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진료실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환자들 가운데, 시간이 흘러도 자꾸만 떠올라 기도하게 되는 이들이 있다. 병환으로 깡마른 몸을 이끌고 와 다시는 살아서 오지 못할 줄 알았다며 눈물을 흘리시던 할머니, 말기암으로 이미 얼굴에 생기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끝까지 씩씩하게 웃던 젊은 엄마, 그리고 내가 유독 좋아했던 떡집 아저씨.
작년에 처음 만난 아저씨는 특유의 유쾌함으로 주변 사람들을 웃게 만들던 분이었다. 그러나 1년 뒤 다시 마주한 그는 뇌졸중을 겪고 난 뒤 혼란스러운 표정과 생기 잃은 눈빛으로 낯설게 서 있었다. 순간 멈칫한 내게 보호자가 조용히 사실을 알려주었고,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저 당장 내 앞에 앉은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고, 언젠가 다시 예전의 그 웃음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진료하다 보면 공황장애를 겪는 환자들도 종종 만난다. 간단한 치료조차 버거워하고, 일상의 작은 일도 감당하기 어려운 모습들을 보며 그들이 짊어진 짐의 무게를 가늠해 본다. 때로는 날카로운 말과 짜증을 쏟아내기도 하지만, 몇 번 마주하다 보면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두려움을 알게 된다. 겪는 동안은 유쾌하지 않아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하나의 사실로 귀결된다. 우리는 모두 나약하고 가여운 존재라는 것. 그 깨달음이 내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그러나 언제나 이해와 연민만으로 환자를 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치료를 마친 환자의 보호자가 전화를 걸어와 성난 목소리로 항의했다. “애가 뭘 안다고 애한테만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요?” 그 ‘애’는 군대까지 다녀온 스물여덟의 건장한 성인이었는데도 말이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억울함이 치밀었다. 처음 의료인이 되기로 결심했을 때는 아픈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상식 밖의 무례와 짜증까지 감당해야 할 줄은 몰랐다. 몇 번은 웃어넘길 수 있지만, 같은 일이 반복되면 더는 입꼬리를 올릴 힘조차 나지 않는다. 이해해야 할 몫은 어디까지인지, 참아야 할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매번 스스로에게 묻는다.
진료실에서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내 모습을 마주할 때면 아직 갈 길이 멀었음을 실감한다. 매일 다른 사연과 표정을 품은 이들을 마주하며 이해하려 애쓰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순간도 있다. 그런 순간에는 다름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 갈 때, 비로소 조금 성장한 내 자신을 발견한다.
얼마 전 미용실에서 신입 청년이 머리를 말려주던 순간이 떠오른다. 신생아를 돌보듯 조심스럽고 어색한 손길. 그 모습을 보며 나의 사회 초년생 시절이 겹쳐졌다. 그때 내 환자들도 지금의 내가 그 청년을 바라본 것처럼 나를 서툴지만 애정 어린 눈길로 봐주었을까. 분명 성난 얼굴과 날 선 목소리만큼이나, 소리 없이 응원해 준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 관심과 염려 덕분에 나는 흔들리면서도 무럭무럭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사회 초년생들을 볼 때마다 더 애틋하고 응원해 주고 싶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으니까.
퇴근 10분 전, 팀원들과 모여 하루를 나누는 시간은 나에게 큰 위로다. 처음부터 손발이 척척 맞았던 건 아니지만, 함께 실수와 갈등을 지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의료 현장에서의 실수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일이라 더욱 예민하다. 그러나 탓하기보다 원인을 함께 짚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방법을 찾는 쪽이 현명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괴로운 사람은 바로 그 실수를 저지른 당사자니까. 작은 친절 하나에 닫힌 마음이 열리고 동료애가 자라났다. 그렇게 3년이 흐르자 우리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하나의 팀이 되어 있었다.
선심과 오지랖은 때로 “호구”라 불리지만, 나는 믿는다. 그 작은 마음이 누군가의 무너져 내리는 하루를 버티게 할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 또한 대가를 바라지 않은 따뜻한 손길에 위로받으며 살아왔다. 세상을 송두리째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내 곁의 사람들에게는 인정을 가지고 먼저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약자의 편에 서서 강자와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오늘 수면마취 하에 치료받고 간 스무 살 청년의 밤은 평안할까. 그렇지 못했던 몇 해 전 나의 밤들을 떠올리며 그의 안녕을 조용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