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기서 이러고 살아? 얼굴도 예쁘지, 성격 좋지, 능력 있지. 외국 가면 더 많이 벌고, 더 좋은 배우자도 만날 텐데. 훨훨 날겠구먼.”
“그러니까요! 근데 선배님 눈에만 그래 보이나 봐요. 사실, 올해 이직할까 생각했는데 부모님 건강이 염려돼서 그만뒀어요.”
“자기 인생 살아야지. 동물들도 부모가 자식 챙기지, 반대로 그러는 동물은 없잖아.”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동물이 아니지 않은가.
내게는 이성과 감성이 있고, 책임과 사랑이 있다. 그러나 나는 담담히,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렇죠.”
선배의 걱정과 안타까움은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삶을 찾아 훨훨 날아갈 생각이 없다.
나는 의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평생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만 하며 살아온 엄마에게, 죽는 날까지 그렇게 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삶을 혼자서 감당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같은 여자로서, 나는 그럴 수 없다.
이건 죄책감 때문이 아니다.
조금의 미안함, 그리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사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 곁에 남기로 했다.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아빠 곁에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족하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네 인생을 살아야지.”
“지금이라도 날아봐. 후회하지 않게.”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날개를 잃은 것도, 나는 법을 잊은 것도 아니다.
단지, 스스로의 선택으로 날개를 접었을 뿐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하늘이 아닌 땅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필요로 하는 자리에 서 있고 싶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뿌리를 내리고 싶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다. 낯선 곳에서 내 가능성을 펼쳐보는 것이 더 화려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떠나버렸을 때, 더 큰 후회를 품게 될 것을 알고 있다.
내 선택이 옳다고 확신한다.
내 욕망보다 사랑을 우선에 두는 이 삶이, 내게는 가장 진실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다시 날 수 있다.
내가 가진 날개는 여전히 내 것이고, 하늘은 내게 늘 열려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날아가는 대신 땅을 딛고 서 있다.
이 선택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나는 안다.
사랑하는 이들의 웃음 속에서, 나는 이미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하늘에 닿아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