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내게 닻과 같다.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잠시 멈춰 서게 하고,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힌다.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도,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지금, 여기’를 온전히 살아가게 한다. 그래서 나는 자꾸 끄적이게 된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펜을 든다. 모든 일을 잠시 내려놓고, 차 한 잔을 곁에 두고 글로 돌아온다. 일기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일 수도 있다. 흩어진 생각을 단어와 문장으로 이어가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지금'이 또렷해진다. 그렇게 하나의 글을 완성하고 나면 마음속에 질서가 생긴다.
처음엔 형체조차 없는 생각부터 쏟아낸다. 두서없이 써 내려간 글을 조금씩 다듬다 보면 윤곽이 드러난다. 지우고 고치고 다시 읽으며 다듬다 보면, 마침내 내가 쓰고 싶던 문장이 나타난다. 어휘는 부족하고 작문은 서툴지만, 빈틈 많던 초안이 하나의 호흡을 갖춘 글이 되어가는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낀다. 말로는 다 담아내지 못한 생각과 감정이 손끝에서는 자유롭게 흘러나온다. 정말이지 내 진짜 입은 손끝에 달려 있는 것만 같다.
글을 쓰며 가장 먼저 배운 원칙은 솔직함이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생각과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지, 내 안의 명암을 드러내야 글이 명확해진다. 그리고 또 하나, 고독 속에서의 기다림이다. 하나의 생각을 오래 품고, 묵혀두고, 끝까지 들여다보는 일. 조개가 이물질을 품어 진주를 빚어내듯, 사색하고 사유하다 보면 나만의 시선으로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생긴다.
그것이 작가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나를 사랑하고 내 세계를 지키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완벽해서가 아니라,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해 조용히 나아가는 그 한 걸음. 그 걸음이 나의 독창성이 되고, 내 이야기가 된다.
“제가 글 쓰는 이유는 전적으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눈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보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이지요.” — 조앤 디디온
작가 조앤 디디온의 이 말은 내 글쓰기의 이유와 맞닿아 있다. 결국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복잡하지만, 본질은 단순하다. 내 이야기를 꺼내 놓고, 타인과 연결되며,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치유받기 위해서다.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날에도 글을 썼고,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날에도 글을 썼다. 글쓰기는 내게 애도이자 치유였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금세 흩어져 버리는 이야기들이, 글로 쓰이면 비로소 나와 분리되었다. 말하지 않은 슬픔은 어깨에 매달려 더욱 무거워지지만, 글로 꺼내는 순간 힘을 잃는다. 종이에 옮겨진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마음을 짓누르던 생각과 감정을 글로 옮기면 머리와 가슴은 다시 고요를 찾았다. 글쓰기는 슬픔을 흘려보내는 가장 의식적인 행위였고,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애도의 길을 걸어왔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들려오던 밤이 떠오른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속 “한국 사람들은 노벨문학상 못 타.”라는 대사가 무색해지던 순간이었다. 불가능할 것 같던 일이 가능한 일이 되는 장면 앞에서, 나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작은 소망 하나를 꺼내보았다.
작가가 되어, 에세이와 동화, 소설로 누군가의 삶에 닿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러기 위해 더욱더 글로 쓸 만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말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을 기록한다. 한 줄씩 써 내려가는 이 시간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주었다. 앞으로 이 시간들이 더 쌓이면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나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글이 데려다 줄 흥미진진한 미지의 세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