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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영 Oct 27. 2024

주말, 여백의 시간 속에서

밤이 깊어질수록 주위는 고요해지고, 나는 혼자가 된다. 하루의 소란스러운 여운이 잦아들고, 모두와 함께 왁자지껄하게 놀다 돌아와 씻고, 운동을 하고, 잠깐 자다가 먹을 것도 마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적막뿐이다. 무얼 해야 할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시간, 나는 어쩐지 표류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여백의 시간은 어딘가 다르다. 마치 모든 것이 빠져나간 뒤 남겨진 빈 캔버스 같다. 사람들과의 웃음, 대화, 움직임 속에서 나를 채웠던 활력이 사라지고, 나를 둘러싼 공간에는 정적과 공허함이 흘러들어온다. 그 적막은 내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묻는 듯하다. 방향을 잃고 부유하는 기분이 들지만, 어쩌면 이조차도 삶의 한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여백 속에서 느껴지는 이 표류의 감각은 무력감을 동반하면서도, 내 안의 깊은 부분과 마주하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밤의 정적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방 안의 공기는 가라앉아 있고, 창밖의 어둠은 손에 잡힐 듯 짙다. 고요함 속에서 과거의 파편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 싶었던 순간들, 어쩔 수 없이 머물러야 했던 자리들, 그리고 문득문득 느껴졌던 막연한 외로움들. 어쩌면, 이 여백의 시간은 이렇게 묻어 두었던 기억들과 마주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낮의 소란스러움 속에 묻혀 잊고 있었던 감정들이 새벽의 어둠 속에서 하나씩 얼굴을 내민다. 때로는 숨기고 싶었던 생각들이 되살아나고, 그 감정들이 만든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 표류의 시간이 나를 치유하는 과정임을 문득 느낀다. 방향을 잃고 떠다니는 나를, 결국에는 나 자신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 정적 속에서, 나를 이끄는 것은 방향이 아닌 내면의 리듬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리듬이 어떤 선을 그리며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나조차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리듬에 따라 흘러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낯설지 않게 느껴질 것 같다. 길을 잃은 듯 표류하면서도, 그 길 위에 나만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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