진 사회적 책임의 기록이라 믿고 글을 시작합니다.
며칠 전, 저는 국가 제도의 도움을 받아 긴 고독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다시 글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또 이렇게 글을 남기는 것이 어딘가에 남겨진 누군가를 위함일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어디서 고독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제 친구들에게
작은 편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고독이 결코 개인의 약함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구조가 만들어낸 상처일 수 있음을 함께 기억했으면 합니다.
어릴 적,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저를 포함한 몇몇 아이들을 “수급자”, “동사무소 지원받는 애들”이라 부르며 구분 짓는 선생님들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모르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어렴풋이 깨달았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자기 편한 대로 허락 없이 이름표를 붙이는 곳이라는 걸.
우리는 밀레니얼 세대, “세계화”의 한가운데서 자라난 아이들입니다.
집에 컴퓨터 한 대쯤은 있는 것이 우리 세대의 자부심이었고, 너무 가난하면 학교에서 지원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인재”, “국제 경쟁력” 같은 단어가 교실 벽을 가득 채웠습니다.
학창 시절의 성적표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미래의 나’를 미리 보여주는 예언서였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은 늘 말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라. 그래야 나중에 좋은 사람이 된다.”
좋은 사람.. 대단한 사람..
사람은 응당 그렇게 되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참고 공짜 참고서를 얻으러 선생님들 책상에 갔고, 저녁 도서관 불이 꺼질 때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새벽 창문에 비친 제 얼굴은 늘 피곤했지만, 저는 제가 바르고 옳은 길을 걷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그런 믿음 속에서 작은 젊음의 새싹을 틔웠습니다.
몇 년이 지나, 친구들은 각자의 현실을 선택했습니다.
누군가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누군가는 부모의 도움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또 누구는 유학을 갔고
누군가는 취업을 준비했습니다.
그즈음, 사법고시가 폐지되었습니다.
유일한 계층 간 사다리가 사라졌다고
비판하는 뉴스가 매일 나왔습니다.
대신 생긴 로스쿨은 학원비만 한 달에 백만 원이 넘었습니다.
내가 늦게 깨달은 건지,
세상이 뒤늦게 변한 건지
내가 마주한 세상은
노력보다는 돈이 필요한 세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하나둘 무언가를 포기했습니다.
여유, 사랑, 취미, 때로는 자존감까지.
그렇게 몇 가지를 내려놓고 나니,
TV에서는 우리를 N포 세대라 불렀습니다.
그 단어가 슬펐던 이유는,
그 포기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기 때문입니다.
휴대폰 속에서는 친구들의 합격 소식이 매일 들려왔습니다.
누군가는 결혼했고, 누군가는 신혼집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의 SNS엔 별빛이 가득했지만,
제 것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저마다의 바쁨을 이유로 멀어졌습니다.
그러다 몇 해 전, 친구 한 명이 고시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제 주변에서 가장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인생은 마라톤이라 말하던 그는 좋은 대학을 나왔고, 그의 말처럼 누구보다 오랫동안 버텼습니다.
본인의 고집이었는지 ,
오랜 시험 준비로 마음의 병을 얻은 그는
오백만 원 때문에 마지막 선택을 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월세만큼은 꼭 지불하고 떠났다 합니다.
그날 이후, 저는 한동안 제 방에서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거 아닌가.. 나는 그냥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이렇게 남아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에게 교육은 기회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그랬듯 자본이 개입된 구조적 재생산의 시스템이었습니다.
노력은 더 이상 사다리가 아니라, 통행료였습니다.
통행료는 비싼 등록금으로 지불해야 했습니다.
저희는 한국 근현대사상 가장 많이 대학을 간 아이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밥을 먹어야 했고,
건강을 지켜야 했고,
스펙을 쌓아야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살기 위해’ 필요했습니다.
부모님 세대는 종종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세대는 너무 약하다.”
그들에게 대학은 성공의 티켓이었고,
정규직은 평생직장이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키우는 동안,
서울의 아파트 값은 열 배가 올랐습니다.
공부로 인생을 바꾼 그들은,
변화한 세상에서 그들처럼 살지 못하는 우리를 나무랐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가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겨낼 방법을 찾고, 필요하면 도움을 받아
우리는 이겨내다 포기한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여기 있다고 한마디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아픈 생각에 잠을 못 이루거나, 또 그러다 지쳐 잠에서 깨면 창문을 열고 햇살을 봅니다.
다시 이겨내 보려고 매일 아픈 몸을 일으켜 세웁니다.
빠르게 오르는 땅값보다, 그 위에서 자라는 작은 풀잎 하나에 감동하기로 했습니다.
아침 공기에 무거운 이슬을
예쁘게도 이고 있는 네 잎클로버.
그것을 닮아가기로 했습니다.
누구에게 경솔할 수도, 건방질 수도 있는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파이팅.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