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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5. 이번 주 감사함을 느낀 것들은 무엇인가요?

by 최은영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이번 주 감사한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첫 번째 감사는 모처럼 찾아온 휴식이다. 대체공휴일엔 어김없이 일하지만, 그래도 이번 토요일만큼은 아침부터 침대에서 한없이 뒹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주말 출근이 없는 토요일이 이렇게 신날 일인가 새삼 깨달았다.


두 번째 감사는 오래된 인연이다. 지금은 너무 먼 곳에 다들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언제 만나도 어제 헤어진 듯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함께 웃고 떠들며 나이를 잊게 만드는 이들 덕분에 종종 찾아오는 외로움도 견딜 만해진다.


세 번째 감사는 부모님의 건강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출은 꿈도 꾸지 못하셨는데, 이제는 여기 가고 싶다, 저기 가보고 싶다 말씀하시는 부모님을 보니 절로 안도의 기도가 나온다. 조심스레 세워보는 여행 계획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네 번째 감사는 신체의 너그러움이다. 지난 일주일 내내 야식을 끊임없이 흡입했는데, 몸무게는 겨우 1kg밖에 늘지 않았다. 아무래도 과로로 소모된 칼로리가 많았던 탓 같긴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다행이다. 노출의 계절도 다가오는데 꽉 끼는 바지를 입고 숨을 쉴 수 없게 되는 건 곤란하니까.


다섯 번째 감사는 호르몬의 농간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속수무책으로 휘둘려 우울의 밑바닥을 맛봤지만, 며칠이 지나니 마치 구름이 걷히듯 다시 마음이 가벼워졌다. 역시 나는 호르몬의 노예다.


여섯 번째 감사는 월급날이다.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쁜 와중에 “이러다 정말 골로 가겠다”라고 속으로 욕하며 지냈지만, 월급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버텨냈다. '돈이 최고야!' 하고 외치는 내가 속물스러우면서도 어쩔 수가 없는 아이러니.


마지막 감사는 행복한 고민이다. 이번 주말 친구와 도자기 원데이 클래스를 가기로 했다. 어떤 스타일의 펜 트레이를 만들지 하는 하찮은 고민으로 설렐 수 있음에 감사했다. 어쩌면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야말로 행복의 진짜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감사 목록을 착즙 하듯 짜내긴 했지만, 돌아보니 꽤 괜찮은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생각해 보면 감사란 대단한 게 아니다. 먹고 싶은 걸 먹고, 좋아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사소한 일에도 진심으로 행복해지는 것. 때때로 지랄 맞은 나도 용서하고 보듬어주며, 부족하지만 어쨌든 오늘의 나를 받아들이는 그런 평범하고도 특별한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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