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사람다움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 조금은 철이 들어서일 수도 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어수선한 사회의 뉴스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점점 더 깊숙이 스며드는 인공지능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이런 생각들이 나를 ‘인간다움’이라는 주제로 계속 끌어당긴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의 초라한 부분을 감추려 한다. 아픈 가정사,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 감당하기 벅찬 감정들. 우리는 그것들을 남에게 드러내면 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애써 감춘다. 그러나 그 허술함조차 인간다움의 한 단면일지 모른다. 연약함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이해받고 싶은 마음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인간다움은 완전함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인간이기에 피할 수 없는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 있다. 그것은 결핍이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는 여백이 된다. 자신이 얼마나 작고 서툰 존재인지, 그로 인해 겪어야 했던 상실이 얼마나 깊은지를 깨달을 때, 우리는 타인의 허물과 상처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나도 너도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식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 연민과 애틋함이 싹튼다. 그 안에 사람이 있고, 그 안에 인간다움이 있다.
나는 어린 시절 보았던 영화 아이, 로봇의 한 장면을 잊지 못한다. 사고 현장에서 로봇은 생존 확률을 계산한 끝에 아이 대신 어른을 구한다. 논리적으로는 타당했지만, 인간이라면 아마 아이를 먼저 구했을 것이다. 우리는 때로 계산을 거스르고, 비이성적이고 비효율적인 선택을 한다. 그 불합리 속에서 드러나는 온기와 용기야말로,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만의 몫이다.
돌아보면 나 역시 학생 시절, 성적이 전부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시험 점수 몇 점에 따라 나의 가치가 정해지는 듯했지만,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며 성적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는 걸 배웠다. 성적은 앞길을 열어주지만,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순간은 내 삶을 붙잡아 주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돈이 삶의 기준이 되기 쉬웠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의 곁에 남기 위해 계산기를 내려놓은 순간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포기는 손해가 아니라 안도였고, 잃음이 아니라 채움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네 인생을 살아야지”라고 말했지만, 나는 욕망보다 사랑을 우선에 두는 선택을 했다. 그 길이 논리로는 비합리적으로 보여도, 내게는 가장 진실한 삶이었다.
인간다움은 결국 불완전함 속에서 더 나은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함께 견뎌주는 누군가가 있을 때, 우리는 용기를 얻는다. 말로 위로하지 않아도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사람이 있다. 판단을 앞세우지 않고, 가능성을 지켜보며 끝까지 버텨주는 사람. 관계는 서로의 불완전함을 마주하고도 등을 돌리지 않는 순간에 시작된다. 그렇게 쌓인 신뢰는 말없이도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된다.
1914년, 남극 횡단을 꿈꾸던 어니스트 섀클턴은 ‘인듀어런스호’를 이끌고 출항했다. 그러나 배는 부빙에 갇혀 표류하다 결국 침몰했다. 탐험은 시작조차 하지 못한 채 끝난 듯 보였다. 그 순간 섀클턴은 목표를 바꿨다. 살아서 모두를 집으로 데려가는 것. 그는 영하 60도의 혹한과 식량 부족, 고립에서 오는 절망을 대원들과 함께 견뎠고, 마침내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귀환시켰다. 누구보다 먼저 위험을 감수하고 대원들의 곁을 지킨 그의 태도는 위기 속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인간다움의 본질을 생각하게 된다. 인간다움은 성과를 내는 능력이나 탁월한 기술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극한 상황에서조차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 그 마음을 지켜내는 데 있다. 섀클턴은 영웅이 되려 한 것이 아니라, 동료의 곁을 지킨 리더였다. 아이를 먼저 구하려는 인간의 선택, 성적이나 돈보다 관계와 사랑을 붙드는 우리의 선택, 그리고 섀클턴이 보여준 태도는 모두 같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인간다움의 증거다.
사람다움은 지식으로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가는 동안 부딪히고, 후회하고, 이해하면서 몸에 새겨지는 어떤 감각에 가깝다. 가정에서의 관계는 기본적인 공감과 도덕성을 만들고, 친구나 동료와의 교류는 배려와 책임감을 익히게 한다. 넘어지고 실수하며 배우는 경험은 인간의 품격을 단단하게 만든다. 또, 예술과 문학을 통해 우리는 서로 다른 시선과 감정을 체험하며 공감의 폭을 넓혀간다. 이것은 데이터를 쌓는 일과는 다른, 느리고 섬세한 성장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이 지배하는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알람처럼 울리는 뉴스 속보, 계산된 알고리즘, 점점 더 정교해지는 AI. 기술은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인간이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인간은 단순히 생산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니다. 효율이 극대화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더 인간적인 것을 갈망한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 기다려주고 들어주는 태도, 서로의 불완전함을 껴안는 마음. 기계가 모든 것을 대신하는 세상이 오더라도, 사람을 위로하는 건 결국 사람일 것이다.
나는 우리가 여전히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