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의 시작 (2025)

by 최은영

종종 이솝 우화 속 ‘까마귀와 공작’을 떠올린다. 화려한 공작의 깃털을 주워 온몸에 꽂은 까마귀는 그 깃털이 자신을 더 당당하게 만들어 줄 거라 믿었다. 그러나 공작 무리에서는 가짜임을 단번에 알아보고 쫓아냈고, 까마귀 무리마저 그를 외면했다. 남의 깃털로 꾸민 까마귀는 결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세상은 끊임없이 말한다.


“너는 이래서 부족해.”

“이래서 너는 행복할 수 없어.”

“그래서 너는 인정받지 못해.”


나는 늘 나를 미완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까마귀처럼 내가 동경하는 사람들을 닮아가면 더 근사한 내가 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조금 더’에는 끝이 없었다. 끝없는 채찍질은 나를 지치게 했고, 점점 내가 나로 설 자리가 없어졌다.


나다움은 단순히 취향을 고집하거나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기준이나 타인의 틀보다, 자기 안의 목소리에 먼저 귀 기울이는 태도다. 남과의 비교에서 비롯된 ‘좋은 삶’이 아니라, 나만의 가치관과 경험으로 다져진 삶의 모양이다. 진정한 나다움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 부족함과 한계를 숨기지 않고 강점과 약점을 함께 끌어안는 용기,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자기 수용이 바탕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미완성인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로 했다. 아직 매끄럽게 다듬어지지 않아 거칠고 뾰족한 모서리가 남아 있어도, 색이 고르지 않고 결이 뒤엉킨 모습이어도. 그 모든 것이 결국 나를 이루는 고유한 무늬이기에 흠집이나 어설픈 틈마저도 숨기지 않기로 했다.


“북 치고 장구치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야.”


나를 아껴주는 언니의 말이 요즘 가장 좋아하는 말이 됐다. 그 말처럼 완벽하지 않은 나를, 조금 엉성한 나를, 있는 그대로 궁금해하고 알아가며 살아보기로 했다. 내가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고,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 그 기준은 오롯이 내 것이다.


나다움은 내가 원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결과에 스스로 책임지는 태도까지 포함한다. 남이 정한 길이 아니라 내가 고른 길이기에, 성공과 실패 모두 내 이야기가 되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가 자라난다. 동시에 나다움은 고립된 자아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고유함이다. 타인과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나를 지켜내는 일이다.


그 무렵 우연히 시작한 ‘보이스 스피치 수업’은 내게 전환점이 되었다. 수업을 통해 알게 된 건 발성법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발성 훈련이라 여겼지만, 사실은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어떤 관계를 이어가고, 어떤 환경을 받아들이고, 나를 어떻게 대하며, 타인이 나를 어떻게 대하도록 두었는지가 지금의 삶을 만든다. 삶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 내가 ‘허용한 것’의 총합이다.


함께 수업을 들은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온도를 가진 이들이었다. 오랜만에 느껴 본 편안함이 놀라웠다. 어떤 경계심도, 긴장감도 느껴지지고 않았다. 그들 곁에서는 내가 나여도 괜찮았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진작 알았다면 덜 움츠러들었을까. 어디 있어도 항상 이방인 같이 느껴졌던 나는 이상한 존재가 아니었다. 다만 맞지 않는 환경에 너무 오래 있었을 뿐이었다.


그 깨달음 이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을 것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불필요한 관계, 나를 지치게 하는 습관,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생각들. 그것이 자기 존중의 출발점이다. 오해나 상처를 감수하고서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꺼내는 용기를 내는 것. 거기서부터 나다움을 지켜내는 근육이 자라났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흥분해 떠드는 나를 보며 동생이 말했다.


“이번 생은 처음이니까, 시행착오도 하고 실수도 하고, 아직 새로 알아갈 게 많을 거야. 근데 뭐 어쩌겠어. 연습 없는 실전이고, 재도전 없는 인생인데. 되는 대로 좀 살아보고, 마음 가는 대로 가끔은 놓아도 보자. 그래도 누나가 그런 변화들을 느끼고 시도해 보는 거, 난 참 좋아.”


그 말을 마음에 새겼다.


나답게 사는 삶을 꾸려 가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다. 그러니 원하는 삶을 만들고 싶다면 기다림을 멈추고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나다움의 시작이다.


나만의 장단으로 걷기 시작하자, 숨이 트였다. 흐릿해졌던 나의 색이 다시 짙어지고 있는 요즘, 나는 나답게 살아가는 내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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